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묘의 아이돌 열전] ⑭ 러블리즈, ‘원피스’ 벗어던진 그 소녀들 다음 선택은


 
그룹 러블리즈가 23일 4집 미니앨범 ‘치유’를 발표한다. 변신의 기로에 선 러블리즈가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이미주, 정예인, 서지수, JIN, 베이비 소울, 유지애, 케이, 류수정. 울림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룹 러블리즈는 청순 걸그룹의 맥락에서 이해되곤 한다. 하늘하늘한 의상, 식물 모티프의 로고, 교복 등이 그렇다. 2014년 이들은 청순 걸그룹 유행의 문을 본격적으로 열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러블리즈의 정서는 색다른 데가 있었다. 데뷔 초의 ‘캔디 젤리 러브(Candy Jelly Love)’ ‘안녕’ 등은 화사하면서도 늘 우수에 차 있었다. 뭔가 사색적이고 유보적이었다. 은유를 많이 활용하는 가사도 조금은 고전적이었다. 이들을 담당한 프로듀서팀 ‘원피스’의 주축인 가수 겸 작곡가 윤상의 곡 분위기처럼 말이다. 청순 걸그룹 중에서 ‘청순’의 전형에 들어맞는 것은 어쩌면 러블리즈밖에 없었다.

러블리즈가 가하는 변주는 대개 일본 하위문화와 밀접했다. 여성끼리의 로맨틱한 긴장을 다루는 통칭 ‘백합’ 코드, 과감하게 활용되는 애니메이션 풍의 목소리가 그랬다. 뮤직비디오는 늘 남자 배우를 세워놓고 속마음을 독백하는 장면 같았다. 때로는 조금 아슬아슬한 망상에 빠진 속칭 ‘전파계’ 취향도 보였다. 그래서 청순 코드와 함께 이들의 세계는 소녀 만화에서 방금 건져 올린 정지 화면 같았다. 반복되는 변신 속에 지금은 많이 떨어져 나갔지만, 걸그룹의 여성 팬 붐을 일으킨 것도 이들이었다. 그러고 보면 러블리즈는 지금 걸그룹 시장의 기초 문법 중 많은 것을 미리 행한 셈이다. 다만 반걸음 정도 앞서, 그리고 30도 정도 옆쪽을 걸었다.

그러나 행보는 쉽지 않았다. 흥행은 어딘가 조금씩 아쉬웠다. 한번 ‘안 팔리는 걸그룹’으로 찍히면 좀처럼 회생하기 어려운 시장의 덫에 걸린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지난해 말부터는 오랜 파트너였던 ‘원피스’와도 잠정적으로 결별하고 프로듀서 ‘탁(TAK)과 원택(1Take)’을 기용했다. 지난해 타이틀곡 ‘종소리’는 활달하게 앞으로 치고 나가면서 애정을 요구하는 태도를 보여, 과거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명쾌한 인물상을 선보였다.

연인을 관찰하면서 독백하던 소녀가 연인을 기다리는 소녀로 변한 것이다. 그러나 프로듀서 교체에도 불구하고 음악적으로는 같은 기조를 유지하려는 듯하다. ‘탁과 원택’은 ‘원피스보다 원피스 같은’ 곡을 만들어냈다. 23일 발매하는 4집 미니앨범 ‘치유’의 타이틀곡 ‘그날의 너’는 프로듀서팀 ‘스윗튠’을 택했는데 이들도 윤상의 영향권 아래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종소리’에서 ‘탁과 원택’은 ‘원피스’를 복제해낸 것이 아니었다. 소리의 질감은 아기자기하게 귀를 자극하고 구석구석에서 인상을 남겼다. 비트는 사색할 틈 없이 시원하게 밀어붙였다. ‘원피스’의 강점을 유지하면서 약점을 보완한 곡이었다. 이제는 러블리즈 팬덤의 기조도 과거와 많이 달라졌으니 대상층도 변했다. 하지만 초기에 이들이 보여준 많은 고민 속에 꿈꾸는 인물상을 그리워하는 이들도 얼마간 있는 듯하다.

처음부터 러블리즈는 많은 점에서 조금씩 앞서 있었기에 그만큼 대중의 기대치가 높았다. ‘원피스’와의 협력 관계가 중단된 만큼 기획자의 감식안과 판단력도 그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 ‘그날의 너’로 활동을 재개하는 러블리즈가 복잡한 정황과 변화 속에서 기민한 기획력을 선보이길 기대한다.

미묘 <대중음악평론가·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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