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는 시대다] 비범하고 담대한 역사 풍자극


 
영화 '그때 그 사람들' 속 상상으로 묘사된 궁정동 연회 장면. 영화사 제공
 
배우 한석규(왼쪽)와 백윤식(가운데)은 이 영화에서 그들 연기 역량의 최고치를 보여준다. 영화사 제공
 
개봉 당시 법원으로부터 삭제명령을 받은 후반부 일부 장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례식 자료 화면이다. 영화사 제공
 
임상수 감독


임상수 감독은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중반 사이 한국에서 가장 도발적인 영화를 만드는 창작자 중 한 명이었다. 훗날 감독 자신이 '바람난 가족'(2003) '오래된 정원'(2007)과 함께 '한국 현대사 3부작'이라고 칭하게 되는 '그때 그 사람들'(2005)은 일명 10·26 사건이라 불리는 박정희 정권 말기 당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박정희 저격 사건을 소재로 다루었다. 소재부터가 민감했는데 이 작품을 내놓자 영화 외적으로 후폭풍이 거셌다.

찬사에서 비난에 이르기까지 여러 반응이 쏟아져 나왔지만 그 중에서도 역시 가장 거센 반응은 박정희의 추종자들과 가족들에게서 나왔다. 그들은 영화의 내용이 고인의 명예를 더럽힌다는 이유로 영화상영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고 법원은 제작사 쪽에 일부 장면을 삭제한 뒤 상영할 것을 명령한다. 따라서 영화는 2005년 개봉 당시 도입부와 종결부에 들어 있던 기록필름 장면들을 삭제한 뒤에야 상영할 수 있게 된다.

감독과 제작사도 무력하게 있지만은 않았다. 강제 삭제된 영화의 부분을 검은 무지로 채우고 “이 장면은 2005년 1월31일 대한민국 서울중앙지방법원 제50민사부의 결정에 따라 삭제되었습니다”라는 자막을 넣어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은 법원의 판결에 저항했다. 다행히도 다음 해인 2006년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63부는 “역사적 공인에 대해서는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며 제작사의 영화상영 금지 가처분 이의신청을 받아들였고 ‘그때 그 사람들’은 다시 원본 그대로 복원될 수 있었다.

영화는 1979년 10월 26일 그날의 전모를 보여준다. 아니, 그날의 전모를 상상한다. 중앙정보부 의전 담당인 주 과장(한석규)은 당일에도 대통령(송재호)의 만찬 준비를 위해 두 여인을 궁정동의 연회장으로 데려가는 임무를 수행한다. 한편 중앙정보부 책임자 김 부장(백윤식)은 오늘 마침내 자신의 결심을 실행하려 한다. 그리고는 연회 중 대통령과 경호실장을 사살한다. 하지만 김 부장과 수하들은 급박하고 어수선하게 흘러가는 상황을 좀처럼 수습하지 못한다. 대통령의 사후 상황은 예상치 못한 국면으로 흘러갈 뿐 아니라 김 부장의 일행을 궁지로 몰아넣는다.

논란의 여지는 얼마든지 남아있다. 예컨대 흥미로운 인물인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 관해서라면 영화가 개봉하기도 전에 이미 새로운 의견이 제기되었다. 2004년 4월 4일 방영된 MBC 시사프로그램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김재규를 충동적인 단순 저격범이 아니라 박정희 독재 정권에 불만을 가져왔던 민주주의의 열망자 내지는 적어도 숨은 조력자라는 관점으로 접근한다. 이 프로그램은 그가 유신체제를 은밀히 반대해 왔고 정부와 야당 사이의 온건한 중재자였으며 김수환 추기경에게 조언을 구하고 진보적 인사 장준하와 친교를 맺었던 인물이었음을 주목한다.

‘나는 김재규의 변호인이었다’(2017)의 저자이자 당시 그의 국선 변호인이었던 안동일 변호사 또한 김재규가 오랫동안 ‘거사’를 준비해왔음을 강조한다. 김재규 또한 법정의 최후 진술에서 자신의 행위를 혁명에 빗대며 “집권에 대한 욕심이 있는 게 아니고 어떤 사리사욕이 있는 게 아닙니다. 오로지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겠다는 일념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또, 이 혁명의 결과 자유민주주의는 완전히 회복되었습니다. 그것이 보장됐습니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점들을 부각시키지 않는다는 것이 ‘그때 그 사람들’의 특별함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 이 영화는 거대한 역사적 배경, 등장인물들의 심리적 동기나 정치적 소신 등에 대해 추정하거나 평가하지 않는다. 심지어 박정희에 대해서조차 논평하지 않는다. 여기엔 인물들의 대단한 속사정이나 고뇌도 없고, 사건에 대한 배경이나 전조나 설명도 없고, 사건 이후에 있을 법한 인과적 복기나 논평도 없다. 영화는 오로지 드러난 일부 사실에 기초하여 그날 밤 그들 사이에 있었던 몇 시간 동안의 사건과 행위를 순차적으로 묘사하고 동시에 그것들이 이끌어내는 과정과 결과를 최대한 과잉적으로 양식화하는데 주력한다.

그러니 등장인물들 또한 역사적 가치나 중요도에 따르지 않고 그날 밤 각자의 상황에 어떻게 처하게 되는지에 따라 분류된다. 가령 다음과 같다. 김 부장은 민주주의 수호를 앞세우지만 어쨌든 허술하기 짝이 없는 저격을 시도하고는 연이은 판단 착오를 일으키며 사태를 불려간다. 그 밑으로 출세 지향적인 실용주의자인 주 과장과 김 부장의 또 다른 충복 민 대령은 김 부장이 가는 길이니 상황 파악도 못한 채 그대로 따른다.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서 우왕좌왕하는 정부 각 부처의 무능한 관료들이 한편에 있는가 하면, 마치 이 사건을 은밀히 관조하는 것 같은 혹은 숨은 협력자인 것도 같은 궁정동의 지배인이 있으며, 이 자리에 억지로 불려나와 공포에 떨게 되는 두 여인이 있고, 그리고 하필이면 비번인 날에 하는 수 없이 출근했다가 살인범의 일원이 되어버리는 하급 부하직원이 있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이들이 모두 하나로 묶여서 그러니까 각자의 자리에 있되 거대한 망 안에서 그날 밤을 겪는 일군의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영화는 이들 대부분이 사실상 하나의 영향관계 안에서 연계되어 있음을 알리는 카메라 움직임 한 가지를 고안해낸다. ‘그때 그 사람들’의 특별한 미학으로 말해져 온 카메라 이동 촬영 장면이다. 가령 영화의 초반부 주 과장을 따라 남산의 고문실을 수평으로 이동하며 각 방에서 고문 받는 사람들의 일면을 포착해냈던 그 카메라는 궁정동의 연회장에서도 두 차례 더 등장한다. 처음에는 연회장으로부터 시작하여 복도를 지나 경호원들을 지나 식당에 이르러 일하고 있는 직원들까지를 보여주는 동선을 취하는데, 저격 사건 이후 이 카메라 움직임이 같은 동선을 따라 한 번 더 등장할 때, 그리고 공중에서 수직으로 내려다보며 이어져갈 때, 앞서 등장했던 인물들 중 여럿은 불운하게도 바닥에 뒹구는 시체가 되어 있다.

‘그때 그 사람들’의 양식화는 여러 방면이다. 앞서 말한 카메라의 활용을 ‘카메라의 의미화’라고 칭할 수 있다면 이 영화에는 ‘과잉된 모조화’라는 방식도 빛나고 있다. 심수봉, 그러니까 그날 밤에 불려간 두 명의 여성 중 한 명이었던 가수 심수봉은 시간이 흘러 1993년 4월 11일 방영된 ‘주병진 쇼’에 출연하여 그날의 일을 상세히 회고하게 된다. 이 자리에서 사회자 주병진이 “술상이 화려했을 것 같다”고 묻자, 심수봉은 “인삼 같은 것이 있었지만 나머지는 주로 나물 종류였다”고 의외의 사실을 말한다. 그 자리에서 그녀가 부른 노래도 영화에서처럼 엔카가 아니라 그녀의 대표작인 ‘그때 그 사람’이었고 동석한 여인 신모씨가 부른 노래 또한 김추자의 ‘거짓말이야’(그러니까 박정희 시대의 금지곡)가 아니라 ‘사랑해 당신을’이었다는 것이다. ‘그때 그 사람들’의 감독과 제작진은 이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겠지만 연연하지 않고 전부 바꾸어 놓았다. 말하자면 이 연회장의 공간과 분위기는 실제의 그것보다 훨씬 더 과장되게 모조됨으로써 이 사건의 비극적 핵심을 드러내는 데 더 치열하게 기여하게 되는 셈이다.

여기에 마지막으로 ‘인물의 기호화’라고 부를 만한 것을 더할 수 있다. 그러니까 주요 인물인 김 부장과 주 과장은 때로 영화 속에서 독특한 기호적 몸짓을 부여받게 되는데 그게 그들에 대한 어떤 심리적 설명보다도 그들을 더 잘 표현하게 된다. 예컨대 계획한 바를 실행에 옮기기 전에 이빨을 으드득하고 한 번 갈아대거나 저격 시에 ‘야수’처럼 괴성을 지르는 김 부장(김재규는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고 말했다). 혹은 장총을 버팀목으로 세워 놓고 엉거주춤하게 앉아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괴상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주 과장. 그들의 이 괴상한 몸짓의 기호는 과연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 이것들은 쉽게 의미 파악되진 않지만 인물들의 성정과 상황에 대한 모종의 강력한 느낌을 형성하면서 걷잡을 수 없이 엉망이 되어가는 이 영화의 서사적 사태의 우스꽝스러움을 가중시킨다.

민감한 역사적 사건을 다루는 한국영화는 많았지만 이렇게 대범한 방식으로 양식화된 한국영화의 예는 거의 전무후무하다. 뒤늦게 밝히자면 법원의 명령으로 삭제되었다가 복원된 도입부와 종결부의 장면도 이 영화의 중요한 양식의 일환이었으므로 복원되는 것이 당연했다. 도입부에는 부마항쟁이, 종결부에는 박정희의 장례식 장면과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오열하는 인파가 담겨 있다. 이 두 개의 실존했던 기록화면 사이에 과장된 몸통을 집어넣고는, 아니 과장된 몸통의 처음과 끝에 기록화면을 덧붙이고는 영화는 독하게 묻는다. 그날 밤의 그 사건은 왜 어떻게 벌어진 일이며 그리고 당신들은 무엇을 슬퍼하고 있는 것인가. ‘그때 그 사람들’은 비범하고 담대한 역사 풍자극이다.

■ 임상수 감독은
1998년 '처녀들의 저녁식사'로 데뷔… '바람난 가족' '하녀' 등 도발적 작품 선보여


임상수(56·사진) 감독은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영화아카데미 5기를 거쳤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장군의 아들' 1편과 2편에서 연출부를, '개벽'에서는 조감독을 했다. 박종원 감독의 '영원한 제국'(1995)에서는 각본에 참여했다. 데뷔작은 '처녀들의 저녁식사'(1998)다. 세 여성 주인공의 성생활과 성적 담론 등을 소재로 삼아 도발적인 쟁점을 제기한 이 데뷔작으로 이미 당대의 가장 신랄하고 젊은 감각을 지닌 감독으로 평자들에게 평가받았다.

이후에도 그의 행보는 파격적이었다. 두 번째 장편은 '눈물'(2000)이었다. 가출한 비행 청소년들의 일상을 그린 영화였다. 세 번째 장편 '바람난 가족'(2003)은 한국 근대사와 한 가족의 역사를 교차시키는 걸작이었다. 이른바 한국 현대사 3부작의 시작이었다. 뒤이어 '그때 그 사람들'(2005)을 내놓고, 황석영 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임상수 영화의 예외적 따뜻함을 선보인 '오래된 정원'(2007)까지 내놓게 된다.

이후 김기영의 동명 영화를 리메이크한 '하녀'(2010), 그리고 '하녀'의 후속작이라고 할 만한 '돈의 맛'(2012)으로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하며 국제적인 명성까지 쌓게 된다. 초상류층 사회에 관한 임상수식 야유이자 분석이기도 했다. 이후 연출한 '나의 절친 악당들'(2014)에서는 흥행 면에서나 작품의 만듦새 면에서 다소 주춤한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신작이 기다려지는 드문 감독 중 한 명이다.

<정한석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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