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는 시대다] ‘우생순’의 빛과 어둠


 
2004년 아테네올림픽을 앞두고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다시 뭉친 아줌마 선수들. 왼쪽부터 미숙(문소리)과 혜경(김정은), 정란(김지영).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포스터.
 
남자 감독, 남자 코치, 신세대 선수들, 구세대 선수들의 조합은 갈등을 거쳐 단단해진다(위 사진). 2004년 아테네올림픽의 실제 주역들(아래 사진). 영화사 제공, 국민일보DB
 
임순례 감독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여자 핸드볼팀은 결승에 진출했다. 상대는 강력한 우승후보인 덴마크였다. 한국 대표팀의 실력도 만만치는 않았다. 이들은 이미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금메달을,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전력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림픽에서의 성과는 이들에 대한 지원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핸드볼 실업팀은 단 5개만 존재하는 상황이었고, 올림픽을 위해 노장들이 다시 중심에서 뛰어야 했다. 한국팀에게 2004년 아테네에서의 결승전은 온갖 악재와 싸우며 오른 자리였다. 이들은 덴마크와 접전 끝에 연장전, 재연장전에 이어 승부던지기까지 가지만, 우승을 목전에 두고 패배하며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대한민국 여자 핸드볼팀이 보여준 경기력은 최악의 조건을 딛고 이룬 최고의 성취였다.

그로부터 3년 뒤, 감독 임순례와 MK 픽쳐스의 대표 심재명은 그날의 기적을 스크린에 되살린다. 열악한 현실 조건에서 나이 든 선수들이 펼친 뛰어난 경기 장면은 이미 그 자체로 ‘영화’ 같았으니 이 실화가 영화화되는 일 자체는 크게 놀랍지 않았다. 물론 위험부담은 있었다. 이것은 스포츠 영화지만 여기엔 영웅도, 그가 맞이하는 영광의 순간 같은 것도 부재한다. 소위 스타급 배우들의 멜로라인 대신 30대 중반에 이른 동갑내기 배우들, 문소리 김지영 김정은이 ‘아줌마’ 선수들로 등장한다. 근사한 사연이 아니라 현실과 훈련에 찌든 몸이 중심에 놓인다. 영화는 경기 장면을 화려하게 되살리며 스포츠의 쾌감을 양산하는 데 몰두하지도 않는다. 심재명은 이 영화의 제작비 36억원 가운데 경기 장면에 사용된 비용은 6억원에 불과했다고 밝힌 적이 있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스포츠 장르를 내세우지만, 스포츠의 극적인 속성을 현실의 평범하고 초라한 세속성 쪽으로 끌어내리는 데 더 힘을 기울인다. 비인기 종목과 주변부 인생을 앞세우며 드라마틱한 반전과 끝내 거리를 둔 이 영화에 400만명 이상의 관객이 호응을 보낸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하지만 그 호응은 한편으로는 납득할 만한 것이기도 하다. 역경을 지나 맞이하는 역전극의 통쾌한 감동보다 한국 관객들이 더 깊이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요소가 이 영화에는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앞서도 말했듯, 주요 등장인물들이 ‘아줌마’라는 상황과 관련된다.

스포츠의 장에서만큼은 거기 참여하는 자들의 정체성이 오직 경기에 임한 ‘선수’라는 사실로만 접근되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아줌마’라는 사회적 호명을 경기장 안으로까지 적극적으로 불러들인다. 아니, ‘아줌마’ 선수들에게 앞의 수식을 떼는 일은 애초 불가능하다고 호소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이 아줌마임에도 불구하고 선수이기 때문이 아니라, 아줌마이기 때문에 지금 그 자리에서 선수로 활동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자의 경우라면 예의 스포츠 영웅담에 가까워지겠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생활과 생존의 문제가 중요해진다. 이 영화는 ‘아줌마’라는 위치가 지니는 전형성을 용인하면서도 그를 향한 사회적 비웃음에는 동참하지 않는다. 이게 무슨 말일까.

먼저 인물들의 면면을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소속팀의 해체가 선언된 뒤 미숙(문소리)은 마트 야채코너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게 된다. 한때 함께 운동을 했던 남편은 사기를 당해 도망을 다니는 신세고, 하나뿐인 아들과의 생활은 모두 미숙이 책임진다. 같은 팀이었던 정란(김지영)은 누구보다 선수로서의 의욕이 강하지만 남편이 운영하는 설렁탕 가게 일을 돕고 있다. 그는 젊은 시절 경기에 대한 욕심 때문에 생리주기를 인위적으로 조절하다 불임이 된 상태다. 과거 이들과 함께 경기장을 누볐던 혜경(김정은)은 일본에서 감독으로 일하던 중, 한국 대표팀의 감독 대행으로 다시 돌아온다. 그러나 협회는 그의 이혼경력을 들먹이며 한때 그와 연인관계였고 지금은 세계적인 선수로 도약한 안승필(엄태웅)을 감독 자리에 앉히겠다고 선언한다.

미숙 정란 혜경이 결혼 제도 안에 있거나, 그것을 경험한 여자라는 사실은 이들을 영화 속 다른 인물들과 구별 짓는 결정적인 차이다. 그들은 나이 든 여자이자,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적’ 결혼 제도에의 안착에 실패한 기혼자다. 그들이 놓인 삶의 조건은 싱글인 남자 감독이나 20대 후배 여자 선수들의 그것과도 다르다. 영화 안에서 이들은 어떤 범주 혹은 속성을 표상하는 집단이다. 표면적으로 그들은 뻔뻔하고 그악스럽고 창피를 모른다. 행동은 과격하고 힘은 세다. 악착같고 시끄럽다. 그들에게 생존본능보다 중요한 건 없다.

이를테면 미숙은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서 훈련장에 데려온다. 아이가 훈련을 방해하자 감독이 핀잔을 주지만 미숙은 당당하게 반문한다. “놀이방엔 누가 맡기고 누가 찾아오는데요?” 버릇없는 후배들 앞에서 정란은 고함을 지르고 머리채를 잡는 데 망설임이 없다. 이런 장면도 있다. 정란 미숙 혜경은 서로 몰래 녹용을 먹다가 약물 검사에서 걸려 감독 앞에 불려간다. 몸에 좋다는 건 먹고 보는 이들의 행동이 태릉선수촌에 입촌한 선수들의 태도로 보기에 더없이 부주의하게 느껴지는 건 당연하다.

말하자면 그들은 남자 감독이 내내 강조하는 수치로 환산되는 세련되고 과학적인 유럽식 훈련법의 반대편에 존재한다. 몸으로 투박하게 부딪치며 소처럼 땀을 흘리며 습득하는 낡은 훈련법의 대변자로서 말이다. “연금 타먹을 대로 타먹었으면 후배 위해 자리를 터 줘야지”라는 젊은 후배들의 불만처럼 무리하게 자기 몫만 챙기는 이기적인 자들로 비춰지기도 한다. 그들은 사회가 자주 상투화하는 “말 많은 아줌마”들이자 “무서운 아줌마”들이다. 그러니 그들이 맞서야 할 대상은 젠더적 편견뿐만 아니라 세대갈등이기도 하다. 그들에게 운동선수로서 육체적 노화의 문제는 차라리 싸우며 극복하기 쉬운 대상이다.

물론 대중영화로서 아줌마와 아줌마 아닌 자들 사이의 갈등은 전자의 성질이 긍정되고 이해받는 쪽으로 귀결된다. 여자 후배들에게 그들은 든든한 언니이자 엄마로서 남자 감독과 코치가 결코 메울 수 없는 지점들을 채워준다. 경기력과 팀워크는 감독의 유럽식 훈련법이 아니라, 이들의 육체적 근성과 심리적 연대에 의해 가능해진 결과로 보인다. 처음에는 웃음거리였던 아줌마의 악바리 같은 생활력, 아줌마의 몸과 힘은 스포츠라는 장르를 지나며 그 정직한 가치와 활력을 제대로 승인받는다. 이 영화에서 스포츠는 다른 무엇보다도 아줌마들의 가치가 사회적 조롱과 싸워 회복되는 장소에 다름 아니다. 여기까지가 이 영화의 건강함과 밝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달리 말해, 상업기획영화의 틀을 충실히 따르는 이 영화에도 끝내 해결되지 않는 어둠이 있다. 미숙 정란 혜경은 다 같은 아줌마가 아니다. 정란은 실업팀이 해체되어도 남편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일하며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다. 혜경은 일본팀 감독으로 복직하면 된다. 둘은 중산층 이상의 경제력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미숙은 다르다. 미숙은 철저히 혼자다. 남편의 빚 때문에 집까지 팔아서 머물 곳도 없고, 핸드볼 선수가 아니라면 비정규직 노동자가 (그나마 운이 좋다면) 그에게 남겨진 유일한 대안이다. 핸드볼 선수로서 천재적인 기량을 지녔으면서도 그는 운동이 좋아서가 아니라 먹고 살기 위해서 뛸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곤 한다. 세 아줌마들 중 미숙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가장 고단할 수밖에 없는 아줌마다.

결승을 앞두고 미숙의 남편이 약을 먹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그의 발걸음을 공항으로 향하게 할 때, 영화는 이렇게 체념하는 것 같다. 젠더의 문제는 스포츠 장르 안에서 일시적일지라도 해결할 수 있다 해도, 거기 더해진 계급의 문제 앞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고. 그런데 이내 미숙은 비행기를 타는 대신 경기장으로 되돌아올 결단을 내린다. 영화는 동료들과 결승전을 뛰는 미숙의 모습을 그가 경기장으로 향하기 직전 공항에서 남편에게 전화를 거는 장면과 교차시킨다. “미안한데, 난 포기 안할 거거든. 당신도 포기하지 마.” 그는 무엇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일까. 게다가 다른 누구도 아니라, 그렇게 모든 걸 무릅쓰고 돌아온 미숙에 의해 덴마크와의 결승전에서 패배하게 되는 결말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제 그의 삶은 어떻게 될까. 패배를 확인하고 선수들이 부둥켜안고 우는 모습은 마치 영화가 미숙의 처지를 향해 흘리는 눈물처럼 느껴진다.

10여 년 전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승패와 상관없이 건재한 ‘아줌마’들의 몸의 활기에 사로잡혔던 것 같다. 아마 극장을 찾은 대다수의 관객들도 그러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와 다시 보니 다른 생각도 든다. 이 영화가 시종일관 바라보고 있던 것은 핸드볼 경기장의 땀과 환호가 아니라, 7년 뒤 등장한 영화 ‘카트’(감독 부지영)의 메마르고 냉정한 현실이 아니었을까. 싱글맘, 중년의 아줌마, 청년세대 등 나이와 직종을 불문한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거대한 회사의 폭력에 맞서 맨몸으로 처절한 싸움을 벌어야 하는 세계 말이다.

▒ 임순례 감독
가난하고 불안한 삶 사는 사회 주변부에 눈길… 다방면에서 왕성한 행보


1960년생인 임순례(사진)는 87년 한양대 대학원 연극영화과를 수료하고 프랑스 파리 제8대학에서 ‘미조구치 겐지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에 돌아온 뒤 93년에 여균동 감독의 ‘세상 밖으로’에서 연출부 생활을 했고, 이듬해에는 단편 ‘우중산책’을 만들었다. 삼류극장에서 일하는 여직원의 일상을 그린 이 영화로 그는 제1회 서울 단편영화제 대상을 받았다. 장편 데뷔작인 ‘세 친구’(1996)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채 군 입대를 앞두고 있는 세 청년의 일상을 섬세하게 응시하는 성장담이었다.

가난하고 불안한 현실 속, 사회 주변부에 머무르는 그의 시선은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로 이어졌다. 쇠락한 나이트클럽 밤무대에서 공연하는 4인조 밴드의 이야기였다. 같은 해에는 ‘아름다운 생존-여성영화인이 말하는 영화’라는 다큐멘터리를 연출했다. 한국 여성 영화사를 들여다봄과 동시에 여성 감독으로서 자신의 위치를 돌아보는 것처럼 보였다. 2007년 심재명과 함께 만들어 2008년 개봉한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흥행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그는 ‘날아라 펭귄’ ‘소와 함께 걷는 법’ ‘남쪽으로 뛰어’ ‘제보자’ 등 작품을 꾸준히 발표했고 틈틈이 영화 제작에도 참여했다. 현재 그는 인천영상위원회 운영위원장이며,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의 대표로도 활동 중이다. 당대 한국영화사에서 그만큼 조용히, 지속적으로 다방면에서 행보를 이어가는 감독은 흔치 않아 보인다. 삶에 대한 그 자신의 태도가 필모그래프 자체에 그대로 투영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최근 개봉한 ‘리틀 포레스트’는 극적인 사건이 없는 작은 규모의 영화임에도 1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임순례의 힘을 새삼 되새기게 하는 중이다.

<남다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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