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류’ 오타니, 빅리그 빅뱅

미국프로야구(MLB) LA 에인절스의 일본인 선수 오타니 쇼헤이가 4일(한국시간) 애너하임 에인절스타디움에서 열린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의 경기 첫 타석에서 3점홈런을 친 뒤 덕아웃에 들어와 동료들로부터 축하를 받고 있다. AP뉴시스


클리블랜드전 첫 타석서 3점포… 구질 안 가리고 3안타 휘둘러
동료들 덕아웃서 일부러 외면하다 온몸 두드려대며 ‘깜짝 축하’
시범경기 부진에 온갖 질타 받고 정규시즌 직전 타격폼 수정


볼카운트 2볼-2스트라이크 상황에서 시속 73.6마일(118.4㎞)의 느린 커브가 또 들어왔다. 한차례 헛쳤던 구질이지만 두 번의 실수는 없었다. 호쾌한 어퍼스윙에 걸려든 공이 에인절스타디움 우중간 담장을 향해 뻗기 시작했다. 타구를 쫓던 중견수와 우익수의 발이 느려졌다. 공이 떨어진 곳은 담장 밖, 환호하는 관중들 틈이었다.

미국프로야구(MLB) LA 에인절스의 일본인 루키 오타니 쇼헤이가 4일(한국시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의 경기 1회말 첫 타석에서 우중월 3점홈런을 쳤다. 타구속도는 104.5마일, 비거리는 397피트(121m)로 계측됐다.

홈경기 데뷔 첫 타석에서의 홈런이었다. 그는 지난 2일에는 선발투수로 등판해 최고 시속 99.6마일(160.3㎞)의 직구를 뽐내며 6이닝 3실점, 첫 승을 따낸 바 있다. 폭스스포츠에 따르면 승리투수가 된 직후 경기에서 타자로 홈런을 친 것은 1921년 베이브 루스 이후 오타니가 처음이다.

오타니의 MLB 생애 첫 홈런이 만루홈런이 될 수도 있었다. 오타니가 타석에 들어설 때 주자는 만루였다. 클리블랜드 선발 조시 톰린은 오타니와의 승부 중 폭투를 저질렀고, 이때 3루의 콜 칼훈이 홈인했었다.

에인절스 동료들은 그라운드를 돌고 덕아웃에 들어온 오타니를 일부러 외면했다. 루키의 첫 홈런에 짐짓 냉담하게 반응하는 MLB의 짓궂은 관행이었다. 오타니가 양손을 흔들며 한동안 어색해하자, 앨버트 푸홀스 등이 달려들어 오타니의 온몸을 두드려댔다. 마이크 트라웃이 그라운드를 가리키며 오타니에게 “커튼콜(퇴장한 출연자를 관중이 무대로 다시 불러 찬사하는 것)을 받으라”고 했다. 헬멧을 벗어 인사하는 오타니 위로 박수가 쏟아졌다.

시범경기에서 오타니의 부진을 지켜본 익명의 MLB 스카우터들은 ‘고교생 수준’이라며 마이너리그 경험부터 쌓아야 한다고 했었다. “오타니가 제대로 된 커브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는 게 이 같은 주장의 근거였다. 실제로 오타니는 LA 다저스의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가 던진 커브에 루킹삼진으로 물러서기도 했다.

오타니는 정규시즌이 개막하기 직전 다리를 높게 들던 자신의 타격폼을 수정했다. 레그킥 대신 발끝으로 지면을 살짝 튕기는 듯한 ‘토탭(toe tap)’으로 바꾼 것이다. 일본프로야구(NPB)보다 빠른 직구, 각이 큰 변화구에 대처하기 위해 기민한 타격 타이밍을 만들려는 시도였다.

오타니는 바뀐 타격폼으로 구질을 가리지 않고 3안타를 때려냈다. 3회말에는 84.1마일의 컷패스트볼을 받아쳐 우익수 앞 안타를 쳤다. 8회말에는 94.7마일 포심패스트볼을 중견수 앞 안타로 만들었다. 모두 강한 라인드라이브성 타구였다.

투수로서 최고 수준의 직구와 스플리터를 던지고, 지명타자로서 장타를 치는 오타니에게 미 언론은 감탄을 쏟아내고 있다. 폭스스포츠는 오타니의 홈런 영상을 게시하며 “어느 쪽이 더 나은 건지 모르겠다”고 적었다. 투타 양면의 재능을 말한 것이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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