월경 제안에 여유와 농담·능숙한 화술… ‘김정은 스타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7일 경기도 파주 판문점 평화의집 광장에서 국군의장대와 전통의장대를 사열하며 걷고 있다. 김 위원장은 우리 군 의장대를 사열한 최초의 북한 최고지도자가 됐다. 판문점=이병주 기자


文 대통령과 악수 나눈 뒤 기자에 “잘 연출됐습니까”
새벽 NSC 소집 들먹이며 ‘미사일 발사 않겠다’ 다짐
연평도 포격 사건 거론하며 ‘상처 치유하는 계기’ 표현


베일에 싸여있던 은둔의 지도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7일 남북 정상회담 시작부터 자신 있는 모습과 입담을 과시하며 세계 외교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파격적인 행동으로 분위기를 주도하며 시종일관 회담 주도권을 쥐려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김 위원장의 첫 번째 파격은 두 정상이 만난 직후 문재인 대통령에게 월경을 제안하는 장면이었다. 군사분계선(MDL)을 넘어와 사진촬영을 마친 김 위원장이 갑자기 북쪽을 가리키며 문 대통령의 손을 끌었다. 예정에 없던 제안이었지만 문 대통령은 당황하지 않고 김 위원장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을 넘어갔다가 되돌아왔다. 김 위원장의 월경 제안은 ‘향후 문 대통령의 방북을 원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또 한 걸음만 걸으면 닿을 수 있는 남북이 서로 쉽게 오갈 수 있도록 양 정상이 더욱 노력하자는 뜻을 담은 행동으로도 읽힌다. 이후로도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과 함께 전통의장대 사열을 받고 이동하는 도중 “문 대통령이 초청해주면 언제든지 청와대에 가겠다”고 말할 정도로 자신 있는 태도를 보였다. 한국전쟁이후 처음 남한 땅을 밟은 북한지도자이지만 위축되거나 긴장한 모습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회담장인 평화의집으로 이동한 후에도 김 위원장은 여유를 잃지 않았다. 문 대통령과 악수를 나눈 뒤 취재진을 향해 “잘 연출됐습니까?”라는 농담까지 건네며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었다. 예상을 뛰어넘는 수위의 농담을 통해 회담의 성과를 내겠다는 속내도 드러냈다. 김 위원장은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으로 우리 정부가 수차례 새벽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소집했던 상황을 농담조로 표현하며, 남북 간 긴장상황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김 위원장 발언은 지난해 한반도를 수차례 긴장 상황으로 몰아넣었던 핵·미사일 시험을 하지 않겠다는 ‘동결 선언’을 무겁지 않은 분위기에서 먼저 꺼낸 것으로도 평가된다. 역사적 만남에 걸맞은 ‘성과 있는 회담’에 대한 의지를 보인 것이다.

2010년 연평도 포격과 같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대화 주제도 앞장서 거론하며 거침없는 모습을 보였다. 비록 김 위원장이 연평도 포격 사건에 대한 직접적인 사과는 없었지만, ‘상처를 치유하는 계기’라는 표현을 써 남북 간 우발적 충돌을 방지할 수 있는 합의를 이루겠다는 속내를 밝혔다. 또 문 대통령이 조속한 한반도 평화구축을 당부하자, 김 위원장은 ‘만리마 속도전’이란 말로 화답하며 능숙한 화술을 선보이기도 했다.

북한 지도자로서 낙후된 북한의 실상도 가감 없이 표현한 점도 이례적이다. 김 위원장은 ‘북한을 통해 백두산에 가고 싶다’는 문 대통령의 말에 “솔직히 걱정스러운 게 우리 교통이 불비해 불편을 드릴 것 같다”고 털어놨다. 다만 김 위원장은 “우리도 준비해 대통령이 오시면 편히 오실 수 있게 하겠다”고 했다. 경제 개방을 통한 체제 발전을 이루겠다는 열망이 담긴 발언이다.

판문점 공동취재단 노용택 기자 nyt@kmib.co.kr

사진=이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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