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시사  >  월드

‘블랙홀’ 너머 영원한 우주로 떠나다… 호킹, 파란만장한 삶

스티븐 호킹 박사가 2012년 영국 런던 과학박물관에서 디자이너 마크 챔킨스가 만들고 ‘블랙홀 라이트’라고 명명한 램프를 바라보고 있다. 당시 과학박물관은 그의 삶과 업적을 기리는 대규모 전시회를 개최 중이었다. AP뉴시스


루게릭병 걸려 반평생 휠체어 삶 ‘블랙홀의 특이점 이론’ 등 숱한 업적
파란만장한 삶 76세로 마쳐


천체 물리학계의 거두 스티븐 호킹 박사가 76세로 타계했다. 호킹 박사는 21세에 발병한 근위축성측색경화증, 즉 루게릭병으로 오랫동안 투병해 왔다.

BBC방송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호킹 박사의 세 자녀는 14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영국 케임브리지에 있는 자택에서 타계 소식을 발표했다. 딸 루시와 두 아들 로버트, 팀은 “아버지는 위대한 과학자이자 비범한 인물이었다. 그의 업적과 유산은 오래도록 남을 것”이라며 “아버지의 용기와 유머, 인내와 끈기가 전 세계인에게 많은 영감을 줬다”고 밝혔다. 이어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곳이 바로 아름다운 우주’라는 그의 말처럼 우리는 영원히 그를 그리워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호킹은 1942년 영국 옥스퍼드에서 기생충학 박사인 아버지 프랭크 호킹과 공산당원이던 어머니 이사벨 호킹의 4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연구차 아프리카를 방문하느라 집을 자주 비운 아버지를 대신해 어머니가 자식들 교육에 큰 영향을 끼쳤는데, 독서가 생활화된 분위기였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과학과 수학을 잘한 그는 17세 때 입학한 옥스퍼드대 재학 시절 물리학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리고 62년 케임브리지대학원에 진학해 상대론과 우주론을 본격 연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듬해 퇴행성 신경질환으로 원인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희귀질환인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다. 당시 병원에서 1∼2년 정도 살 수 있다는 시한부 삶을 선고받았지만 다행히 병의 진행 속도가 빠르지 않았고, 상태가 나빠진 후에는 휠체어에 의지한 채 컴퓨터 음성 재생 장치 등의 도움을 받아 연구 활동을 계속했다.

호킹은 66년 24세에 발표한 박사논문 ‘블랙홀의 특이점 이론’으로 세계 물리학계에 큰 충격을 던졌다. 블랙홀에는 모든 물질이 빨려들어 무한대의 밀도를 가진 한 점, 즉 특이점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했기 때문이다. 이후 ‘블랙홀의 증발이론(또는 호킹복사)’, 즉 양자역학에 따라 블랙홀도 끊임없이 입자를 방출해 질량과 에너지를 잃어버려 종국에는 증발해 없어질 수 있다는 사실도 수학적으로 증명했다.

그는 케임브리지대와 영국 학술원 연구원을 거쳐 77년 케임브리지대 정교수가 됐다. 특히 79년부터 2009년까지는 아이작 뉴턴과 폴 디랙의 뒤를 이어 영국 과학자로서 최고의 영예인 케임브리지대 루카시안 석좌교수를 지냈다. 그동안 수많은 상을 받았지만 노벨상은 받지 못했는데, 그의 이론이 대부분 실험적인 검증이 불가능해 노벨상의 규정을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호킹은 과학의 대중화에도 관심이 많아서 ‘시간의 역사’(1988) ‘호두껍질 속의 우주’(2001) 등을 펴냈다. ‘시간의 역사’는 전 세계적으로 1000만권 이상이나 팔렸다. 또 작가가 된 딸 루시와 함께 펴낸 청소년 과학 입문서 ‘조지의 우주’ 시리즈 역시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는 결혼을 두 번 했다. 루게릭병이 막 시작될 때 만난 제인 와일드와 결혼해 세 아이를 낳았지만 25년 만에 이혼했다. 그리고 이미 가까운 사이였던 간호사 일레인 메이슨과 재혼했다. 2000년대 들어 자식들이 메이슨의 학대 행위를 경찰에 고발했지만 그가 수사를 거부해 흐지부지됐다. 결국 메이슨과도 2006년 이혼했다. 사생활과 관련해 그는 “여자, 그들은 완전한 미스터리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