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별 과학] 1미터 표준과 원주율

존 윌킨스 초상. 위키피디아


며칠 전 친구로부터 카카오톡이 왔다. 중력가속도 값 9.8과 원주율 의 제곱(3.14얬=9.86)이 거의 일치해서 신기하다고 한다. 중력가속도 9.8이란 지구상에서 물체를 떨어뜨릴 때 그 낙하 속도가 1초당 초속 9.8m씩 빨라진다는 의미다. 3초도 안 되는 시간에 시속 100㎞를 주파하는 어마어마한 가속도다. 이 값과 원주율 제곱이 일치하는 것은 우연일까? 여기에는 거리 1m 표준에 대한 역사가 숨어 있다.

근대까지 서양에서는 신체를 기준으로 한 인치, 피트, 마일 등의 거리 단위가 쓰였다. 하지만 국가별로 신체 사이즈가 달라서 단위도 각기 달랐다. 교역이 빈번하던 시절에 직물의 길이, 곡물의 용량 등에서 국가 간에 적지 않은 무역 마찰이 생기면서, 길이 표준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됐다. 17세기 영국인 존 윌킨스는 진자의 주기를 기준으로 한 길이 표준을 제시했다. 진자의 주기는 중력가속도와 진자 길이에 의해서 결정된다. 중력가속도가 클수록, 진자 길이는 짧을수록 주기는 빨라진다. 윌킨스는 진자 왕복주기의 반, 즉 진자가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이동하는 시간이 1초가 되는 진자 길이를 1m로 하자고 제안했다. 이 길이 표준으로 중력가속도를 측정하면 정확히 원주율 제곱이 된다. 합리적인 제안이긴 했으나, 문제는 위도에 따라 중력가속도가 달라진다. 지구 자전 원심력 때문이다. 따라서 지구상 위치에 따라 반주기 1초의 진자 길이가 1% 정도 달라지므로 이는 좋은 표준이 되지 못한다. 이를 개선하고자 적도와 북극까지 거리의 1000만분의 1을 기준으로 한 1m 표준이 프랑스에서 제안됐고, 1875년 국제표준으로 체결됐다. 이 표준으로 진자의 반주기가 1초인 길이는 약 0.993m로 윌킨스가 제안한 1m와 거의 일치한다. 따라서 원주율 제곱이 근사적으로 중력가속도 값과 일치한다. 현재 1m 표준은 빛의 속도를 기준으로 정해졌다.

이남영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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