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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수 열전] 부상과 가슴앓이… 둘 다 자신을 딛고 다시 섰다

린지 본이 지난달 19일 이탈리아에서 열린 여자 알파인스키 월드컵 활강경기에서 슬로프를 내려오고 있다(왼쪽 사진). 미카엘라 시프린이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스위스 렌제르하이드에서 열린 여자 알파인스키 월드컵 대회전 경기에서 경사면을 질주해 내려오고 있다(오른쪽 사진). AP뉴시스




<11> 여자 알파인스키 신구 최강자 린지 본 vs 미카엘라 시프린

어깨 부상 이후 여유 되찾은 본
시속 120㎞ 활강 속도 자랑
“8년이란 오랜 시간 기다렸다”

심리치료 받으며 배짱 키운 시프린
기술 앞세운 회전·대회전 주종목
“지방질이었던 나, 근육 붙었다”


여자 알파인스키의 신구 최강자 린지 본(34·미국)과 미카엘라 시프린(23·미국)을 비교하는 일은 조금 지겹다. 동계올림픽 금메달 하나씩을 나눠 가진 둘이 평창올림픽에서 대결한다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주목받았다. 무려 79차례의 월드컵 우승을 기록한 본이 '살아 있는 전설'이지만, 시프린은 본보다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는 분석도 더는 새롭지 않다.

다만 이번 맞대결은 둘이 똑같이 공언한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본은 만신창이였던 자신의 몸을 넘어서려 한다. 2016년 11월 훈련 중 끔찍한 어깨 부상 이후 선수생활의 기로에 섰던 본은 이제 여유를 되찾았다. 본은 “처음에는 오른팔 뒤쪽의 자줏빛 상처가 끔찍했지만, 이젠 힘의 상징 같다”고 한다.

본 특유의 공격적인 레이스 운영은 무수한 우승 경력과 함께 무릎, 허리, 발목의 부상을 불렀다. 그는 금메달을 따낸 2010년 밴쿠버올림픽에서도 경기 중 오른쪽 새끼손가락이 골절됐었다. 2013년 2월에는 세계선수권 대회 도중 오른쪽 무릎이 골절돼 소치올림픽에 참가하지 못했다. 지금 그는 “8년이란 참 오랜 시간이었다”며 평창올림픽 개회를 기다리고 있다.

2014년 소치올림픽 여자 알파인스키 회전에서 최연소 금메달리스트가 된 시프린도 ‘꽃길’만 걸었던 건 아니다. 시프린은 마음의 부상을 털고 평창 무대를 준비 중이다. 월드컵 랭킹 1위에 빛나는 그지만, 시프린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출발선에 설 때마다 구토할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실제로 몇 차례 구토를 한 적도 있다고 한다. 2016년 이후 날씨가 나빠 간혹 경기를 망치는 경우가 생기면서 심리적 문제는 깊어졌다.

시프린은 우습게도 “내가 스키 타는 법을 잊으면 어떻게 될까”하고 고민하기도 했다. 1위로 결승선을 통과한 뒤에도 본인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부분을 먼저 떠올리는 완벽주의적 성격 탓도 있었다. 그는 스포츠 심리치료를 받으며 문제를 극복했다. “나는 두려움에 맞설 배짱이 있다”는 가사로 이뤄진 에미넴의 랩을 반복해 들은 것도 도움이 됐다. 시프린은 최근 인터뷰에서 “나는 다시 경주를 즐긴다”고 말했다.

맞수로 꼽히는 둘의 스타일은 조금 다르다. 본은 스피드를 앞세운 활강과 수퍼대회전에 강하다. 시속 120㎞ 이상의 활강 속도를 자랑하는 본은 무섭도록 내리꽂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남성 선수처럼 힘찬 코스 운영을 따라올 선수가 없었다. 성격도 시원시원하다. 미국 SF만화의 영웅 캐릭터인 ‘캡틴 아메리카’처럼 꾸민 경주복을 입고서는 SNS에 “누가 ‘캡틴 아메리카’가 항상 남자라고 했느냐”는 글을 남긴다.

시프린은 섬세한 기술이 필요한 회전과 대회전이 주종목이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올림픽에서 금메달 3개를 땄던 크로아티아의 스키 영웅 야니카 코스텔리치는 “시프린의 움직임은 완벽히 조화롭다”며 “왈츠를 추듯, 모든 게 너무 쉽다는 식”이라고 말했다. 기문(게이트)을 지그재그로 지나칠 때 팔이 설상에 닿을 듯 극단적으로 꺾는 모습이 시프린의 트레이드 마크다.

스키를 대하는 진지한 태도와 열정은 둘의 공통점이다. 본은 “8살 때 스키를 타기 시작한 뒤 내가 하는 일을 한결같이 사랑한다”고 말한다. 본은 “부상에 시달린 내가 가속 페달에서 발을 뗄까봐 사람들이 걱정하지만, 나는 더 똑똑해졌다”고 한다.

시프린은 우승컵을 들어올린 직후에도 체육관에 가는 성미다. 그의 몸무게는 4년 전 소치올림픽 당시와 똑같은 64.4㎏이다. 하지만 시프린은 “그때는 아기처럼 지방질이었지만, 지금은 근육이 붙었다”고 자신감을 드러낸다. 4년 전에는 90㎏짜리 바벨을 들고 스쿼트(허벅지가 무릎과 수평이 될 때까지 앉았다 섰다 하는 동작)를 1차례 소화하는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120㎏ 무게를 여러 차례 견딘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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