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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월드] “벚꽃처럼… 메이지유신은 환상” 150주년 일본은 지금

일본 서남부의 가고시마(옛 이름 사쓰마), 야마구치(조슈), 고치(도사), 사가(히젠) 4개 현은 사이고 다카모리, 기도 다카요시, 사카모토 료마, 오쿠마 시게노부 등 메이지유신 주역들을 배출한 지역이다.


사이고 다카모리를 내세운 대하드라마 ‘세고돈’의 한 장면. NHK 캡처


19세기 서쪽 변방 4개의 번 ‘사조도히’ 일왕과 손잡고 근대적 통일국가 세워
그 과정서 앞장섰던 사쓰마·조슈 파벌 태평양 전쟁 책임 있지만 정치권서 건재
아베는 조슈, 고이즈미 전 총리 사쓰마 출신
봉건제 대체한 제정일치 군주제 폐해 커 학계·지식인 중심으로 비판 여론 높아


일본 공영방송 NHK는 매주 일요일 저녁 8시에 역사 속 인물을 소재로 한 1년짜리 대하 드라마를 방송한다. 올해 대하 드라마는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주역 중 한 명인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를 다룬 ‘세고돈’이다. 세고돈은 사이고의 고향인 가고시마(당시엔 사쓰마) 사투리로 ‘사이고님’이란 뜻이다. 하야시 마리코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에서 사이고 역은 톱스타 스즈키 료헤이가 맡고 있다. 하지만 지난 1월 드라마가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시청률은 14∼15%로 이전 드라마들과 비교할 때 그다지 높지 않다.

한국인의 입장에서 드라마 ‘세고돈’은 왠지 꺼림칙하다. NHK가 올해 150주년을 맞은 메이지유신 기념작으로 ‘정한론(征韓論)’을 주장했던 사이고를 내세웠기 때문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도 요즘 메이지유신을 끊임없이 강조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메이지유신의 정신적 지도자이자 근대적 의미의 정한론을 처음 주창한 요시다 쇼인을 가장 존경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올해 ‘새로운 메이지유신’으로서 전쟁국가로 가기 위한 헌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메이지유신은 도쿠가와 막부를 붕괴시키고 일왕 친정체제의 통일국가를 형성시킨 근대 일본의 정치·사회적 변혁을 가리킨다. 당시 메이지유신의 주역은 일본 서쪽 변방에 있는 4개 번(藩)의 앞머리를 따서 ‘사조도히’, 즉 사쓰마(지금의 가고시마) 조슈(야마구치) 도사(고치) 히젠(사가) 출신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가장 부유하고 군사력이 강했던 사쓰마와 조슈가 앞장섰다.

도쿠가와 막부와 오랫동안 관계가 좋지 않았던 사쓰마와 조슈는 서구에 문호를 개방한 막부 정책을 비판하며 ‘존왕양이(尊王攘夷)’를 내세웠다. 존왕양이는 왕을 높이고 오랑캐를 물리친다는 뜻으로 일왕 친정체제 구축과 서양문물 배척을 뜻한다. 하지만 사쓰마와 조슈는 영국, 네덜란드, 미국 해군과 싸우면서 서양 기술의 우수성을 깨닫고 개화로 입장을 바꿨다. 또한 막부의 눈을 피해 청년들을 영국에 유학 보내는 등 신문물을 익힌 인재들을 키워냈다. 이들 하급 사무라이 출신인 청년들은 나중에 메이지유신 이후 군대를 만들면서 자신의 뿌리인 사무라이 계급의 완전한 몰락을 초래했다.

사쓰마와 조슈는 원래 앙숙이었지만 1866년 도사 번 출신인 사카모토 료마의 중재로 동맹을 맺었다. 그리고 1868년 일왕과 손을 잡고 도쿠가와 막부를 타도하는 한편 메이지유신을 통해 중앙집권적 근대국가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특히 군대가 만들어진 후 조슈 출신은 육군, 사쓰마 출신은 해군에서 주로 활약했다. 두 번은 일본의 2차대전 패전의 중심에 있지만 여전히 정계에 적지 않은 파벌을 이루고 있다. 아베 총리는 조슈 파벌이고,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사쓰마 파벌이다.

아베 총리는 올 들어 신년사를 비롯해 틈만 나면 메이지유신을 입에 올리고 있다. 특히 1∼2월엔 북한 핵·미사일 위협과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안고 있는 일본이 과거 메이지유신 직전의 격동기에 버금가는 ‘국난(國難)’이라고 위기감을 극대화하면서 메이지유신처럼 국가를 새롭게 만드는 전기를 마련하기 위해선 헌법 개정과 ‘일하는 방식 개혁’ 등 자신이 추진하는 개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예전부터 야마구치 출신, 즉 메이지유신을 주도한 조슈 출신임을 유난히 강조해 왔다. 일본 역대 총리 62명 가운데 조슈 출신이 8명이나 되는데 메이지유신 주역이자 초대 총리였던 이토 히로부미를 시작으로 메이지유신 50주년인 1918년에 총리를 지낸 데라우치 마사타케, 100주년인 1968년에 총리를 지낸 사토 에이사쿠는 공교롭게도 모두 조슈 출신이다. 150주년인 올해 조슈 출신인 아베가 총리를 맡고 있어 메이지유신의 정신을 잇는 모양새가 됐다.

올해 일본 정부는 메이지유신을 적극 홍보하고 나섰고 가고시마, 야마구치, 고치, 사가 등 4개 현에서도 150주년 관련 대규모 행사들이 1년 내내 치러질 예정이다. 4개 현은 아예 ‘헤이세이(현재 일본 연호) 사조도히 연합’을 결성해 전일본공수(ANA항공)와 함께 관광 프로그램을 함께 기획하는 등 메이지유신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일본 내에서 메이지유신 150주년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부와 4개 현을 제외하면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학계와 지식인 등에서는 오히려 비판의 목소리가 많다. 그동안 메이지유신이 지나치게 미화됐다는 것이다. 실례로 위인 반열에 올라선 유신 지사들이 대표적이다.

모리타 겐지 오사카대학 교수는 최근 발표한 책 ‘메이지유신이라는 환상’에서 유신 지사들에 대해 “사리사욕을 추구한 인물들”이라고 비판했다. 모리타 교수는 “당시 1등관 공무원 월급이 500엔에서 800엔이었는데, 현재 화폐 기준으로 환산하면 750만∼1200만엔(7600만∼1억2100만원)”이라며 “당시 순사 초임이 4엔이었던 것을 보면 유신 지사들이 얼마나 나랏돈을 축냈는지 알 수 있다. 게다가 그들은 항상 뇌물도 요구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아베 총리가 메이지유신을 찬양하며 “당시 정신을 본받자”고 하는 데에도 거부감이 높아지고 있다. 메이지유신으로 무사 위주 봉건제에서 벗어난 것은 맞지만 거기에서 만들어진 체제는 일왕을 신으로 숭상하고 국민은 일왕에게 목숨을 바치도록 강제하는 제정일치 군주제 국가였기 때문이다. 인권은 심하게 제한됐으며, 가난한 사람과 여성의 참정권은 인정되지 않았다. 또한 신분제 역시 해소되지 않은 채 서민들은 철저히 착취되는 반면 국가의 부는 재벌과 대지주에게 집중됐다. 게다가 대외적으로는 제국주의 국가로서 수많은 침략전쟁을 일으키고 많은 나라 사람들의 생명과 자유를 빼앗았다. 게다가 이후 80년 동안 ‘신의 나라 일본’이라는 말도 안 되는 사상으로 일본을 2차대전 패전국, 특히 원자폭탄 피폭국으로 몰아넣었다.

원로 역사가 한도 가즈토시는 지난 1월 27일 잡지 동양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메이지유신 150주년을 축하하는 것은 사쓰마와 조슈가 만들어낸 사관(史觀)”이라면서 “당시 만들어진 귀족 계급은 모두 사쓰마와 조슈 출신의 몫이었다. 반면 막부 편을 들었다가 그들에게 패한 번의 사람들은 반란군 출신이라며 철저하게 차별받았다”고 비판했다. 이어 지난 12일 경제잡지 아에라(AERA)와의 인터뷰에서 “요즘 일본을 보면 다른 민족에 대해 헤이트스피치(혐오 발언)를 공공연히 하는 등 ‘양이(攘夷)’ 정신이 되살아난 것 같아 우려스럽다”며 “아베 총리가 헌법을 바꾸고 새로운 국가를 만들겠다는데, 그것은 메이지 시대의 군사국가다. 지금 일본 국민은 민주주의 국가로 나아갈지, 다시 과거의 군사국가로 돌아갈지 선택을 강요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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