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막에 잠긴 금강산 가는 길… “북적이는 날 다시 오나”

27일 경기도 파주 임진각을 찾은 시민단체 회원들이 생중계되는 정상회담을 밝은 표정으로 시청하며 한반도기를 흔들고 있다. 파주=윤성호 기자
 
27일 인천 강화군 교동면의 화개산 정상에 오른 면사무소 직원이 대북 방송용 확성기가 사라진 자리를 가리키고 있다. 강화=정창교 기자


고성, 금강산 관광 중단돼 누적 경제적 손실 3616억… “하루속히 관광 재개돼야”
파주는 종일 사람들 몰려… “역사적 현장 함께 해 행복 마음 보태기 위해 왔다”
강화 이장·면사무소 직원 북녘 보이는 화개산 올라 “철책선 걷는 게 최대 숙원”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이 진행된 27일 접경지역 주민들은 평화롭고 따뜻한 봄날을 맘껏 즐겼다. 오랜 기간 주민들을 괴롭혔던 대북·대남방송 소리는 사라졌고 접경지역의 긴장감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남북 정상회담을 축하하려는 이들이 곳곳에서 찾아왔고, 북녘이 내려다보이는 산으로 소풍을 가는 주민들도 있었다.

이날 오전 동해안 최북단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명파리 마을은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적막감이 감돌았다. 도로 양쪽에는 ‘금강산 가는 길’이라고 적힌 상가 간판이 줄지어 서 있었지만 영업을 하는 집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이 마을에 50년 넘게 살았다는 장용출(73) 할머니는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기 전에는 식당에 사람이 북적였고 지나가는 차도 많았지만 지금은 보다시피 쓸쓸하다”며 “정상회담을 계기로 하루 속히 금강산 관광이 재개돼 옛 모습을 되찾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남북 정상회담을 TV로 지켜봤다는 어길순(83·여)씨는 “이번 정상회담은 그 어느 때보다 좋은 성과를 낼 것 같다”며 “후손들이 마음 놓고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란다”고 힘주어 말했다.

금강산 가는 길목에 위치한 명파리는 2003년 9월 금강산 육로 관광이 시작되면서 호황을 누렸다. 매년 20만명 넘는 관광객이 이곳을 지나면서 상점들은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그러나 2008년 7월 관광객 박왕자씨 피격 사망 사건으로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면서 명파리는 물론 고성군 전체가 직격탄을 맞았다. 고성군에 따르면 금강산 관광 중단으로 매월 32억원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하고 있으며 지난해 말 기준 누적 피해액은 3616억원으로 추정된다.

홍성호 고성군 부군수는 “이번 회담을 통해 금강산 관광 재개, 공동어로구역 설정 등이 이뤄져 고성군이 활기를 되찾았으면 좋겠다”며 “남북이 자유롭게 인적·물적 교류를 이어가는 등 한반도에 평화가 찾아오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 판문점에서 10㎞ 정도 떨어진 경기도 파주 임진각에는 두 정상의 만남을 응원하는 이들로 하루 종일 북적였다. 국내외 보도진과 실향민, 통일의 소망을 안고 가족과 함께 찾아온 사람들로 붐빈 임진각 광장은 태극기와 한반도기가 넘쳐났다.

서울에서 아들과 함께 왔다는 김은진(54·여)씨는 “두 정상이 만나는 판문점에는 못 가지만 조금이라도 가까운 곳에서 마음을 보태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아 왔다”며 “이번 정상회담이 한반도 평화는 물론 통일의 길이 되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서도 “6·25 이후 미국이 빠진 한반도 역사는 없었다”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남과 북을 존중하고 화합·통일로 갈 수 있도록 결단을 내려주길 희망한다”고 당부했다.

미국 뉴욕주 코닝에서 왔다는 마이클 베딩(52)씨는 “남북이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날인 것으로 안다. 한국민이 바라는 평화와 통일의 꿈이 이뤄지기를 바란다”며 “역사적인 사건을 임진각 자유의 다리 위에서 경험하게 돼 행복하다”고 말했다.

망배단 바로 옆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 환영식에 참가한 김문노(26)씨는 “남북 정상이 통일로 가는 결정적 계기를 만드는 날일 것 같아 부산에서 지인들과 함께 올라왔다”며 “오늘 남북 정상이 먹은 평양냉면을 일반 국민들도 자유롭게 오가며 먹을 수 있도록 정상회담을 정례화했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판문점으로 가는 길에 차에서 내려 방문했던 비무장지대(DMZ) 내 대성동 자유의 마을 주민들은 문 대통령의 뜻밖 방문에 환호를 보냈다. 김동구 이장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온 국민이 정상회담을 환영하고 지지하니 기쁘고, 대통령께서 마을 입구에서 주민들을 격려해주셔서 감사하다”며 “접경지 주민으로서 모쪼록 지속 가능하고 실속 있는 평화의 만남, 평화의 실천이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인천 강화군 교동면 마을 이장들과 면사무소 직원들은 북녘땅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화개산으로 소풍을 갔다. 평화로운 분위기를 맘껏 누린 주민들은 화개산 정상에서 북한의 산하를 가리키며 “사흘 전까지만 해도 동네를 시끄럽게 했던 확성기 소리가 사라졌다”며 “정상회담 덕분에 우리 마을에 평화가 찾아왔다”고 입을 모았다.

교동면 고구2리 한영세(65) 이장은 “역사적으로 물류거점 역할을 해온 교동도가 향후 남북 교류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며 “이북에서 피난 나온 뒤 고향땅을 밟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한도 풀어드리고 싶다”고 했다.

주민들은 “교동도의 최대 숙원은 섬 북쪽 해안선 40㎞를 막고 있는 철책이 사라지는 것”이라며 “남북 대화가 결실을 맺어 교동도 해안에 남북한 관광객들이 찾는 날이 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60대 주민은 “북한 연백평야에 살고 있었던 외가의 후손들을 만날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고성·파주·강화=서승진 김연균 정창교 기자 sjseo@kmib.co.kr

사진=윤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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