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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주말아빠 되기 싫어” 美하원의장 정계은퇴 폭탄선언

폴 라이언 미국 하원의장과 그의 가족. 왼쪽부터 막내아들 새뮤얼, 장녀 엘리자베스, 라이언 의장, 아내 재나, 둘째 찰스. 美 하원의장실 제공


“이 자리에서 한 번 더 일한다면 아이들에게 저는 영영 주말 아빠(weekend dad)로만 남겠지요. 그렇게 둘 수는 없습니다. 이제 제 인생의 우선순위를 바꾸려 합니다.”

미국 공화당의 ‘골든보이(총아)’로 불리던 40대 기수 폴 라이언(48) 하원의장이 내년 1월 끝나는 임기를 마지막으로 정계를 은퇴하겠다고 11일(현지시간) 선언했다. 정치인생에서 떠나 한 가정의 아버지로서의 삶에 보다 충실하겠다는 게 이유다. 이를 두고 미국 사회에서 변화하는 육아 문화를 반영하는 ‘일대의 사건’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라이언은 아내 재나(49)와의 사이에 장녀 엘리자베스(16)와 아들 찰스(15), 새뮤얼(13)을 뒀다.

라이언은 2012년 대선에서 겨우 42세 나이에 공화당 부통령 후보로 나섰을 정도로 전도유망한 정치인이다. 현재 맡고 있는 하원의장 자리는 미 권력서열 3위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업무 수행이 불가능해지면 당장 권력을 승계받는다는 뜻이다.

이번 선택에 영향을 미친 건 그의 어린 시절 경험이다. 라이언은 16세 무렵 변호사였던 아버지를 심장마비로 잃었다. 4남매 중 큰형과 누이가 먼저 독립한 데 이어 어머니도 학업을 위해 집을 비우면서 막내 라이언은 작은형과 함께 고등학생 시절을 보냈다. 부모 없이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건 어린 그에겐 큰 시련이었다.

라이언은 1998년, 28세 나이로 고향 위스콘신의 지역구 의원으로 당선됐다. 정치인으로서 그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워싱턴 정가에 선배 정치인들이 잔뜩 있었지만 라이언은 언제나 그들의 맨 앞에 서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에 정면으로 맞서는 배포를 보였다. 이를 눈여겨본 공화당 대권주자 미트 롬니는 2012년 대선에서 그를 부통령 후보로 골랐다. 이어 마침내 2015년에 최초의 X세대(1960∼80년대생) 하원의장에 올랐다.

권력의 최정점에서 은퇴를 선언한 그의 모습은 미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2015년 기준 미국 가정에서 아버지의 육아시간은 50년 전에 비해 3배 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해 조사에서 아버지들의 63%는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너무 적다고 답했다. 직장 때문에 가정에 충실하지 못하다고 답한 이도 62%였다. 육아나 가정을 중요시하는 가치관이 널리 확산된 것이다.

라이언의 은퇴설은 이미 지난해 12월 공화당의 숙원사업이던 감세안을 통과시킨 직후부터 돌았다. 일각에선 그가 러시아 스캔들 등 여권에 위기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독단적인 트럼프 대통령과 여당 사이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게 지나친 부담이어서 은퇴를 결정했을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올 11월 중간선거에서 여당의 선거 전망이 그리 밝지 않다는 점도 고려했을 것으로 보인다. 중간선거가 반년 넘게 남은 시점에서 은퇴 발표가 예상보다 너무 이르다는 게 지배적인 평가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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