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게 차분하게… 한 듯 만 듯 지나간 삼성 ‘80주년’

삼성전자가 22일 ‘한국판 타임스스퀘어’로 조성되는 서울 강남구 코엑스·무역센터 일대 SM타운 외벽에 국내 최대 규모의 고화질 발광다이오드(LED) 사이니지를 설치했다. 이 제품은 가로 81m, 세로 20m로 농구 경기장 4배 크기이며 업계 최고 수준의 9000니트 밝기와 UHD 2배급 해상도를 자랑한다. 삼성전자 제공




잇단 악재에 계열사별로 80년사 기록한 7분짜리 다큐멘터리 동영상 시청
당분간 지난 2월 구축된 3개 소그룹 체제 유지될 듯


삼성그룹 계열사들이 22일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그룹의 지난 역사를 돌이켜보며 창립 80주년 기념일을 보냈다. 성대한 창립 기념일 행사는 없었지만 최고경영진은 ‘변화’와 ‘상생’으로 미래를 준비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별도 창립 기념행사를 개최하는 대신 오전 계열사별 사내방송을 통해 삼성의 80년사를 기록한 7분짜리 다큐멘터리 동영상 ‘다이내믹 삼성(Dynamic Samsung) 80’을 시청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대표이사들은 이 영상에 등장해 미래지향적 메시지를 전달했다. 권오현 회장은 “변화를 위해서는 우리 임직원들의 마인드셋(사고방식)과 일하는 방법, 이런 것들이 지금 다시 한 번 변신해야 할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종균 부회장은 “지금까지의 성공은 수많은 협력사들이 우리를 잘 도와준 덕분”이라며 “앞으로도 함께 성장해 나아가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윤부근 부회장은 “선후배 임직원들의 노력과 헌신이 모여 불가능을 가능케 했고 오늘날의 글로벌 일류회사로 일궈냈다”며 지난 80년을 평가했다.

삼성그룹은 창업자인 이병철 선대 회장이 1938년 3월 1일 대구에서 시작한 ‘삼성상회’를 모태로 한다. 오랫동안 3월 1일을 창업일로 기념했지만 87년 총수에 오른 이건희 회장이 이듬해 ‘제2의 창업’을 선언하고 창립 기념일을 3월 22일로 바꿨다.

80년 전 삼성상회는 자본금 3만원에 불과했으나 지난해 62개 삼성그룹 계열사 자산은 363조원에 이른다. 임직원 수도 40명에서 50만명으로 늘었다. 16개 상장 계열사의 시가총액은 지난해 말 기준 489조8360억원으로 코스피 전체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삼성그룹은 그러나 최근 여러 악재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회장은 병상에 있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돼 재판을 받고 있다. 이 부회장은 지난달 5일 2심 재판에서 집행유예로 석방됐으나 아직 대법원 판결이 남아 있다. 최근에는 이 회장의 차명계좌 추가 발견과 이명박 전 대통령의 소유가 확실시되는 다스의 미국 소송비용 대납 의혹 등이 불거지면서 여론이 악화됐다. 하지만 최근의 잇따른 삼성 때리기는 삼성그룹이 국가경제 발전에 이바지해 온 측면을 고려하지 않은 과도한 질타라는 의견도 있다.

삼성그룹은 지난해 2월 경영쇄신안 발표 이후 구축한 3개 소그룹 체제를 당분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삼성전자 등 전자계열사는 사업지원TF(태스크포스)를 중심으로 협업하고 있다. 삼성물산 등 비(非)전자계열사는 ‘EPC경쟁력강화TF’가, 삼성생명 등 금융계열사는 ‘금융경쟁력제고TF’가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다.

경영 전문가들은 삼성이 80년을 넘어 ‘100년 기업’이 되기 위해선 독창성을 키우되 다른 글로벌 기업과 협력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타룬 카나 미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동영상에서 “실리콘 밸리나 다른 기업의 방향성을 단순히 모방하는 것은 금물”이라고 충고했고, 케빈 켈러 미 다트머스대 경영학과 교수는 “사람들의 삶을 더 나아지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신동엽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면서 동시에 협력하는 소위 협력적 경쟁이라 불리는 새로운 경영모델로의 대전환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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