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난 언제쯤 北 넘어가나” 金 “지금 넘어가볼까요”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오전 경기도 파주 판문점 군사분계선(MDL) 앞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악수한 뒤 남측 지역으로 넘어올 것을 권하고 있다. 남북 정상이 군사분계선 남측 지역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의 권유로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측 지역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다. 두 정상은 북측 지역에서 약 10초간 머물렀다. 두 정상이 손을 잡고 다시 남측으로 넘어오고 있다(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판문점=이병주 기자


金 위원장 권유로 MDL 넘어 예정에 없던 돌발 상황
양측 수행원들 탄성·박수… 새 평화의 시대 상징적 연출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역사적 첫 만남에서 ‘깜짝 방북’을 경험했다. 군사분계선(MDL)을 사이에 두고 손을 맞잡은 두 정상은 김 위원장의 권유로 북과 남을 차례로 오가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를 상징적으로 연출했다.

남북 정상은 예정됐던 시간보다 2분 빠른 오전 9시28분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실(T2)과 소회의실(T3) 사이 MDL에서 마주했다. 문 대통령은 MDL 남측에 서서 걸어오는 김 위원장을 맞이했다. 김 위원장은 연한 줄무늬가 들어간 검은색 인민복에 뿔테 안경을 걸친 차림으로 수행원들에 둘러싸여 북측 판문각을 걸어 내려왔다. 두 정상 간 거리가 가까워지자 김 위원장은 수행을 뒤로 무른 채 환하게 웃으며 홀로 걸어와 문 대통령 앞에 섰다.

첫인사는 평범했다. 김 위원장이 먼저 “반갑습니다”라고 인사를 건넸고, 문 대통령은 “오시는 데 힘들지 않았습니까”라고 물었다. 김 위원장은 “이렇게 역사적 장소에서 만나니까 설렘이 그치지 않는다”며 “대통령께서 이런 분계선까지 나와 맞이해준 데 대해 정말 감동적”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여기까지 온 것은 위원장의 아주 큰 용단이었다. 역사적인 순간을 만들었다”고 덕담했다. 이어 김 위원장이 MDL을 건너오고, 두 정상은 남북을 배경으로 번갈아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파격적인 장면은 다음 순간 느닷없이 연출됐다. 문 대통령이 예정대로 김 위원장에게 남측으로 향할 것을 권하자, 김 위원장이 갑자기 북측을 손으로 가리키며 거꾸로 문 대통령을 안내했다. 잠시 멈칫한 두 정상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손을 꼭 잡더니 MDL 너머 북측으로 넘어갔다. 양측 현장 수행원들은 일제히 탄성과 함께 박수를 보냈다. 지켜보던 취재진 사이에서도 감탄사가 나왔다.

10여초 짧은 시간이었지만 문 대통령은 북한 땅에 서서 김 위원장과 재차 악수를 나눴다. 문 대통령은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북한 땅을 밟은 세 번째 대한민국 대통령이 됐다. 두 사람은 잡은 손을 풀지 않고 MDL을 다시 건너와 도열한 우리 측 전통의장대 쪽으로 가기 위해 레드카펫으로 향했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오후 판문점 자유의집 브리핑에서 문 대통령의 ‘월경’이 예정에 없던 돌발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이 악수 중에 “(김 위원장은) 남측으로 오시는데 나는 언제쯤 넘어갈 수 있겠느냐”고 말하자, 김 위원장은 “그럼 지금 넘어가볼까요”라며 문 대통령의 손을 이끌었다.

두 정상이 한날한시에 군사분계선을 건너 남북을 오가는 모습을 보여준 것은 이번 만남의 백미(白眉)로 꼽힐 만하다. 그간 두 차례 남북 정상회담에서 양측 정상은 대체로 예정된 시나리오를 따라 움직였지만 두 정상은 달랐다. 서로 형식에 얽매지 않고 기분 좋은 해프닝을 연출했다. 자칫 어색할 수 있는 회담 초반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풀어냈을 뿐 아니라, 남북 양측이 반세기 넘게 가지고 있던 ‘심리적 문턱’을 조금은 낮춘 의미 있는 ‘10초’였다는 평가다.

‘깜짝 월경’ 과정에서 MDL을 3번 넘은 김 위원장은 오찬을 위해 북측으로 향했다가 오후 회담차 다시 평화의집으로 내려왔다. 회담 종료 후 평양으로 복귀하는 일정까지 더하면 김 위원장은 하루 사이 총 6차례 MDL을 건넌 셈이 된다.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과의 사전 환담에서 “분단선이 높지도 않은데 많은 사람이 밟고 지나다보면 없어지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했다.

판문점 공동취재단,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

사진=이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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