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지지”… 영화계 ‘든든’한 언니들 성폭력에 맞서다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 개소식이 열린 12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배우 문소리(맨 오른쪽)와 심재명 센터장 등이 영화계 성폭력 실태조사 결과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최종학 선임기자
 
12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개소식에 참석한 ‘든든’의 공동대표 임순례 감독(오른쪽)과 영화사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 최종학 선임기자


여성영화인·영진위 주관 성평등 환경조성 위해 설립
임순례 공동대표 “모함 유감 상처받은 영화인 복귀 최선”
女영화인 61.5% 성폭력 피해 가해 남성 49%가 상급자
여성 80% “폭로해도 해결 안돼”


“미투 운동(#MeToo·나도 당했다)이 거대한 무언가를 덮기 위한, 혹은 진보 진영을 분리하기 위한 공작이라고 말하는 일부 모함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물길을 다른 곳으로 돌려서는 우리 모두가 꿈꾸는 민주사회로 갈 수 없다.”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이하 센터 든든)의 공동대표를 맡은 임순례 감독은 12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개소 기념식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지속적이고 끔찍한 성폭력 환경에 노출돼 소리 없이 떠나간 동료 여성영화인들이 적지 않았다”며 “그들이 상처를 치유하고 다시 현장에 돌아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지난 1일 출범한 센터 든든은 영화계 성평등 환경 조성을 위해 마련된 상설기구다. ㈔여성영화인모임과 영화진흥위원회가 공동 주관한다. 임 감독과 함께 센터 든든을 이끌게 된 영화사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는 “성폭력 예방뿐 아니라 피해자 보호·지원, 영화계 교육·홍보, 나아가 성평등 환경 조성을 위한 정책 입안을 궁극적 목표로 한다”고 소개했다.

여성영화인모임은 2016년 발생한 ‘영화계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 이후 광범위한 실태조사를 벌여 왔다. 영화인 749명(여성 467명·남성 267명·불분명 15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7월 11일부터 9월 13일까지 진행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46.1%(여성 61.5%·남성 17.2%)가 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다고 고백했다.

가해자 성별은 남성(71.6%)이 압도적이었으며 지위는 상급자(48.7%)일 경우가 가장 많았다. 피해 유형은 ‘외모에 대한 성적 비유나 평가, 음담패설’(28.2%) ‘술을 따르거나 옆에 앉도록 강요, 원치 않는 술자리 강요’(23.4%) 등이었다. 원하지 않는 성관계(7.9%)를 요구받았다는 대답도 적지 않았다. 모든 항목의 피해 비율은 여성이 남성보다 높았다.

연기를 빌미로 촬영 전 합의되지 않은 노출신을 요구받는 경우 역시 비일비재했다. 조사에 응한 한 여배우 A씨는 “어떤 감독은 갑자기 없던 장면을 만들어 ‘조금 더 섹시하게 찍어 보자’고 요구했다더라. 그 상황에 거부를 하면 그 배우만 까탈스러운 여자가 되는 것”이라고 털어놨다.

실태조사 발표 이후 이어진 토론회에 참석한 배우 문소리는 “많은 영화인들이 노심초사하는 마음으로 지금의 사태를 바라보고 있다”며 “그동안 우리 모두는 방관자 혹은 암묵적 동조자였음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고 얘기했다.

이어 “과정의 올바름 없이 결과의 아름다움은 있을 수 없다”면서 “현재 한국영화는 세계적 주목을 받을 정도로 많은 발전을 이뤘지만 이제는 과정의 올바름에 좀 더 힘써야 할 때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김선아 집행위원장은 “실태조사 결과 중 가장 서글펐던 건 ‘피해 사실을 폭로하더라도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비관하는 여성 비율이 80%에 달한다는 것”이라며 “암울한 영화계에서 여성영화인들은 떠나고 있다. 그 상처는 누구에게 호소해야 하는지, 함께 진지하게 고민해주셨으면 한다”고 전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사진=최종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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