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묘의 아이돌 열전] ⑫ 15년 ‘아이돌 투쟁’ 동방신기, 이제 ‘운명’을 노래한다


 
신화를 제외하고는 가장 오래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보이그룹 동방신기. 탄탄한 가창력을 토대로 15년 동안 관록을 쌓아오며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8집이 오는 28일 발매될 예정이다. 왼쪽부터 최강창민, 유노윤호. SM엔터테인먼트 제공


아이돌이 저무는 시기에 데뷔… 흔들림 없는 가창력으로 무장
인정 받기 위한 오랜 투쟁 끝에 완연히 성숙한 모습 보여줘
성장해 가는 방법 수립하기도… 새 앨범 키워드 중 하나는 ‘운명’


그룹 동방신기(東方神起)의 이름은 ‘동방에서 신이 일어난다’는 뜻의 한자 조어다. 데뷔 15년이 지난 지금도 새삼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는 이름이다. 동방신기가 전 세대 아이돌과 가장 크게 구별되는 것은 처음부터 중국 진출을 염두에 두고 기획됐다는 점이다. 여느 아이돌 그룹에 한 명쯤 있는 영어권 출신 멤버조차 해외 시장이 아닌 국내 대중을 겨냥하던 시대였다. 세계 대중음악 시장의 변방인 우리 음악이 외국으로 진출한다는 것은 당시 낯설었다.

중국 시장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류를 염두에 둔 동방신기의 기획은 결국 일본 시장에서의 성공에 밑바탕이 됐다. 때마침 2003년 불어닥친 드라마 ‘겨울연가’ 열풍은 일본에 한류 붐을 일으켰다. 동방신기는 일본 시장에 보다 깊숙이 진입하기 위해 작은 공연장을 돌며 밑바닥부터 기반을 쌓아올렸다. 중년 여성들의 것이었던 일본에서의 한류가 점차 젊은 층으로 확대되는 시점이었다. 동방신기는 꾸준한 음악 활동과 예능 및 연기 활동으로 마치 일본 현지에서 자국 연예인처럼 받아들여졌다.

많은 이들이 동방신기 기획을 ‘일종의 인정투쟁’으로 이해한다. 이들이 데뷔한 2003년은 아이돌이 저물어 ‘아이돌 겨울’을 맞고, 알앤비(R&B) 발라드가 강세를 보인 시기였다. 가창력에 대한 대중적 요구가 높아지면서 음악방송에서 립싱크가 퇴출됐다. 동방신기는 ‘아카펠라’를 팀의 키워드로 내세웠다.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가 양성 중이던 여러 연습생 팀에서 리드보컬 멤버만을 뽑아 데뷔시켰다는 뒷이야기도 돌았다. 가창력만큼은 도무지 흠잡을 수 없는 멤버들이었다. 더 나아가 격렬한 퍼포먼스를 하면서도 가창력에 흔들림이 없어야 했다. 심지어 그것이 데뷔 초 ‘트라이앵글(Tri-Angle)’과 ‘라이징 선(Rising Sun)’ 등 팬들의 몰입을 유도하지만 대중적으로는 다소 기이한 소위 SM 특유의 장르인 ‘SMP’를 통해 드러나야 했다. ‘아이돌은 노래를 못한다’는 편견에 동방신기는 과해 보일 정도로 저항했다. 그리고 아이돌이 노래를 잘한다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보여주려 했다.

2009년 동방신기는 뼈아픈 ‘재편성’을 겪었다. 특히 인기몰이를 하던 멤버들이 떠나면서 상황은 더욱 나빠 보였다. 이들은 2010년 ‘킵 유어 헤드 다운(Keep Your Head Down)’처럼 강인한 모습으로 새롭게 시작했다. 과거 ‘오정반합(O-正.反.合)’처럼 위악적이진 않으나 ‘캐치 미(Catch Me)’와 ‘휴머노이즈(Humanoids)’ 등은 무겁고 엄숙하며 동시에 팝적이었다. 새로운 색깔의 음악과 함께 퍼포먼스도 기계적이고 미래적인 스펙터클에 집중했다. 2인조로 재편성되면서 유노윤호와 최강창민이 서로의 그림자처럼 더욱 완벽한 합을 보이게 된 점을 잘 살린 것이다. 건재의 증명이었다.

10주년 기념 앨범이기도 했던 2014년의 ‘텐스(Tense)’는 동방신기가 완연한 어른이 되었음을 선언했다. 펑크 사운드 기조의 팝은 차갑고 화려하면서도 친숙한 팝적 멜로디를 갖췄다. 여기에 정교한 퍼포먼스가 곁들여져, 물 샐 틈 없이 단단한 성인 남성의 향취를 발했다. 그것은 동방신기가 갖게 된 관록과 여유의 증명이기도 했다. 노래를 잘한다거나 아이돌이 우스운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려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동방신기는 신화를 제외하고는 가장 오래 지속한 보이그룹으로서 산전수전을 겪으며 아이돌이 성숙해 나가는 법을 수립한 장본인들이다. 오는 28일 2년 8개월 만에 발매되는 정규 8집 앨범의 키워드 중 하나는 ‘운명’이다. 성숙을 입증해낸 입장에서 말하는 운명은 어떤 이야기일지 기대된다.

미묘 <대중음악평론가·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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