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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일본팀으로 3명 첫 출전… 한국 동계올림픽 도전사

한국 선수단이 1948년 스위스 생모리츠 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 태극기를 앞세워 입장하고 있다. 국가기록원 제공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 감독과 선수들이 1956년 이탈리아 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에서 외국 선수들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국가기록원 제공


1948년 스위스 생모리츠 첫 태극기 펄럭

1992년 佛 알베르빌 사상 처음 금·은메달

일본은 1936년 독일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에서 열린 제4회 동계올림픽에 31명의 선수를 출전시켰다. 선수단에는 일본어로 표기됐지만 일본인 이름 같지 않은 3명이 포함돼 있었다. 그들은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국 출신의 킨세이엔(김정연), 리세이도쿠(이성덕), 조요소쿠(장우식)였다. 이들은 동계올림픽에 처음 출전한 한국인으로 기록됐다.

당시 일본의 한국인 차별은 극심했다. 특히 국가대표를 선발할 때 노골적으로 일본인을 우대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국가대표로 뽑혀 올림픽 경기에 나섰다는 건 그만큼 세 사람의 실력이 뛰어났음을 의미한다. 이 대회에서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1만m에 출전한 김정연은 일본 신기록을 세우며 13위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이라는 이름으로 태극기를 앞세워 참가한 첫 동계올림픽은 1948년 스위스 생모리츠 대회였다. 이후 한국은 40년간 꾸준히 동계올림픽에 참가했다. 수많은 한국 선수들이 세계무대에 도전했다. 하지만 단 하나의 메달도 따내지 못했다.

서서히 동계스포츠에 대한 투자가 늘어나던 중에 1992년 프랑스 알베르빌올림픽에서 ‘결실’이 나왔다.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1000m에 출전한 김윤만이 은메달을 목에 걸며 한국인 최초의 동계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됐다. 그리고 같은 대회에서 김기훈은 남자 쇼트트랙 1000m 세계신기록을 세웠다. 그는 한국의 동계올림픽 사상 최초의 금메달리스트다. 알베르빌올림픽에서 한국은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로 종합 성적 10위를 차지하며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쇼트트랙 왕국 코리아’의 역사가 막을 올린 대회이기도 했다.

알베르빌올림픽을 시작으로 한국은 동계스포츠 강국으로 발돋움했다. 알베르빌부터 2014년 소치까지 7번의 올림픽에서 금메달 26개, 은메달 17개, 동메달 10개를 쓸어 담았다. 1994년 노르웨이 릴레함메르 대회에서는 전이경이 한국 여성 최초의 동계올림픽 메달리스트 겸 금메달리스트에 등극하기도 했다.

2010년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동계올림픽에선 한국의 ‘메달 밭’이 다양해졌다. 스피드스케이팅에서 이승훈과 모태범, 이상화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연아는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부문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시상대 가장 위에 우뚝 섰다.

이 힘은 평창으로 이어졌다. 9일 개회식이 열리면서 한국은 동계올림픽에 처음 출전한 지 70년 만에 동계올림픽을 개최한 나라가 됐다.

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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