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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헬멧 ‘NO', 욱일기 유니폼 ‘YES'… IOC의 이중잣대

대한민국 남자 아이스하키팀 골리 맷 달튼의 헬멧에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태극기가 그려져 있다(왼쪽). 축구 대표팀 박종우가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일본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뒤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표어와 태극기를 들고 달리고 있다(오른쪽). MBC스포츠플러스 안영균 PD 제공·올림픽 공동취재단
 
안민석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2년 8월 일본 선수들의 욱일기 사용에 대한 대응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국민일보DB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 골리 달튼이 쓰던 헬멧 불허 논란

“정치적 문제 있다” 이유 들어

2012년 런던올림픽 남자 축구
‘독도는 우리땅’ 펼쳐 든 박종우
IOC가 조사하고 FIFA가 징계
일본 체조팀은 욱일기 옷 입고
메달까지 땄지만 제재 안해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대한민국 남자 아이스하키팀 골리 맷 달튼(2016년 3월 귀화)의 ‘충무공 마스크(헬멧)’에 대해 “올림픽에서 착용이 불가능하다”고 통보했다. 이순신 장군을 그려 넣은 마스크가 정치적으로 해석돼 규정 위반이라는 것인데, 달튼은 이해하지 못한다는 입장이다. 2012년 런던올림픽 당시 ‘독도는 우리땅’ 세리머니를 펼쳤다가 IOC로부터 진상조사를 받았던 남자 축구의 박종우 사례와 맞물려 논란이 될 전망이다.

IOC는 지난 2일 아이스하키협회 국제팀에 이메일을 보내 “정치적 문제가 있다”며 달튼이 기존에 사용하던 마스크의 착용 불가 방침을 전달했다. 협회가 촬영해 보낸 달튼의 장비 사진을 분석한 IOC와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은 “다른 방법을 찾으라”고 회신했다. IOC와 IIHF가 올림픽 참가 선수들의 마스크 디자인 등을 사전 검사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다.

캐나다 출신으로서 국가대표가 된 달튼은 “서울 광화문에 있는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멋지다”며 왼쪽 머리 부분에 이순신 장군을 그려 넣도록 주문, 이 마스크를 착용해 왔다. 나라를 수호한 이순신의 업적과 맞물려 수문장인 달튼의 마스크는 많은 주목을 받아 왔다. 달튼은 지난 3일 카자흐스탄과의 평가전에서도 이 마스크를 쓴 채 여러 차례 선방을 해냈다.

달튼은 IOC의 통보에 “왜 문제가 되느냐”며 항변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 역사에서 큰 의미를 가진 이순신 장군을 새긴 것이며, 결코 정치적인 의도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달튼은 귀화 이후 “나는 ‘한라성(소속팀 ‘안양 한라’와 ‘성곽 같은 방어’를 조합한 별칭)’이다”며 한국에 대한 애정을 표현해온 선수다. 올림픽 출전을 앞두고는 “일생에 한 번 올까 말까한 기회”라며 의지를 보여 왔다.

IOC는 “비단 대한민국뿐 아니라 모든 국가의 선수가 똑같은 규정을 적용 받는다”고 안내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른 나라의 영웅들도 줄곧 유니폼과 장비에 표시되는 일을 막았다는 것이다. IOC는 “영국의 영웅 로빈후드는 물론 미국 자유의 여신상까지도 제한됐다”고 협회에 설명했다. 자유의 여신상을 표현하는 것마저도 제한됐다는 설명에 협회나 대표팀에서도 더 이상 항변을 하진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달튼은 골리 마스크에서 이순신 장군이 그려진 부분을 가리거나, 다른 마스크를 구비해야 한다. 달튼이 이순신 장군의 헬멧을 쓰고 일본과 맞붙을 일이 예정돼 있지는 않았다. 일본은 평창올림픽 남자 아이스하키 본선에는 출전하지 못했다. 여자 아이스하키의 경우 남북 단일팀과 일본의 경기가 예정돼 있다.

IOC가 민감한 한일관계를 염려해 한국 선수의 정치적 행위를 엄격히 규제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2012년 런던올림픽 남자 축구에서 일본과의 3·4위전에서 승리를 거둔 뒤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표어를 펼쳐 들고 달렸던 박종우는 IOC의 진상조사를 받았고, 메달 수여식에 불참하기에 이르렀다. 정치적 행위를 금지하는 올림픽 헌장을 위반한 소지가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박종우는 동메달을 박탈당하지는 않았지만 이후 FIFA로부터 A매치 경기 2경기 출전 정지 처분을 받았다.

이 사건 이후 IOC의 ‘이중잣대’를 비판하는 여론은 극에 달했다. 일본 체조 대표팀의 경우 제국주의·군국주의 일본의 상징이던 욱일기가 디자인된 유니폼을 입고 메달을 따냈지만 아무런 제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IOC에는 “유럽 선수가 하켄크로이츠(갈고리 십자가·독일 나치즘의 상징)를 유니폼으로 입고 나오는 것을 상상할 수 있겠느냐”는 문제제기 청원이 계속됐다. 한국뿐 아니라 외국인들도 일본 체조 대표팀 유니폼에 대한 조사를 촉구했다.

자크 로게 당시 IOC 위원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박종우의 행위는 명백히 정치적이었다”면서도 “일본 체조팀 유니폼에 대한 논란은 처음 듣는다”고 했다. 스포츠평론가인 최동호 스포츠문화연구소 이사는 4일 “IOC는 박종우와 맷 달튼 등 선수 개개인에 대해서는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정작 스스로는 흥행을 위해 민족주의를 이용하고 정치적 행위를 서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강릉=이상헌 이경원 기자 kmpape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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