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시사  >  2018 평창

선수촌 안팎 ‘핀 트레이딩’ 열기… 올림픽 기념배지 교환

평창 동계올림픽 자원봉사자 이찬수씨(오른쪽)가 8일 강원도 강릉 선수촌에서 가탄모씨(스페인)와 올림픽 관련 배지를 보여 주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강릉=김지훈 기자


세계 각국에서 수집가들 내한
내국인·자원봉사자 등 어울려
곳곳 ‘우정의 배지’ 교환 판 벌려
경기 후 선수끼리 건네는 전통도


강릉선수촌에서 평창 동계올림픽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는 이찬수(65)씨는 지난 8일 선수촌 광장을 걷다 30년간 찾아 헤매던 서울올림픽 휘장 배지를 발견했다. 1988년 중사 계급으로 올림픽 자원봉사에 참여했던 그는 서울올림픽 배지를 수집하기 시작했는데, 유독 휘장 아래 오륜 마크가 달린 1개만을 얻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그는 한 외국인이 선수촌 벤치에 펼쳐둔 각양각색의 올림픽 배지 더미에서 이 배지를 발견했다. 스페인 스키대표팀 초청으로 한국을 찾은 가탄모씨가 우연히 이씨 앞에서 ‘핀 트레이딩’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씨는 조심스레 서울올림픽 배지와의 교환을 요청했다. 가탄모씨도 즐거워하며 이씨의 것 중 하나를 골랐다.

같은 시각 강릉선수촌 건너편 카페에서는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온 팀 제이미슨씨가 탁자에 100여개의 올림픽 배지와 핀을 올린 채 앉아 있었다. 그는 올림픽 핀을 수집하는 비영리 민간단체인 올림핀(Olympin) 회원으로, 오로지 세계 각국의 선수·관계자·언론인들과 핀을 교환할 목적으로 강릉을 방문했다. 84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 때부터 올림핀 활동 중이라는 그는 “핀 트레이딩은 올림픽 밖의 올림픽”이라고 말했다.

핀 트레이딩의 열기는 강추위도 이긴다. 대구에서 온 전태수(70)씨는 강릉선수촌 입구 바리케이드 위에 올림픽 핀들을 늘어놓고 서 있었다. 전씨는 88년 서울올림픽 때 한국을 찾은 외국인 노부부가 핀 트레이딩을 하는 모습을 보고 이 취미를 갖게 됐다. 맨 처음에는 캐나다 국기 형태의 핀 1개였지만, 지금은 엄청나게 불어났다. 전씨는 “구소련과 베트남 등 공산권 국가들의 핀은 선진국들의 핀에 비해 가볍고 질이 조악했다”며 “핀을 보면 국력을 알 수 있다”고도 말했다.

전씨는 “핀 트레이딩 때문에 잊지 못할 경험이 많았다”고 회고했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때에는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북한 선수로부터 핀을 받았다. 경기장 밖에서 버스를 타려던 북한 선수들이 말없이 전씨에게 다가왔다. 그들은 호랑이가 역기를 드는 형상에 인공기가 합쳐진 핀 3개를 던져주더니 알아서 전씨의 핀을 집어 들고 사라졌다.

올림픽에 직접 참가하는 선수들도 핀 트레이딩을 즐기긴 마찬가지다. 각자의 나라를 대표한 한판 승부가 끝나면 핀과 배지를 주고받으며 친구가 되는 것이 올림픽의 오랜 전통이다.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500m에서 동메달을 따낸 이강석은 “마지막 레이스에서 금메달을 딴 미국 선수에게 다가가 ‘배지가 있냐, 내일 교환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대한체육회가 공들여 제작한 한국 배지는 해외 선수들에게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국제적인 온라인 경매 쇼핑몰인 ‘이베이’에서는 1906년 아테네올림픽 당시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배지가 5000달러에,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 핀 세트가 3500달러에 나와 있다. 서울올림픽 마스코트였던 호돌이도 이베이에 나온다. 올림픽 출전 이력이 귀한 나라일수록 기념품의 가치가 크다. 북한 선수단이 단 ‘초상휘장’은 정부가 “요구하지 말라”는 지침을 내렸다.

무리하게 배지를 요구하는 행위가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도 한다. 한 자원봉사자는 “외국인들에게 막무가내로 핀과 배지를 요구하는 행위를 그만둬 달라”고 온라인 공간에서 익명으로 호소했다. 제이미슨씨는 “북한 관계자들과 만나면 꼭 핀을 교환하고 싶지만, 목숨과도 같은 핀이라면 요구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강릉=심우삼 기자 sam@kmib.co.kr

사진=김지훈 기자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