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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 동계올림픽을 체제선전 장으로 악용… 개회선언 역사





美선 루스벨트 등 정치인
입지 강화의 기회로 활용
초창기엔 정상들이 외면
개회 선언한 여성 3명뿐


올림픽의 시작은 개회선언이다. 개최국 대표자가 주경기장 단상에 올라 개회를 선언하는 순간부터 올림픽은 열전의 레이스에 들어간다. 지금까지 이 의식을 생략한 올림픽은 없었다. 개회선언은 4년 동안 구슬땀을 흘린 선수들의 노력을 존중하고 세계 각국에서 모인 방문객들을 보호하겠다는 개최국 대표자의 결심이자 약속이다.

대표자는 보편적으로 개최국 정상의 몫이다. 하지만 제각각의 정치적 셈법이 있었다. 누군가는 집권 이후의 체제를 선전할 목적으로, 다른 누군가는 아직 완성하지 못한 정치 입지를 쌓을 목적으로 단상에 올랐다.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된 곳에 서는 것만으로 대표자 이상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올림픽 개회를 선언한 개최국 대표자는 대부분 인류 현대사 주요사건의 중심에 있는 인물들이었다.

동계올림픽의 경우 초창기만 해도 개최국 정상의 외면을 받았다. 하계보다 28년 늦게 출범했고 빙상·설상으로 종목이 한정된 특성 탓이었다. 이탈리아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 알프스산맥 인접국 대통령들만 적극적이었다. 원년 대회인 1924 샤모니 동계올림픽의 개회를 선언한 프랑스 대표자는 가스통 비달 정무차관. 1차 세계대전 때 프랑스의 알프스 지역을 방어한 군인 출신이다.

개회선언은 독재정권의 체제선전 기회로 악용되기도 했다. 나치의 수장 아돌프 히틀러 총통은 독일의 패전 극복 과정을 세계에 보여줄 목적으로 1936년 동·하계올림픽을 모두 유치했다. 하계보다 앞선 그해 2월 6일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주경기장 단상에 올라 동계올림픽 개회를 선언했고, 이로부터 3년 뒤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미국에서는 개회선언이 정치 입지를 완성할 기회로 사용됐다. 뉴욕주지사였던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1932 레이크플래시드 동계올림픽 개회선언 3년 뒤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미국 최초의 4선 대통령이다. 1960 스쿼밸리 동계올림픽의 개회를 선언하기 위해 단상에 오른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당시 부통령이었다.

미국은 동계올림픽을 4차례나 개최했지만 직접 개회를 선언한 정상은 2002 솔트레이크시티 대회의 문을 열었던 조지 W 부시 대통령 1명뿐이다. 가장 최근 대회인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개회선언을 통해 자국에서 건재한 입지를 재확인했다.

앞선 22차례 동계올림픽에서 개회를 선언한 여성 지도자는 모두 3명이다. 노르웨이 랑힐트 공주는 1952 오슬로 동계올림픽의 문을 열었다. 그 이후 캐나다가 두 차례 대회에서 여성 총독을 개회선언에 앞세웠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의 개회를 선언한 미카엘 장 총독은 세 번째 여성이자 최초의 흑인이기도 하다. 캐나다에서 총독은 영국 왕실의 대리인일 뿐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하지 않는다.

아시아에서 두 차례 동계올림픽을 유치했던 일본은 모두 왕가에 개회선언을 맡겼다. 부친 히로히토 국왕은 1972년 삿포로, 현직 아키히토는 1998년 나가노 주경기장에 나타났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은 아시아에서 열리는 세 번째 지구촌 겨울축제다. 9일 오후 8시 강원도 평창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리는 개회식에서 단상에 오를 대표자는 문재인 대통령이다. 행정부 수장으로는 아시아 최초다. 문 대통령은 개회선언에 앞서 낭독할 개회사에 메시지를 일부 담을 수 있다. 그동안 강조한 평화·화합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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