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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을 위해… ‘후회 없는 질주’ 빛났다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대표 노선영이 12일 강원도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1500m 경기에 출전해 질주하고 있다. 강릉=김지훈 기자


우여곡절 끝 4번째 올림픽 무대 선 여자 빙속 노선영

연맹 행정착오로 예상 못한 시련
러 선수 출전 불발로 출전권 확보
팬들 응원에 올림픽서 최선 다짐
女 빙속 1500m 아쉬운 14위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는 다양한 사연을 가진 각국의 선수들이 출전한다. 그 중에서도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대표 노선영(29)은 그 누구보다도 험난한 과정을 거쳐 우여곡절 끝에 이번 올림픽에 도전한 선수다.

노선영은 12일 밤 강원도 강릉 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열린 평창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1500m 종목에 출전해 1분58초75의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하며 14위로 경기를 마쳤다. 통과기록, 순위 모두 자신이 뛰었던 총 네 번의 올림픽 1500m 성적 중 가장 좋은 결과다. 경기 직후 믹스트존 인터뷰에서 노선영은 “후련하다”면서 “동생이 봤을 때 제 경기가 만족스러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1위는 이레인 뷔스트(32·네덜란드)의 몫이었다.

노선영이 언급한 동생은 어깨 골육종으로 투병하다 2016년 4월 24세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뜬 친동생, 전 쇼트트랙 대표 노진규다. 2006년 토리노올림픽을 시작으로 연속해서 올림픽 무대를 밟은 노선영은 2014년 소치올림픽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마감하려 했다. 하지만 사상 처음 국내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리게 되자 한 번 더 올림픽에 출전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노진규를 떠올리며 스케이트화를 다시 신었다.

노선영의 도전은 성공적이었다. 지난해 10월 열린 대표 선발전에서는 깜짝 우승을 차지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였다. 당시 노선영은 “이번에는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고 싶다”며 각오를 다졌다. 노선영은 동계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기는 했지만 올림픽에서는 메달을 딴 적이 없다.

그러나 전혀 예상치 못한 시련이 찾아왔다. 대한빙상연맹의 행정착오로 노선영의 올림픽 출전이 물 건너갈 위기에 놓였다. 팀 추월 대표로 올림픽을 준비하던 지난달 개인전 출전 자격이 없으면 팀 추월도 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통보 받았다. 다행히도 1500m에서 러시아 선수들이 출전하지 못하게 되면서 예비순위 2번이었던 노선영은 극적으로 출전권을 손에 넣었다.

대표팀 탈락 논란 이후 마음고생이 심했던 노선영은 올림픽 출전권이 확보된 이후에도 쉽게 출전을 결심하지 못했다. 무책임한 빙상연맹에 대한 분노가 폭발 직전이었다. 그런 가운데 그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국민들의 응원과 위로였다.

노선영은 지난달 28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많은 분들의 응원과 관심이 큰 힘이 돼 제가 용기를 낼 수 있었다”는 글을 남겼다. 이후 선수촌으로 향한 노선영은 “힘들게 온 올림픽인 만큼 잘하고 싶다. 최선을 다해 후회가 없게 하고 싶다”는 말을 끝으로 인터뷰를 자제하며 묵묵히 훈련에 집중했다.

노선영은 메달 획득이 유력해서 주목을 받는 선수는 아니다. 하지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올림픽 무대에 힘겹게 섰고, 동생을 생각하며 이를 악물고 빙판 위를 질주한 그에게 아낌없는 박수가 쏟아졌다.

유성열 기자, 강릉=박구인 기자 nukuva@kmib.co.kr

사진=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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