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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올림픽 야사] 괴짜 하이든, 빙속 제패 후 사이클선수·의사로 종횡무진

1980년 열린 레이크플래시드 올림픽에서 남자 스피드스케이팅에 걸린 금메달 5개를 모두 가져간 에릭 하이든. 하이든은 역대 동계올림픽에서 개인종목(단체경기 제외) 5관왕을 달성한 유일한 선수다. IOC 홈페이지 캡처


80년 레이크플래시드 올림픽서
단일 대회 개인종목 5관왕
유일무이한 기록 세운 뒤
멈추지 않는 도전 정신 보여줘


22차례 치러진 동계올림픽에서 단일 대회 개인종목 5관왕은 단 1차례 탄생했다. 1980년 레이크플래시드 동계올림픽에서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전 종목을 석권한 에릭 하이든(60·미국)이 그 주인공이다. 하이든은 대회 첫날 단거리인 500m에서 우승하더니 1000m, 1500m, 5000m까지 내리 1위 자리에 올랐다. 마지막 종목인 1만m에서 세계신기록을 쓰기도 했다. 그가 작성한 올림픽신기록은 4개였다.

하이든이 스포츠의 통념을 깨고 단거리와 장거리를 제패하자 언론은 ‘빙판 위의 기적’이라 묘사했다. 88년부터 94년까지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500m를 3연패하며 통산 5개의 올림픽 금메달을 따낸 ‘전설’ 보니 블레어(54·미국)도 “내가 3번의 올림픽을 통해 한 일을 하이든이 1주일 만에 해낸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하계올림픽 수영에서 마이클 펠프스(33·미국)가 많은 메달을 획득할 때에도 하이든의 이름이 거론됐다.

하이든은 레이크플래시드 동계올림픽 이후 빗발치는 광고 제안을 모두 거절하더니, 81년 빙판을 떠났다. 사이클 선수가 되기 위해 갑작스럽게 은퇴를 했다. 그는 사이클 선수로도 최고 수준이었다. 85년 미국 사이클링 챔피언십에서 우승했고 86년 세계적 프로 사이클 경기인 투르 드 프랑스에 참가하기도 했다.

하이든의 도전은 사이클이 끝이 아니었다. 그는 91년 스탠포드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얻은 뒤 스포츠 전문 정형외과 의사가 됐다. 미국프로농구(NBA) 새크라멘토 킹스, 미국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에서 주치의로 일했다. 그는 “진료 뒤 환자에게 ‘6주 뒤에 다시 오세요’라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돌아와서는 ‘당신이 5관왕인 걸 이제 알았어요’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았다”고 했다.

하이든은 자신이 따낸 올림픽 금메달에 대해 먼저 말하는 일이 없었다. 4차례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대표선수로 활약한 케이씨 부티엣(47·미국)은 “사람들이 하이든의 업적을 말하면, 그는 약간 불편해 하며 ‘그게 나였어’라고 말한다”고 전했다.

하이든이 5관왕을 달성한 직후 워싱턴포스트 기자를 만나 한 말은 성공과 행복의 척도를 설명하는 책들에 자주 인용된다. 그는 “금메달로 뭘 할 수 있겠는가 차라리 괜찮은 내복을 한 벌 갖는 게 낫겠다. 그건 내가 사용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그저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인 금메달들은, 내가 늙어 돈이 필요해지면 어디에 팔 수는 있겠다”고도 말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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