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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듯 다른 듯 ‘비핵화’ 의미… 韓·美 ‘돌이킬 수 없는 핵폐기’ 北은?



향후 3국 대화의 핵심 전제조건… 정부 “다르다면 협상 안 된다”
北 ‘선대의 유훈’ 내세우면서도 장기간 핵 개발해와 핵군축 카드라면 실패 불가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을 열기로 한 가장 큰 원동력은 무엇보다 김 위원장의 ‘한반도 비핵화’ 언급이다.

미국은 그동안 북한과의 대화를 언급하면서도 전제조건으로 비핵화를 위한 구체적인 조치를 강조해 왔고, 우리 정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런 상황에서 김 위원장이 확고한 비핵화 의사를 표현하고 정부가 이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하면서 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된 것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한국 특파원들과 만나 비핵화 의미에 대해 “비핵화는 비핵화다.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이 말하는 비핵화와 한국과 미국이 말하는 비핵화는 다를 수 없다”며 “그게 다르면 협상이 안 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 “비핵화 정의는 1992년 남북이 서명한 한반도 비핵화 원칙이 있다. 거기 보면 비핵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백히 나와 있다”며 “그 외에 다른 비핵화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남북 간에 한반도 비핵화 문구가 구체적으로 명시된 첫 합의는 1992년 2월 발효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이다. 공동선언은 비핵화에 대해 ‘남북은 핵무기의 시험 제조 생산 접수 보유 저장 등을 하지 않는다’ ‘남북은 핵 재처리 시설과 우라늄 농축 시설을 보유하지 않는다’고 규정했다. 검증·사찰에 대해선 ‘남북은 비핵화 검증을 위해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가 규정한 절차·방법으로 사찰한다’ 등으로 명시했다. 공동선언에 따르면 비핵화는 한반도에서 핵무기 및 핵무기로 전용 가능한 모든 핵 프로그램을 폐기한다는 것이다.

한·미 양국은 이후 북한에 ‘포괄적이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 폐기(CVID)’를 북한 비핵화의 핵심적인 전제조건으로 삼고 있다. 한·미 양국은 이런 개념을 바탕으로 북한과의 비핵화 대화에 나설 예정이다. 하지만 김정은 위원장이 생각하는 비핵화가 한·미 양국과는 다를 경우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1992년 3월부터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가 13차례 열렸지만 상호 사찰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북한은 이미 2003년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과 핵 압살 책동 때문에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은 백지화됐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북한은 이후 9·19공동성명을 포함한 6자회담의 모든 합의 역시 무효라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이 대북 특사단을 만나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遺訓)으로, 변함이 없다”고 했지만 이를 100% 그대로 믿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 북한은 그동안 유훈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장기간 핵무기를 고도화해 왔다. 그러면서 비핵화가 이뤄지려면 ‘남한 내 미국의 핵무기 공개 및 철폐’ ‘미국의 핵 타격수단을 한반도에 전개하지 않는다는 점 보장’ ‘주한미군 철수’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김 위원장이 실제로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가지고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에 나설 수도 있지만 일각에선 북측이 상호 핵군축 카드를 가지고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핵무력을 완성한 핵보유국으로서 미국과 동등한 입장에서 핵군축 논의를 하자고 할 경우 미국과의 대화는 다시 실패로 돌아갈 수 있다. 다만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한 메시지가 실제로 정책의 대전환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비핵화 논의는 의외로 쉽게 급물살을 탈 수도 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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