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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찾아온 입양 1세들 “태어난 나라의 축제, 가슴 뭉클”

평창 동계올림픽을 보기 위해 모국을 찾은 해외입양인 댄 디트리히, 메리 살바도르, 수전 콕스, 데릭 파커(왼쪽부터 시계방향)씨가 6일 국회 본관에서 셀프카메라를 찍으며 활짝 웃고 있다. 최종학 선임기자


대부분 1950∼70년대 입양
19명 자비 들여 모국 방문
한·미 같이 응원 ‘열린’ 마음

입양 긍정적인 면 알리기 최선
“우리는 하나의 다리로 연결
불편한 시선 바꿔지길 기대”
개막식 본 후 11일 돌아가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 사는 데릭 파커(46)씨는 한국에서 올림픽이 열린다는 소식에 달려왔다. 그는 한국에서 태어난 입양인이다. 어릴 때 소아마비에 걸린 데릭은 휠체어를 탄다. 데릭은 아내와 가정을 꾸린 후 오리건주에 사는 부모로부터 독립해 딸 둘과 아들 한 명을 키우는 행복한 가장이다. 그의 중간 이름(middle name)은 ‘해진(Hae Jin)’이다. 생모가 지어준 한국이름 ‘안해진’에서 따왔다.

6일 서울 용산구에서 데릭과 수전 콕스(63·여), 메리 살바도르(59·여), 댄 디트리히(44)씨를 만났다. 이들은 1950∼70년대에 미국에 입양됐다. 해외 입양인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만든 ‘입양인을 위한 입양인’의 회원이기도 하다. 해외입양인들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만들어진 이 모임 회원들 중 19명이 평창 동계올림픽에 맞춰 자신이 태어난 땅을 찾았다. 모두 자비로 경비를 마련하고 즐겁게 일정을 짰다.

이들은 지난 4일 오리건주 유진과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등지에서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올림픽 개막식이 열리기 전까지 서울에 머물면서 해외입양의 긍정적 측면을 알리기 위해 법원, 국회 등을 들를 계획이다.

메리는 “남북한이 함께 참여하는 올림픽인 만큼 개막식부터 기대가 된다”며 “내가 태어난 나라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올 수 있어서 영광”이라며 활짝 웃었다. 그는 “한국에 올 경비를 마련하려고 정말 열심히 일했다”고 말했다.

60년에 미국으로 입양된 메리는 처음부터 모국에 큰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남편의 권유로 2008년 처음 한국을 방문했을 때 그는 “내 삶이 그냥 통째로 변했다”고 했다. “낳아준 생모에게 감사했고, 입양됐다는 사실에도 감사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제야 생모를 향해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을 갖게 된 메리는 자신이 딸을 낳았을 때 비로소 생모의 심정을 이해하고 펑펑 울었다고 한다. 그는 “평창에서 올림픽을 한다고 했을 때 다른 이유 없이 당연하게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데릭은 “모든 나라가 하나가 되는 개막식이 제일 기대된다”며 “한국과 미국 둘 다 응원할 텐데 두 나라가 경기를 붙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며 껄껄 웃었다. 메리는 현재 자신의 사업을 운영하는 대표(CEO)다. 예쁜 손자도 있다. 그는 항상 손자에게 “한국인 피가 흐르고 있다는 걸 절대 부끄러워하지 말라”며 자긍심을 심어주고 있다.

56년 오리건주의 한 가정에 입양된 수전은 당시 그 마을에서 유일한 외국인이었다. 수전이 내민 명함에는 한쪽에 영문, 반대쪽엔 한글이 찍혀 있었다. 그는 40세 생일에 한국이름인 ‘순금(Soonkeum)’을 중간이름으로 쓰기로 했다. 수전의 생모 이름이다. “내 뿌리를 더 깊게 느끼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수전은 현재 유진주재 대한민국명예영사관의 명예영사이자 국제입양을 돕는 사회법인 홀트인터내셔널의 부회장직을 맡고 있다.

수전의 손녀 역시 중간이름이 ‘미자(Mi Ja)’라는 한국 이름이다. 세대에 걸쳐 한국과의 연결고리를 갖고 있는 셈이다.

댄은 이번 평창올림픽에서 한국과 미국 둘 다의 편에 서겠다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미국의 정보기술기업 콘트롤테크놀로지(CT)그룹의 부회장인 그는 바쁜 업무 중에도 휴가를 내고 일주일간의 한국방문에 참여했다. 콜로라도에 살고 있는 그는 2006년 한국 남자아이를 입양했다. 아들은 한국어도 배우고 태권도도 검은띠라고 자랑했다. 매일 한국 음식을 먹고 방학 때면 한국 캠프에도 데려간다.

이들이 한국을 찾은 이유는 평창에서 펼쳐질 올림픽 때문만은 아니다. 아직도 해외입양을 보는 한국인의 시선이 부정적이란 점을 잘 알고 있는 이들은 반세기에 걸친 해외입양의 열매인 자신들의 방문으로 그런 인식을 바꾸고 싶어 한다.

수전은 “해외입양으로 ‘아이들을 떠나보낸다’고 생각하지 말고 ‘가정을 찾아가게 한다’고 받아들여주면 좋겠다”며 “한국인들은 입양아들이 한국을 떠나면 아예 연이 끊어진다고 생각하는데 우리는 어디에 있든지 한국이란 이름 아래 하나의 다리(Bridge)처럼 연결돼 있다”고 강조했다. 19명의 입양인은 9일 평창에서 개막식을 즐긴 뒤 11일 미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

사진=최종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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