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 무엇을 남겼나… 국민예능의 전설이 되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TV 프로그램'에 가장 많이 올랐던 MBC '무한도전'이 31일 작별을 고했다. 시즌2 가능성을 비치며 '열린 결말'을 맺었지만 13년 동안 토요일 저녁마다 만났던 무한도전은 추억으로 남게 됐다. 무한도전 멤버 조세호 정준하 유재석 양세형 박명수 하하(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MBC 제공
 
2010년 32만명의 관람객을 모았던 무한도전 사진전 풍경.MBC 제공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프로
멤버들,대규모 프로젝트 통해 나름의 캐릭터 형성하며 성장 대한민국 예능판 완전히 바꿔
김태호 PD “우리는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할 문제 던지려고 했다”
유재석 “다시 만나고 싶어요”


2005년 4월 23일 황소와 줄다리기를 하며 첫걸음을 뗐을 때만 해도 아무도 몰랐다. 매주 종영 위기를 겪으며 방송 중임을 자축했던 ‘무한도전’(MBC)이 2018년 3월 31일까지 방송을 이어갈 줄은. ‘어딘가 모자란 여섯 남자’라는 콘셉트의 비주류 이야기는 13년 동안 국민적 사랑을 받았고, 무한도전은 하나의 브랜드가 됐다. 그런 무한도전이 563회 방송을 끝으로 문을 닫았다.

무한도전의 종영을 ‘시대의 종언’이라고도 말한다. TV 시대가 끝났음을 알리는 강력한 신호이자 무한도전이 이끌었던 예능 시대의 종말의 상징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시청자 반응이 시대의 종언과 맞닿아 있다. 자신의 청춘을 함께 했던 무한도전이 끝을 맞으면서 지난날을 돌아보게 된다는 시청자들이 적잖다.

첫 회부터 마지막 회까지 무한도전의 중심을 잡아 온 유재석은 끝인사를 하며 “자신과 멤버들(박명수 정준하 하하 조세호 양세형)의 인생이 담긴 작품”이라고 했다. 누군가의 인생이 담겨 있고, 많은 이들의 청춘을 함께했고, 크고 작은 절망의 시기에 위로를 건네줬던 무한도전. 무한도전 종영은 프로그램 하나가 끝난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브랜드 ‘무한도전’

무한도전에는 여러 수식어가 붙어 왔다. ‘국민 예능’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프로그램’ 등이 무한도전과 동의어였다. 하지만 무한도전을 설명하는 가장 정확한 단어는 ‘무한도전’이다. 무한도전은 그 자체로 브랜드가 됐다.

무한도전은 매 회 다양한 상황에 도전해 가며 거대한 성장 스토리를 써 왔다. 시청률 4%에서 시작해 최고 30%(2008년 ‘이산특집’)를 찍는 정도에 이르렀다. 무한도전도 덩치를 키웠지만 멤버들도 ‘레벨 업’ 해 왔다. 사소한 도전부터 대규모 프로젝트까지 함께해 나가면서 멤버 하나하나가 나름의 캐릭터를 형성하고 성장했다.

무한도전이 처음 ‘무모한 도전’으로 시작했을 때부터 MC였던 유재석은 당시에도 톱 개그맨이었다. 하지만 무한도전을 최고의 브랜드로 성장시키면서 예능 1인자로 자리를 굳혔고, 개그맨을 넘어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됐다.

박명수, 정준하, 하하와 옛 멤버인 정형돈, 노홍철은 ‘모자란 여섯 남자’ 중 하나로 시작했지만 어느새 톱스타가 됐다. 더 이상 ‘모자란’ 사람들이 아니게 되면서 캐릭터들의 성장 스토리에는 긴장감이 떨어졌지만 무한도전만이 할 수 있는 이슈를 다루면서 브랜드 가치를 높였다.

일본 하시마섬(군함도)을 찾아 일제 강점기에 강제 징집된 조선 노동자들의 아픔을 다루고, 지구 온난화를 비롯한 환경 문제를 돌아보고, 비인기 스포츠 종목을 알리는 등의 일은 무한도전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예능의 외연을 확장시키고 현실을 바꾸는 데 일조하게 됐다.

무한도전 김태호 PD도 지난 30일 기자간담회에서 “무한도전이 할 수 있는 일이었고 해야 할 일이었다”고 밝혔다. 김 PD는 “저희가 받은 사랑으로 삶에 기여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계몽주의적이라며 비판하는 분들도 계셨지만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를 던지고 싶었다”고 말했다.

무한도전이 성장하면서 아이돌 그룹 같은 팬덤도 생겼다. 강력한 팬덤을 바탕으로 시청자가 프로그램에 적극 관여하고 시청자 의견이 즉각 반영되는 식으로 꾸려졌다. 시청자가 또 하나의 멤버가 되는 현상이 만들어졌다.

김교석 대중문화평론가는 “무한도전은 TV 시청 방식을 바꿔 놓은 프로그램이다. 무한도전의 캐릭터 쇼에 시청자들이 감정 이입하게 되면서 콘텐츠를 받아들이는 방식이 달라졌다”며 “수동적인 시청자를 능동적인 존재로 바꿨다는 점이 특히 의미 있는 유산”이라고 평가했다.

21세기 대한민국 예능의 원류

무한도전의 등장과 성장은 대한민국 예능판을 완전히 바꿨다. 결정적인 것은 개별 카메라 시스템의 도입이었다. 김 PD가 무한도전을 이끈 2006년부터 여섯 멤버들에게 카메라가 한 대씩 따라 붙었다. 과거 예능 시스템에선 카메라 두 대가 전체를 담았다. 하지만 김 PD가 여러 대의 카메라를 끌어들이고 방송 시간을 늘리면서 무한도전만의 캐릭터 쇼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무한도전의 성공은 다른 방송사들에도 자극이 됐다. ‘1박 2일’(KBS), ‘런닝맨’(SBS) 등은 시작 단계에선 무한도전 아류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나름의 세계를 구축하며 각 방송사의 대표예능이 됐다.

무한도전에서 한두 회차에 걸쳐 다뤘던 특집이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스핀오프 되는 일도 적잖았다. 무한도전 강변북로가요제 특집에서 시작한 예능과 음악의 결합은 ‘나는 가수다’(MBC) 등 음악예능으로 확장됐다.

지금 대세가 된 관찰 예능도 무한도전에서 특집으로 수차례 다뤄졌던 형식이다. 옛 멤버 노홍철이나 정형돈 집에 관찰 카메라를 설치해 혼자 사는 남자의 일상을 보여줬던 일이 여러 번 있었다. 지금 전성기를 달리고 있는 ‘나 혼자 산다’(MBC)의 파일럿 버전이었던 셈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예능의 형식 측면에서도 많은 도전을 했고, 다른 예능 프로그램에 녹아들어갔다. 여러 예능 프로그램 탄생에 무한도전이 영향을 준 것”이라며 “많은 예능 PD들이 무한도전에 마음속으로라도 예우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예능 역사뿐 아니라 대중문화사에 한 획을 그은 무한도전이 끝을 맺었다. MBC는 ‘시즌1’ 종영이라고 하고, 누구도 완전히 ‘마지막’이라고는 말하지 않고 있다. 마지막 방송조차 끝을 기념하지 않았다. 김 PD는 “열린 결말”이라고 했고, 유재석은 “갑작스러운 종영에 아쉽고 죄송하다. 다시 만나고 싶다”고 했다.

열린 결말이라는 점에서 무한도전 팬들은 약간이나마 희망을 품고 있다. 김 PD는 “지금 이별이 아쉽긴 하지만 다시 반갑게 맞이할 날이 오지 않을까 하고 멤버들과 이야기했다. 자신 있게 보여드릴 수 있는 게 생겼을 때 또 인사드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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