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고단함 위로하려… 25년만에 연극무대 선 최불암

배우 최불암이 17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열린 연극 ‘바람 불어 별이 흔들릴 때’ 프레스콜에서 열연하고 있다. 극 중 스스로 외계인이라고 주장하는 노인 역할을 맡은 그는 “이 별은 너무 아파 숨을 쉴 수가 없다”며 사람들의 삶의 애환에 공감하며 모든 사람이 존재 자체로 소중하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예술의전당 제공


2014년 이후 TV 연기도 중단했지만 실의에 빠진 청춘들이 삶의 이유 깨달을 수 있는 작품 하고 싶어 출연
존재 자체로 빛나는 인간의 존엄 노래
어깨 위 무거운 짐이 티끌처럼 훌훌… 원로 배우가 따뜻하게 안아주는 느낌


“우리나라가 계속 자살률 1위를 기록한다는 기사를 봤어요. 이 연극을 하길 잘했구나 싶었죠. 실의에 빠진 젊은이들이 삶의 이유를 깨달을 수 있는 작품이 있었으면 했어요.”

25년 만에 연극 무대로 돌아온 배우 최불암(78). 2014년 이후 TV에서도 연기를 중단했던 그가 연극 ‘바람 불어 별이 흔들릴 때’에 출연을 결심한 이유는 분명했다.

18일 개막한 이 작품에서 최불암은 자신이 외계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노인 역할을 맡아 거리를 헤매면서 힘든 삶을 사는 사람들을 만난다. 하늘의 별이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것처럼 각자 지닌 짐도 셀 수 없이 다양하다는 걸 본다. 노인은 이들을 향해 이렇게 반복해 말한다. “수천만 개의 별이 내려와 있는데 왜 그걸 못 봐. 그러니까 부서지지. 비바람이 내려치고 눈보라가 몰아쳐도 별은 빛나고 있어. 왜 별을 못 봐.”

최불암은 전날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사람들에게 부르짖고 싶었던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 자신의 생각을 풀어놓았다. 극 중 인물들이 그렇게 찾아 헤매고 반복해 말하는 별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닌, 우리 존재 자체라는 뜻이다.

“너무 성공과 물질을 향해 달려가고, 삶을 공유하는 철학이 분명하지 않아 걱정이에요. 돈이 없어도 행복하게, 살맛나게 건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자연주의라든지, 발산할 수 있는 예술 활동이든지, 이런 것들로 삶의 의미를 높였으면 해요.”

내년이면 연기 인생 60주년을 맞는 그지만 무대는 늘 긴장된다. “떨리지는 않아도 실수를 할까봐 불안하고 걱정이 생기고 그래요. 나이 먹으니까 대사도 금방 잊어버려요. 밤에 제대로 잠을 못 자겠어요. 어제 ‘한국인의 밥상’(KBS1) 촬영 때문에 남해에 갔는데 온통 연극 생각뿐이었어요. 대사도 중얼중얼해 보고요.”

최불암은 무대에서 등장만으로도 큰 존재감을 보여줬다. 막이 오르자마자 흐트러진 머리에 누더기 같은 옷을 입은 채로 나타났지만 연기 내공에서 뿜어져 나오는 여유가 엿보였다. 그러나 무대를 마친 그의 얘기는 이랬다. “한두 군데 실수도 했습니다. 무대가 어두워서 등퇴장이 어려워요. 헛발질은 안 하나 걱정을 했더니 대사도 까먹고 그랬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 직장에서 하나의 부속품으로 전락한 이, 자신을 몰라주는 남편을 평생 바라봐야 했던 이. 이들 모두를 ‘국민 아버지’라 불리는 원로 배우가 따뜻하게 안아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앞만 보고 달려가기 급급해서 정작 둘러보지 못했던 주변을 생각할 수 있는 기회다. 최불암이 고통을 어루만져준다면 다른 배우들은 애환을 선명하게 해주는 역할이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창백한 푸른 점’에서 이렇게 적었다. “슈퍼스타나 위대한 영도자, 성자, 죄인 모두 바로 태양빛에 걸려있는 저 먼지 같은 작은 점 위에 살았다.” 이 시대를 괴롭게 하는 것들이 사실은 얼마나 티끌 같은 것들인가. 그리고 우리는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 다음 달 6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2만∼6만원.

권준협 기자 ga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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