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이동훈] 오병이어의 기적처럼



예수를 따르는 무리들은 정치·경제·종교적으로 억눌린 기층 민중이었다. 예수께서 갈릴리 바다 건너편에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배불리 먹이신 5000명의 무리도 그랬다. 영적 빈곤뿐 아니라 물질적인 절대빈곤 해소가 절실함을 아신 예수께서는 오병이어 기적이라는 상징적인 사건을 통해 해결책을 보여줬다.

예수님은 제자 빌립을 테스트하고자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고 묻는다. 빌립은 갹출해서 모아도 200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다고 답한다. 또 다른 제자 안드레는 어린아이가 싸 온 오병이어 도시락을 가져와 “이 작은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먹을 수 있을까요”라고 되묻는다. 그런데 해결책은 하나님을 향한 축사(감사기도)였다. 그리고는 떡과 물고기를 배불리 먹이고도 열두 광주리를 남겼다. 예수님이 도저히 답이 없어하는 제자들을 가르친 것은 믿음의 중요성이었다. 특히 가난한 갈릴리 사람들의 주머니를 터는 민폐 끼치는 방식보다는 ‘발상의 전환’에 답이 있음을 보여주려 한 것 같다.

올 들어 우리 사회에서 최저임금 16.4% 인상 폭탄을 놓고 벌어지는 갈등 양상을 보고 있노라면 2000년 전 예수의 제자들처럼 도저히 묘책이 없어 보인다. 서민 대통령을 표방하는 문재인 대통령 측은 서민층 소득 향상이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 다른 경제주체의 희생 내지는 양보쯤은 별거 아니라는 듯 불도저처럼 정책을 밀어붙이고, 영세 자영업자나 건물주들은 서민 죽이는 정책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문재인정부 정책 창구인 문화체육관광부 국민소통실에서 작성한 정책 브리핑을 보면 정책의 조급함이 묻어나 있다. ‘최저임금 인상 부담 덜어드립니다’는 제하의 정책기자단 기사는 보완 대책을 총정리해놨다. ‘일자리 안정자금 지원’부터 ‘두루누리 사회보험 지원’ ‘소액결제 빈번 업종의 카드수수료 부담 완화’ ‘상가보증금·임대료 인상 상한 5%로 인하’ ‘골목상권 전용 화폐 활성화’ ‘낮은 금리 대출로 자금 부담 완화’ ‘각종 경영애로 해소’ 등 7가지 대책이 나열돼 있다. 최저임금 인상 폭탄을 맞은 식당 미용실 편의점 등 영세 업주들의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한 것이 대부분이다.

한 가지 정책 현안을 놓고 이처럼 많은 보완 대책이 쏟아지는 것도 보기 드문 사례로 기록될 만하다. 자영업자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카드사, 은행들을 상대로 수수료 이자 인하를 강제한다든가 건물 주인들의 임대료 인상을 제한하는 등 시장원리는 온데간데없이 관치가 전가의 보도처럼 동원되고 있다. 관치는 공무원 입장에서는 쉽고 편할지 몰라도 수많은 경제 주체들의 주머니를 터는 행위다. 여기에다 노동단체, 시민단체 등은 최저임금 인상을 놓고 재벌이 갑질하기 때문이니, 건물주가 주범이니 하며 노사 대결을 조장하는 막말을 서슴지 않는다. 1980년대 군사정부 시절에나 목격하던 행태가 아직도 횡행하는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음식값 등 소비자물가가 덩달아 오르고 있어 노사 간 임금 갈등만 생기면 새우등 터지는 것은 항상 소비자들이다.

대통령이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일자리 500개를 늘린 노사 상생 모범 기업 한화큐셀을 찾아가 재벌 총수를 업어주고 싶다고 해서 화젯거리가 하나 더 생겼다. 포옹도 좋고 등 두드려줌도, 함께 울어줌도 대통령이 당연히 할 일이다. 그런데 청와대 국민청원이 봇물을 이루는 데서 보듯 대통령만 바라보는 소시민들이 한둘이겠는가. 언제까지 업어주고 등만 두드려줄 것인가.

영세 고용주들이 절실한 것은 ‘노동가치 인정’이니 ‘상생’이니 하는 고상한 용어가 아니다. 장사가 잘 되도록 여건만 조성해주면 알바생에게 시급 1만원을 줘도 아깝지 않을 것이다. 올해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돌파가 확실시된다고 한다. 80년대 말 우리가 부러워하던 북유럽 국가 수준으로 진입하는 것이다. 그러니 은행장 팔 비틀어 대출이자 낮추는 식의 협박 정책은 그만하자. 이제는 이런 ‘쌍팔년도’ 정책을 과감히 집어던지고 패러다임을 바꿀 필요가 있다. 타산에 빠진 빌립을 일깨운 예수님처럼.

이동훈 종교국 부국장 d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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