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팬서’ 흑인도 세상을 구한다… 그 반가운 혁신 [리뷰]

마블 스튜디오의 신작 ‘블랙 팬서’의 극 중 장면.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라이언 쿠글러 감독의 ‘블랙 팬서’

단순한 서사에도 카리스마 강렬
인권문제 등 주제의식 뚜렷
부산 배경 액션신도 흥미로워
제작진 亞 국가 중 한국만 찾아


왜 세상을 구하는 건 늘 백인의 몫일까.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시리즈를 사랑해 마지않는 우리가 한번쯤 해봤어야 할 질문이다. 이 영화를 보는 순간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 얼얼해질 것이다. 우리의 피부색이 다 다르듯 슈퍼 히어로 역시 그럴 거란 걸 왜 여태 몰랐는지.

‘마블의 가장 혁신적인 히어로.’ 홍보물에 적힌 소개말이 꽤나 적절해 보인다. 마블 스튜디오가 최초로 선보이는 흑인 영웅, 블랙 팬서가 왔다. 그야말로 완벽한 ‘스펙’을 자랑한다. 아이언맨을 뛰어넘는 재력가이자 캡틴 아메리카와 필적하는 신체능력을 지닌 전사. 신분은 무려 왕이다.

시리즈의 전편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2016)를 통해 첫 선을 보인 블랙 팬서 캐릭터의 솔로무비. 오는 14일 개봉하는 영화 ‘블랙 팬서’는 ‘시빌 워’에서 아버지를 잃고 왕위를 이어받은 와칸다의 국왕 티찰라(채드윅 보스만)가 국민들을 지키고 나아가 전 세계에 고통 받는 이들을 구하라는 사명을 깨닫는 과정을 그린다.

극 중 배경인 와칸다는 아프리카에 위치한 가상국가다. 외부에는 최빈국으로 알려져 있지만 베일을 벗겨보면 최첨단 과학기술을 보유한 부유국이다. 그 근간에 ‘비브라늄’이 있다. 와칸다에서만 생산되는 이 희귀 금속은 강력한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는 만능 물질이자 블랙 팬서 수트의 원료이다.

여느 히어로물과 마찬가지로 서사는 단순하다. 비브라늄에 눈독 들이는 약탈자 율리시스 클로(앤디 서키스), 왕위를 노리는 숙적 에릭 킬몽거(마이클 B. 조던)의 방해가 이어지는 가운데 티찰라는 점차 성장한다. 예상보다 약한 악당들이 극의 긴장감을 다소 떨어뜨리지만, 마치 한 마리의 흑표범처럼 움직이는 주인공의 카리스마가 강렬하다.

아프리카 특유의 흥과 멋이 담뿍 녹아있다. 다채로운 색감으로 구성된 화면은 이국적 정취를 자아내고, 흥겨운 비트의 힙합이 배경음악으로 깔린다. 부산에서 촬영된 액션 시퀀스는 색다른 즐거움을 준다. 자갈치시장 광안대교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대규모 액션신에 눈을 떼기 어렵다. 배우의 어색한 한국어 대사가 몰입을 깨지만 팬서비스로 넘길 만한 수준이다.

몇몇 설정에선 뚜렷한 주제의식이 읽힌다. 예컨대 용맹한 호위대 ‘도라 밀라제’는 모두 여전사들로 구성돼있다. 흑인 인권 문제에 대해서도 짚는다. 종종 이런 대사가 등장한다. “미국인은 밥맛이야.” “경찰은 흑인에게 무자비해.” 후반부에서는 “최빈국이 뭘 할 수 있느냐”는 백인들의 무시를 시원하게 비웃어주기도 한다.

연출을 맡은 라이언 쿠글러 감독과 블랙 팬서 역의 채드윅 보스만, 그의 옛 연인 나키아 역의 루피타 뇽, 숙적 에릭 킬몽거 역의 마이클 B. 조던은 개봉을 일주일여 앞두고 내한했다. 시리즈마다 뜨겁게 성원해주는 한국 팬들에 대한 보답의 의미로 아시아 국가 중 유일하게 프로모션을 진행한 것이다.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쿠글러 감독은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슈퍼 히어로 영화에 내가 속해있는 아프리카 문화를 녹여내어 영광스럽다”고 말했다. 보스만은 “가볍게 즐길 수 있는 팝콘무비인 동시에 수많은 얘깃거리를 남기는 영화”라고 소개했다. 조던은 “이 영화를 통해 세상이 좀 더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면 좋겠다”고 했다.

러닝타임은 135분. 향후 시리즈의 예고편격인 쿠키영상까지 챙겨본 뒤 상영관을 나서야 한다. 블랙 팬서의 활약은 오는 4월 개봉되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와 내년 개봉 예정인 ‘어벤져스4’에서 이어진다. 12세가.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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