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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에 선생님 초대”… 임효준, 8년 전 약속 지켰다

쇼트트랙 국가대표 임효준(왼쪽)이 지난해 10월 대구 TREX 트레이닝센터에서 배주영 트레이너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배주영 트레이너 제공
 
배 트레이너가 임효준의 올림픽 경기 입장권을 선물받은 뒤 임효준과 메신저로 대화한 스마트폰 화면. 배주영 트레이너 제공


평창에서 지킨 14살 소년 임효준의 약속

14살 때 정강이뼈 골절상
“제가 태극마크 달고 뛰는
올림픽 경기에 초대할 것”
이후 6번의 수술도 지켜봐

경기장서 金 확인한 스승
너무 감격에 북받쳐
축하 메시지만 남기고 떠나


“제가 태극마크 달고 뛰는 올림픽 경기에 선생님을 반드시 초대할 겁니다. 꼭 보러오세요.”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쇼트트랙 남자 1500m 금메달을 목에 건 임효준(22)에게는 오랫동안 간직한 ‘약속’이 있었다. 임효준이 14살의 ‘쇼트트랙 꿈나무’였던 때다. 한창 실력을 쌓아야 하는 시기에 뜻하지 않게 정강이뼈 골절상을 당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당한 부상은 어린 소년의 꿈을 송두리째 뒤흔들 수도 있었다. 고향 대구에서 치료와 회복에 집중하던 때에 임효준은 운명처럼 배주영(37) 트레이너를 만났다. 임효준은 배 트레이너를 ‘선생님’이라 부르며 따랐다.

배 트레이너는 12일 국민일보 취재팀과의 전화통화에서 임효준의 재활 의지에 깜짝 놀랐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효준이는 재활 목표를 줬을 때 성인 선수 이상으로 해내려고 했다. 일상에서는 순수한 중학생이었지만 재활 의지는 누구보다 강했다”고 말했다.

그 뒤로도 두 사람은 관계를 이어갔다. 안타깝게도 임효준은 7번 수술대에 오를 만큼 부상이 잦았다. 배 트레이너는 “부상이 많아 힘들어했지만 운동을 그만두겠다는 얘기는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떻게 하면 빨리 회복할 수 있는지를 묻고는 했다”고 전했다.

배 트레이너는 어떻게든 임효준을 돕고 싶었다. 재활 외에 인생 선배로서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힘들어하고 지친 임효준에게 그의 조언과 격려는 위로였고 다시 빙판 위에 설 수 있게 도와주는 힘이었다. 그렇게 둘은 선수와 재활 트레이너가 아니라 서로를 응원하고 다독이는 사이가 됐다.

임효준은 어릴 때부터 늘 ‘높은 곳’을 바라봤다고 한다. 그리고 악바리였다. 배 트레이너는 “어릴 때 선배들에게 졌는데도 엄청 분통해할 정도로 승부욕이 강했다”며 “나중에 뭐라도 하겠구나 싶었다”고 했다. 키가 168㎝인 임효준은 작은 체구가 단점이라고 생각해 근력과 순발력을 키우는 하체 운동을 많이 했다. 산을 오르내리는 훈련을 수없이 반복했다. 한 번 시작하면 산에서 한 시간 이상을 뛰었다. 재활센터에서는 순발력을 키워주는 플라이오메트릭 훈련을 소화하기도 했다.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1위를 차지하고 한창 올림픽을 준비하던 지난해 7월 배 트레이너는 임효준에게 모바일 메시지를 보냈다. “지금 힘든 이 순간이 네가 그토록 꿈꾸던 순간이었다. 힘들어도 감사하게 생각해라.” 임효준은 자신의 SNS에 이 글귀를 그대로 올렸다.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자 고마움의 표시였다.

첫 올림픽 무대를 눈앞에 둔 지난달 31일 임효준은 배 트레이너에게 자신이 뛰는 경기의 입장권을 선물했다. 중학교 1학년 때 했던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금메달에 너무 집착하지 마라” “하던 대로 하면 된다”는 응원 메시지에는 “자신 있게 임하겠다”고 답했다.

임효준이 쇼트트랙 1500m 경기에 출전한 지난 10일 강원도 강릉 아이스아레나 관람석에는 배 트레이너도 있었다. 대구에서 강릉까지 당일치기로 올라왔다. 그날 저녁 임효준은 ‘선생님’과의 8년 묵은 약속을 지켰다.

배 트레이너는 임효준의 ‘금빛 레이스’를 보다 감격에 북받쳐 제대로 축하인사를 전하기도 힘들었다고 한다. 그는 조용히 모바일 메시지를 남기고 대구로 돌아갔다. “효준아, 잘 보고 간다. 내 맘, 네 맘과 같다. 더 잘 표현할 방법이 없다.”

강릉=박구인 이상헌 기자

capta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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