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는 시대다] 재난의 무의식


 
영화 ‘해운대’의 클라이맥스. 거대한 해일이 밀려드는 광안대교 위에서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있다. 당시 한국영화 최초로 광안대교를 전면 통제하고 촬영을 진행했다. 영화사 제공
 
수마와 싸우는 만식(설경구)과 연희(하지원). 영화사 제공
 
2016년 10월 해운대구 마린시티 지역 침수 현장. 초호화 고층 빌딩 및 아파트가 밀집해 있는 곳이다. 부산경찰청 제공
 
윤제균 감독


영화 ‘해운대’에서 지질학자 김휘(박중훈)는 한반도에 발생할 수 있는 거대 지진 해일의 가능성을 두 차례나 경고한다. 그가 주장하는 바는 긴급하고 강력하다. 우리나라는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다, 1년 중 한반도 근해에서 발생하는 규모 3.0 이상 심해 지진의 횟수는 연평균 30회 이상이다, 일단 해일이 밀려들면 해당 지역은 10분 만에 잠기게 된다, 대비하지 않으면 우린 재앙을 맞게 될 것이다, 하는 것이 김휘의 주장이다.

해운대구에서 문화 엑스포를 준비하는 관계자들도, 인근 해상에서의 해일 지진에 대해 보고 받은 부산의 재난 방재 센터장도 김휘의 의견을 무시한다. 설마 그런 일이 여기서 벌어지겠느냐고 그들은 의심하고 반문하지만, 마침내 거대한 지진 해일이 밀려와 부산 해운대 지역을 삼킨다. 도시는 쑥대밭이 되고, 많은 인명피해가 일어난다. 현실에서라면 참혹한 일이었겠지만 스크린 안에서의 일이었기에 오히려 열광의 대상이 되었고, 영화 ‘해운대’는 이 가상적 재난의 힘으로 마침내 1000만 관객을 돌파하게 된다.

영화는 그럼에도 때로 현실을 예기한다. ‘해운대’가 개봉한 지 7년 뒤인 2016년 9월 경주에서는 1978년 공식적인 지진 관측을 시작한 이래 가장 강력한 규모 5.8의 지진이 발생한다. 한반도가 지진 안전국이라는 근거 없는 안도감은 실종되었고 시민들의 생활은 공포에 휩싸였다. 그러고도 무서운 재해는 멈추지 않았다. 다음 해인 2017년 11월 포항에서도 뒤따라 지진이 일어나 경주에서보다 더 많은 부상자와 이재민을 낳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은 저 영화 속의 전문가가 예견한 것처럼 이미 위험지대였음이 밝혀졌다.

관련해 현실과 영화가 겹쳐지는 혹은 현실 안으로 영화가 소환되는 결정적인 사건이 또 하나 있었다. 2016년 제18호 태풍 ‘차바’가 엄청난 파도를 몰고 와 높은 방파제조차 거뜬히 넘어서며 해운대 인근의 초호화 고층 빌딩 지역인 마린시티를 강타하는 침수사고가 일어난다. 차들이 떠밀려가고 건물 일부가 크게 파손되는 등 피해가 컸다. 삼킬 듯이 넘쳐 밀려드는 파도를 공포와 충격으로 내려다보며 찍은 고층 빌딩에서의 동영상이 자료화면으로 제시될 때, 적지 않은 매체가 “영화 ‘해운대’를 보는 것 같다”거나 “재난영화를 방불케 한다”는 표현을 썼다. 영화 속에서의 유사한 재난이 현실에서 얼마간 벌어지자 이내 아수라장이 됐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다 해도 한반도가 아니 더 나아가 지구가 정말로 파국에 이르지 않는 한 재난이 재난영화를, 혹은 재난영화가 재난을 서로 멈추게 하진 못할 것이다. 양쪽은 서로 비교되고 얘기하고 반복하며 끝없이 병행될 것이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거칠게 흔들리는 비행기 안에서조차 비행기가 추락하는 영화를 시청하며 스릴을 즐기거나, 일상 속의 재앙이 되어버린 미세먼지의 잿빛 하늘 아래서도 환경오염으로 절멸에 이른 묵시록적 영화를 즐기게 되는 것이다. 영화의 갖가지 장르 중에서도 이렇게나 집단적인 자학적 두려움을 앞세워 쾌감을 즐기는 장르는 아마 재난영화 외에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이런 재난영화가 일군의 장르적 군집을 형성하게 된 건 1970년대 초중반 할리우드에서다. ‘에어포트’(1970) ‘포세이돈 어드벤처’(1972) ‘타워링’(1974)이 대표적인데, 연배 높은 독자라면 이 작품들이 명절이나 연휴에 성룡의 액션 영화만큼이나 TV에서 자주 방영되던 목록이었음을 기억해낼 것이다.

재난영화를 말할 때 가장 중대하게 거론된 것은 다름 아니라 ‘사회적 은유’로서의 성격이었다. 일례로 재난영화라는 용어가 생겨나기도 전인 1960년대에 공상과학영화 안에서 ‘재앙의 상상력’을 주목한 미국의 문예 비평가 수잔 손택은 “대개 선사시대 이래로 땅속에서 잠자고 있다가 우연히 깨어난,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지닌 괴물은 핵폭탄에 대한 명백한 은유”라고 피력했다. 그러고 보면 우리에게도 이와 유사한 유명한 은유, 주한 미군이 버린 독극물로 태어난 변종 괴물에 관한 영화 ‘괴물’(2006)의 예가 있지 않은가.

한편 1970년대의 미국 재난영화가 당대 미국 정치 및 사회의 허약하고 부패해진 상들에 대한 “정당성의 위기”를 반영한 결과라고 보는 시각(마이클 라이언, 더글라스 켈너)이 있는가 하면, ‘팍스 아메리카니즘’ 그러니까 오히려 국제 유지군으로서 미국의 강한 무력주의와 유력주의를 반영하고 조장하는 소재가 되고 있다고 보는 시각(짐 호버만)도 있었다.

‘해운대’에도 사회적 은유의 측면이 없진 않다. 아니 오히려 은유라고 표현하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직접적인 사회적 반영이 존재한다고 해야 더 옳겠다. 해운대구 지역의 유지이자 재력가인 만식(설경구)의 작은 아버지(송재호)는 지역 소상인들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대규모 빌딩을 지으려 한다. 그가 건축 허가를 받기 위해 지역구 국회의원에게 뇌물을 바치며 부탁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그들의 거래가 성사되는 장소 저 뒤편으로 아름다운 해운대의 바다와 높이 솟은 마천루들이 풍경으로 비춰진다.

영화가 개봉됐던 당시에는 단지 스쳐 지나가는, 일종의 서사적 관습이 작동하는 장면쯤으로 보인 것이 사실이었으나 지금에 이르러 이 장면은 무심코 지나쳐지지 않는다. 천혜의 자연 경관 그러나 그 경관의 아름다움을 독식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하늘로 뻗어있는 초호화로운 욕망의 성채들, 그리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저 풍경을 실물로써 다시 소유하고자 하는 검은 거래 현장…. 이렇게 풀이될 수 있을 만한 이 장면은 마침내 MB 시대에 벌어진 대표적 비리 사건 ‘엘시티 게이트’의 예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물론 ‘해운대’의 시작은 다른 논리와 상상에 힘입은 것이므로 이 영화를 MB 시대의 부산물로만 초점화하는 데에는 무리가 따를 것이다. ‘해운대’의 모델이자 경쟁자라면 사회적 은유로서의 독법을 끌어낸 1970년대의 미국 재난영화가 아니라 2000년대의 특출한 상업적 흥행을 이끌어 낸 재난영화의 장인 롤랜드 에머리히의 영화들일 것이고, ‘해운대’의 근본적인 욕망 또한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산업적 성공과 완성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해운대’는 외계인의 침공, 변종 괴물의 역습, 바이러스의 창궐, 지구 기후의 재앙 같은 재난영화의 흔한 소재 중 상업적으로 더 성공할 만한 적절한 소재 하나를 선택한 것일 뿐이라고 설명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이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다르게 말해 그것은 일반적인 해석 방법일 뿐이고 지금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특수한 부산물이다. 요컨대 ‘해운대’에는 ‘해결과 극복의 서사’가 거의 부재하거나 철저하게 부차화되어 있다. 여기서 인간의 능력 혹은 국가의 보호력, 혹은 시스템의 정교함은 그 무력함과 무용함이 각인되는 수준이 아니라 처음부터 아예 전제되지도 않고 의식되지도 않는다. 모든 것은 너무 늦어 버렸고 누군가의 희생은 불가피해진 것이다.

그것이 결국 재난영화의 장르적 조건과 성격에 일면 관련된 것이라 하더라도 ‘해운대’는 재난 극복에 앞장서는 그 흔한 영웅(성)조차 삭제해버린다. 동춘(김인권)이라는 치사하고 좀 모자란 주변적 인물이 사람들을 여럿 구했다는 풍문이 돌지만 말 그대로 그건 풍문이다. 감독은 영웅이 등장하는 할리우드 재난영화와 평범한 사람들이 주인공인 자신의 영화 사이의 차이에 대해 강변하곤 했다. 하지만 실은 그것은 영화 작법 영역에서의 선택의 차이가 아니라 재난에 처한 인물들이 어떤 서사를 받아들이게 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무의식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 그러니까 실재의 환경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을까.

‘해운대’에서 단 한 장면을 꼽는다면 그건 멜로 드라마적 정점이거나 수마가 덮친 스펙터클, 혹은 그것에 이르기 전까지 구사되는 저렴한 코미디 장면들에 있지 않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 한 가지는 미처 백사장을 빠져 나오지 못한 어느 아버지가 거대하게 밀려드는 파도 앞에서 두려움에 떨며 딸을 안고 뒤돌아서는 짧은 인서트 장면이다. 여기에 거의 무의식에 가까운 은유적 사태가 깃들어 있다. 저 높은 파도 앞에서 무력하게 뒤늦은 발걸음을 떼고 있는 아버지와 어린 딸의 장면, 즉 ‘너무 늦어 버렸다’는 저 이미지야말로 모종의 무력함이 무의식화되고 전면화되고 숙명화된 장면이다.

▒ 윤제균 감독은
평범한 회사원 출신… ‘두사부일체’로 명성


윤제균(49·사진) 감독은 부산 출신이다. 원래 영화와 전혀 관계없는 평범한 회사원이었지만 국제통화기금(IMF) 시대에 어쩔 수 없이 등 떠밀려 받은 무급 휴직이 영화와 연결되는 계기가 됐다. 그때부터 각본을 써나가기 시작해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1999)의 원안을 제공했고, 공포영화 ‘신혼여행’(2000)의 각본을 담당했다. 조폭영화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두사부일체’(2001)의 각본과 감독을 맡았는데 이 영화가 크게 흥행하며 이름을 알렸다.

윤 감독의 행로는 일정했다. 장르적 소재에 치중하되 주변에 있던 소재들을 끌어 모아 응용해 비교적 저렴한 영화들을 만들어 흥행하는 쪽에 소질을 보였다. 성적이거나 가벼운 농담으로 넘쳐나는 ‘색즉시공’(2002), ‘낭만자객’(2003) 등이 초반기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반면 다소 저평가된 감이 있는 ‘1번가의 기적’(2007) 같은 수작을 내놓기도 했다. ‘해운대’는 결정적인 전환점이었다. 본격적인 재난영화를 목표로 당대 최신의 컴퓨터그래픽(CG) 기술을 동원하며 세간의 관심을 끌어 모은 이 영화는 단숨에 1000만 관객을 넘었다.

이후 한동안은 ‘7광구’, ‘퀵’(이상 2011) 등의 대형 장르 영화를 제작하는 데 몰두하는 시기를 보내지만 만듦새에 있어 좋은 결과를 얻진 못했다. 다시 한 차례의 전환점이 된 것은 ‘댄싱퀸’(2012)이다. 기존의 장르적 관습과 한국사회에서 일어날 법한 일화들을 자연스럽게 뒤섞어 웃음과 눈물을 자극하는 대중영화를 기획하게 된다. 그 결과 한국사를 배경으로 한 ‘국제시장’(2014)으로 또 한 번 1000만 영화를 만들어 낸다. 이후 ‘공조’(2016) 등의 제작자로도 성공적인 결과를 내놓고 있다.

<정한석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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