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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돌이 훈련’으로 여기까지 온 태극 썰매군단… “포기는 없다”

한국 장애인 아이스하키 대표팀 정승환(맨 앞쪽)이 15일 강원도 강릉하키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 아이스하키 캐나다와의 준결승에서 퍽을 놓고 캐나다의 빌리 브리지스와 치열한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AP뉴시스


장애인 아이스하키 전용구장 없어 일반구장 찾아다니며 떠돌이 훈련
선수 수급·연습팀 구하기 힘들어 주축들 연령 높지만 투지로 무장
패럴림픽 사상 첫 2승에 4강 결실


한국 장애인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계속 넘어지고 부딪히면서도 끝까지 싸웠다. 세계 최강 캐나다의 높은 벽은 넘지 못했다. 하지만 눈물과 땀으로 범벅된 아름다운 여정은 아직 끝난 게 아니다. 동계패럴림픽 종목 사상 첫 메달을 가져갈 기회가 있다.

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 아이스하키 준결승전이 열린 15일 강원도 강릉하키센터. 한국(세계랭킹 3위)은 캐나다(1위)와 결승행 티켓을 두고 다퉜지만 0대 7로 졌다. 지난 수년간의 여정은 이제 마지막 남은 한 경기로 끝을 맺는다. 한국은 17일 동메달 결정전에서 이탈리아와 맞붙는다. 꼭 메달이 아니어도 이미 많은 성과를 올렸다. 패럴림픽 사상 처음으로 2승을 올렸고, 첫 4강 진출에 성공했다.

동메달 결정전까지는 험난한 길의 연속이었다. 한국은 열악한 훈련환경을 이겨내야만 했다. 국내에 장애인 아이스하키 전용구장이 없어 일반구장을 찾아다니는 떠돌이 생활을 했다. 일반구장은 장애인 선수들의 편의가 고려되지 않았다. 경기장 곳곳에 문턱이 있어 슬레지(썰매)가 걸리기 일쑤였다.

일반구장에는 투명 아크릴로 제작된 펜스도 없었다. 눈높이가 낮은 선수들이 벤치에서 경기를 보거나 교체시점을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벤치와 아이스링크의 사이의 문턱 때문에 교체의 어려움도 겪었다. 그나마 미국 캐나다 등 해외 전지훈련을 가야 전용구장을 경험할 수 있었다.

더욱이 실업팀도 하나뿐이어서 선수 수급조차 어려웠다. 대표팀은 유일한 실업팀인 강원도청 선수 13명에다 동호회 수준의 일반 클럽팀 선수 4명으로 꾸려졌다. 실업팀에 몸담지 않으면 자신의 미래를 보장받지 못하는 구조다. 게다가 주축 선수들의 연령은 해마다 높아졌다. 대표팀 17명 중 20대 선수는 4명뿐이다.

그래도 선수들은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평창패럴림픽만 바라보며 이를 악물었다. 고된 빙상 및 체력 훈련을 하루 3∼4회씩 나눠서 했다. 최강 팀들을 상대하려면 기술의 차이를 체력으로 극복해야 했다. 코칭스태프도 힘들긴 마찬가지였다. 감독과 코치가 훈련 지도를 하면서 선수들의 장비까지 챙겨야 했다.

그나마 패럴림픽 개최국이다 보니 정부와 대한장애인체육회의 예산 지원이 많았다. 훈련일수도 부족함 없이 보장됐고 패럴림픽 기간에는 선수들의 심리 상담을 도맡는 멘털 코치와 장비 담당 매니저도 동행해 도움이 컸다.

문제는 패럴림픽 이후다. 꾸준한 지원이 이뤄질지가 의문이다. 서광석 감독은 2014 소치패럴림픽 이후 정책적으로 유소년 선수들을 키우고 있는 러시아의 사례를 눈여겨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 감독은 “러시아 전지훈련 때 클럽팀과 연습경기를 하는데 5∼6살쯤 되는 남녀 아이들 20명이 모여 장애인 아이스하키를 해서 놀랐다. 아이들이 5∼6년 지나면 폭풍 성장하지 않겠나”라며 “우리도 이런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고,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아이스하키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은 동메달 결정전에서 또 한 번의 기적을 준비하고 있다. 이탈리아와의 상대전적은 5승9패로 열세다. 하지만 서 감독은 “스포츠에는 이변이 있다. 메달은 하늘이 내려주는 것이라고 하지 않나”라며 “그래서 스포츠엔 웃음과 희망이 있다. 이변의 주인공이 돼서 선수들과 함께 멋진 세리머니를 하고 싶다”고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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