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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다리 잃은 후 ‘인생의 춤’ 배우다

에이미 퍼디가 2014년 3월 러시아 소치의 로자 후토르 알파인 센터에서 열린 소치 동계패럴림픽 스노보드 크로스에 출전해 설원을 질주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2016년 9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마라카낭경기장에서 열린 2016 리우데자네이루 하계패럴림픽 개회식에서 두 다리에 의족을 착용한 채 로봇과 춤을 추는 모습. AP뉴시스


2016 리우 하계패럴림픽 개회식, 의족 착용하고 로봇과 삼바 댄스
그의 화려한 춤에 6만 관중 열광
2014 소치선 스노보드 크로스 銅… 평창 패럴림픽서도 감동 전할 듯


2016년 9월 8일(한국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마라카낭경기장에서 열린 2016 리우데자네이루 하계패럴림픽 개회식. 두 다리에 의족을 착용한 한 여성이 로봇과 함께 신나는 삼바 댄스를 선보였다. 6만여 관중은 그의 화려한 춤에 열광했고 당당한 모습에 감동했다. 그는 미국 장애인 스노보드 선수인 에이미 퍼디(39)였다. 두 다리를 잃고 인생의 춤을 배운 그는 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에서는 선수로 출전해 다시 한 번 감동의 드라마를 쓴다.

어릴적 퍼디는 세계를 여행하며 스노보드를 타는 것이 꿈이었던 평범한 소녀였다. 순탄한 그의 인생에 시련이 찾아온 것은 19세 때였다. 세균성 수막염에 걸렸다. 생존 확률은 2%. 기적처럼 살아났지만 다리에 피가 제대로 돌지 않아 괴사하는 바람에 무릎 아래를 절단해야 했다.

퍼디의 아버지는 의사에게 물었다. “발가락만, 아니 발목만 절단하면 안 될까요?” 의사는 “그럴 수가 없다”며 “충분히 잘라내야 의족을 맞출 수 있다. 절단할 최고의 위치는 무릎에서 몇 ㎝ 아래”라고 대답했다. 퍼디는 수술을 받은 뒤 엄마에게 “나 이제 장애인이에요?” 하고 물었다. 엄마는 딸에게 다가가 이렇게 얘기했다. “일부 사람들의 기준으로 보면 넌 장애인이야. 하지만 난 네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다고 믿어.”

퍼디는 엄마의 말을 가슴에 새기고 꿈을 향해 나아갔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좋아했던 스노보드를 타는 것이었다. 그는 눈밭 위에서 넘어지고 일어나기를 숱하게 반복한 끝에 능숙하게 스노보드를 탈 수 있게 됐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2005년 남편 대니얼 게일과 함께 비영리 단체인 ‘어댑티브 액션 스포츠(AAS)’를 만들어 장애인들도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길 수 있도록 후원에 나섰다.

퍼디와 게일은 한 발 더 나아가 장애인 스노보드 대회를 만들었다. 훈련 캠프를 열자 세계 각지에서 장애인 스노보더들이 몰려들었다. 퍼디는 이들과 힘을 모아 장애인 스노보드를 패럴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시키려 백방으로 뛰었다. 결국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는 2012년 5월 장애인 스노보드를 패럴림픽 정식종목으로 승인했다.

퍼디는 소치패럴림픽에 스노보드 선수로 출전하기 위해 먼저 미국 국가대표가 돼야 했다. 그는 다양한 국제대회에 출전하며 기량을 닦은 덕분에 결국 미국 국가대표로 선발됐고, 소치패럴림픽 장애인 스노보드 크로스에서 동메달을 차지했다. 지난해 3월 강원도 정선에서 열린 평창패럴림픽 테스트이벤트 ‘2017 세계장애인스노보드월드컵 파이널 대회’의 여자 크로스 부문에서 3위에 오르기도 했다.

불굴의 의지를 가진 퍼디는 원하는 것이 있으면 주저하지 않고 도전했다. 미국 ABC 방송의 댄스 경연 프로그램 ‘댄싱 위드 더 스타’ 시즌 18에 출연해 의족을 차고 놀라운 춤 실력을 뽐내며 결승전까지 진출했고, 영화배우에도 도전했다. 동기부여 연설가로 세계를 누비며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불어넣고 있다.

퍼디는 세계적인 강연 프로그램 ‘테드’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의 두 다리는 나를 불구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두 다리를 잃은 뒤 상상력이 풍부해졌어요. 상상력은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있는 도구랍니다. 상상 속에서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으니까요.”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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