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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읽기] 워싱턴 ‘메모 전쟁’… 목표는 뮬러 특검

트럼프 대통령과 뮬러 특검. AP뉴시스


민주당 버전의 메모 공개 추진
뮬러 특검 해임 막는 반격 조치
민주당 “트럼프, 러 스캔들 수사
방해하려고 누네스 메모 공개”
트럼프의 워터게이트로 비화되나


미국 백악관과 연방수사국(FBI)의 집안싸움이 워싱턴 정가를 집어삼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이 FBI의 무리한 수사과정 내용을 담은 ‘누네스 메모’를 공개하자 민주당은 같은 기밀문서의 다른 버전인 ‘민주당 메모’ 공개를 추진하며 맞불을 놨다.

‘메모 전쟁’ 이면에는 트럼프 정권의 정통성, 사법기관 길들이기, 중간선거를 앞둔 공화·민주 양당의 기싸움 등이 첨예하게 얽혀 있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혼란 속에 일각에선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워터게이트’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의회전문지 더힐은 하원 정보위원회가 5일(현지시간) 민주당 메모의 공개 여부에 대한 표결을 검토한다고 보도했다. 표결에서 공개방침이 정해지면 트럼프 대통령은 누네스 메모 때와 마찬가지로 5일 내에 공개 또는 비공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4일 민주당 메모의 공개를 촉구하는 서한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냈다.

공개된 누네스 메모는 “FBI가 2016년 대선 당시 해외정보감시법(FISA)을 위반한 채 무리해서 트럼프 캠프 인사에 대한 감시영장을 청구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구체적인 위법행위 내용이 불명확하고, 공화당 입맛에 맞는 내용만 취사선택했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더힐은 민주당 메모가 같은 기밀문서에 기초하면서도 누락된 부분과 충분한 맥락을 채워 넣은 보다 온전한 버전이라고 민주당 의원들을 인용해 전했다.

민주당이 역습에 나선 것은 백악관의 메모 공개가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를 물러나게 해 러시아 스캔들 수사를 와해시키려는 ‘구실’로 악용될 수 있다는 의구심 때문이다. 민주당은 “뮬러 특검 등 사법기관 핵심을 해임할 경우 워터게이트 사건 이래 볼 수 없었던 헌정 위기를 촉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현지 언론도 러시아 게이트를 둘러싼 정부 내 잡음과 향후 전망이 닉슨을 탄핵으로 몰고 간 워터게이트 당시와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워싱턴포스트 논설위원 루스 마커스는 ‘트럼프와 비교해 닉슨을 모욕하지 말라’는 기고문에서 “자신을 보호하는 것 이외에 트럼프에게 신성한 영역은 없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특검의 합법성 자체를 부인하고, ‘마녀사냥’ ‘정치화’ 등 법치주의를 두들기는 행위는 워터게이트 이상이라고 질타했다.

누네스 메모 공개에 반대했던 로드 로젠스타인 법무차관과 크리스토퍼 레이 FBI 국장, 뮬러 특검 등 사법부 고위 인사들의 사임 또는 해임은 향후 전개를 좌우할 핵심 요소로 지목된다. 백악관이 정치적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인사 ‘물갈이’ 카드를 꺼내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서다. 그럴 경우 그 파장은 닉슨이 1974년 이른바 ‘토요일 밤의 학살’을 통해 워터게이트를 수사하던 아치볼드 콕스 특검을 해임하고, 법무장관과 차관 사임을 촉구한 전례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유추해볼 수 있다. 극단적 인사명령으로 자충수를 둔 닉슨은 불과 일주일 뒤 하원에서 탄핵안이 가결되자 곧 사임했다.

마커스는 “닉슨이 토요일 밤의 학살을 진행할 때도 형사사법 시스템의 합법적 필요성과 법무부의 전문성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은 있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위험한 전철을 따라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반면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는 “닉슨 당시 상·하원은 모두 여소야대였지만 지금은 공화당이 의회를 장악하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무리수를 두거나 탄핵과 같은 최악의 상황까지 치달을 가능성은 낮게 봤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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