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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두 컬링훈련원장 “눈물 젖은 빵이 기적을 만들었지요”

김경두 경북컬링훈련원장이 20일 한국과 미국의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컬링 예선전이 열린 강릉 컬링센터를 찾아 한국 선수들을 응원하고 있다. 강릉=김지훈 기자


20일 한국과 미국의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컬링 예선 7차전이 열린 강릉컬링센터. 초로의 한 남성이 3층의 구석진 좌석에서 말없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김경두(62) 경북컬링훈련원장(전 대한컬링경기연맹 부회장)이었다. 의성 ‘마늘소녀’라는 애칭을 얻은 한국 선수들이 스톤을 던질 때마다 그는 예리한 눈길로 스톤의 궤적을 좇았다.

김 원장에게 ‘가까운 곳에서 경기를 보면 좋을 텐데 왜 이런 곳에서 보느냐’고 물어 봤다.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행여 경기하는 선수들이 날 알아보면 안 됩니다. 괜히 마음이 복잡해지면 안 되니까요.”

여자 대표팀의 스킵(주장) 김은정은 지난 19일 예선 6차전에서 강호 스웨덴을 7대 6으로 제압하고 인터뷰를 하다 울먹였다. 지난해 여름 대한컬링경기연맹이 관리단체로 지정되면서 겪은 일들이 떠오른 듯했다. 이 사건으로 대표팀은 제대로 지원을 받지 못하고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또 김 원장은 컬링연맹 회장 직무대행 자격을 잃었다. 김은정은 “김 원장님과 경북체육회에서 많은 노력을 해 주셨다”며 “그래서 우리는 더 좋은 성과를 내야 한다.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이다”라고 강조했다.

김 원장은 한국 컬링의 개척자로 불린다. 평창올림픽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한국 여자 대표팀 선수들은 그의 손에서 자랐다. 그들은 김 원장이 설립을 주도한 경북컬링훈련원에서 입문해 태극마크를 달았다.

레슬링 선수 출신인 김 회장은 30대에 컬링의 매력에 푹 빠져 1994년 경북컬링협회를 출범시켰다. 그리고 이듬해 개장한 대구실내빙상장에서 컬링을 보급했다. 대구·경북 지역에 하나뿐인 빙상장에서 컬링을 하기 위해선 늦은 밤에 대관해야 했다. 빙판 위에 물감으로 선과 하우스(표적)를 그려 놓고 연습했다.

대구실내빙상장에서 눈물 젖은 빵을 먹던 김 원장은 컬링 전용 경기장을 세우기로 결심했다. 그는 고향인 의성에 있는 자신의 땅을 기증하겠다고 하면서 경북도청과 의성군 등으로부터 지원을 받았다. 마침내 2006년 5월 국내 최초 컬링전용경기장인 경북컬링훈련원이 의성군 의성읍 충효로에 세워졌다. 이곳은 한국 컬링의 요람 역할을 했다.

김 원장의 열정은 대를 이어 전해졌다. 김민정(36) 여자 대표팀 감독은 김 원장의 딸이다. 장반석(35) 믹스더블 대표팀 감독은 김 원장의 사위이자 김 감독의 남편이다. 남자팀 선수 김민찬(31)은 김 원장의 아들이다.

경북컬링훈련원 경기장 안엔 현수막이 3개 붙어 있다.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현수막은 2006년 훈련원 준공 무렵 붙었다. ‘혼을 담아 마음을 쏜다’라는 현수막은 평창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붙었다. ‘강한 컬링을 넘어 컬링 선진 문화를 향하여’라는 마지막 현수막은 평창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붙었다.

김 원장은 현수막들을 붙인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 선수들에게 사명감을 심어 주고 싶었습니다. 우리에겐 평창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것보다 더 중요한 사명이 있습니다. 그것은 컬링 저변을 확대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컬링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강릉=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

사진=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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