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묘의 아이돌 열전] ⑬ EXID, 성공에 휩쓸리지 않는 뚝심으로 당차다


 
신곡 ‘내일해’를 발표한 EXID. 원래 5인조 걸그룹이지만 멤버 솔지가 갑상샘 관련 질환으로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이라서 이번 신곡에 참여하지 못했다. 왼쪽부터 정화 혜린 하니 LE. 바나나컬쳐엔터테인먼트 제공


이엑스아이디(EXID)는 한때 수많은 걸그룹 중 하나에 불과해 보였다. 이미 걸그룹 세계가 ‘레드오션’이 된 2012년 데뷔했다. 보컬 트레이너까지 멤버로 포함되면서 아이돌 연습생 풀이 바닥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데뷔 초 멤버 변동을 겪으며 덜컹거렸고 성적은 시원치 않았다. 히트 작곡가 신사동 호랭이가 기획했지만 유명 프로듀서의 사업 실패 사례 중 하나로 비춰졌다. 모든 건 데뷔 3년 차였던 2014년 영상 한 편으로 뒤바뀌었다.

‘위아래’의 공연 장면을 담은 ‘직캠’(팬이 직접 찍은 동영상)이 인터넷상에서 대대적인 화제를 일으켰다. 너도나도 ‘위 아래, 위 위 아래’를 흥얼거렸다. 발매한 지 3개월이 지난 곡이 차트 ‘역주행’을 시작해 다시 3개월여에 걸쳐 차트를 지배했다. 예능 출연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미디어 환경의 중심이 방송국에서 인터넷으로 이동하는 시대라고들 했다. 아이돌들은 직캠 영상을 신경 쓰기 시작했다. ‘위아래’처럼 색소폰 샘플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곡들이 쏟아졌다. 걸그룹 래퍼들은 EXID의 독특한 톤을 모범으로 삼았다. 한한령(限韓令·한류 금지령)이 내리기 전, EXID는 중국 시장의 러브콜을 받았고 한·중 합작회사 소속이 됐다. 이 5인조 걸그룹이 거론되는 맥락은 판이하게 달라졌다.

이후 발매한 곡들은 얼핏 ‘위아래’의 자기복제처럼 들리기도 했다. 실제로 비슷한 구석이 많은 곡들이었다. 그런데 이들이 보여주는 이미지는 여전히 과감하게 섹시하고, 또 공격적이었다. 뮤직비디오는 고압적인 여성을 그리거나(‘핫 핑크(Hot Pink)’), 미디어의 선정성에 관한 기호들을 동원하기도(‘아 예(Ah Yeah)’) 했다. 거짓말을 하는 남성을 향해 위협적인 어조로 저주를 퍼붓기도(‘엘아이이(L.I.E)’) 했다.

청순 걸그룹이 대대적으로 유행하는 시장에서 EXID는 섹시 코드를 내려놓지 않았다. ‘위아래’가 성적인 맥락에서 소비된 부분이 많았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은 내내 까칠하게 날이 서 있었다. 남성을 위해 서비스하는 기색은 없었다. 그리고 이를 뻔뻔할 정도로 고수했다. 지금 이들만큼 섹시한 안무를 소화하면서도 섹시함을 자신들의 것으로 삼을 수 있는 걸그룹은 없다.

이와 병행해서 EXID는 과거의 곡들을 새롭게 해석해 들려주거나(‘매일밤’ ‘꿈에’), 사뭇 동떨어진 세련되고 쿨한 노선을 시도하기도(‘낮보다는 밤’) 했다. 마치 ‘위아래’가 전부가 아니라는 듯 혹은 ‘위아래’가 아니었다면 EXID가 무엇을 할 수 있었을지 타진해 보는 듯. 그 끝에서 지난 2일 발매된 싱글 ‘내일해’는 90년대 뉴잭스윙을 노골적으로 재현한다. 그러나 이 곡은 과거의 향수를 자극하기보다 싱그럽고 당차게 현재를 즐기는 모습이다. 뉴잭스윙이나 걸스힙합이 국내 여성 그룹에겐 주로 귀여움이나 깜찍함을 부여해온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EXID가 보여준 일련의 행보는 역주행 신화에 매몰되지 않는 선택의 연속이었다. ‘섹시 걸그룹’으로 성공했지만 ‘그저 섹시 걸그룹’으로 단숨에 소비되기를 거부하고 음악적 자산도 쌓아 나가는 길이었다. 뚝심과 냉철함 없이는 어려웠을 일이다. 이런 걸 해낼 수 있는 그룹이 무명 걸그룹으로 묻혀 사라질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면 아찔해진다. 새삼스럽지만 ‘위아래’가 역주행을 해낸 것은 얼마나 다행인 일인가.

미묘<대중음악평론가·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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