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시사  >  출판

[책과 길] ‘미투 운동’보다 앞섰던 영국 여성 25인의 분투기



나는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 부른다/빅토리아 페트 등 엮음
박다솜 옮김/열린책들/312쪽/1만5000원


미국에서 시작된 성폭력 피해 고발 캠페인 ‘미투(Me too) 운동’에 동참할 용기를 주는 책 한 권이 추가됐다. 부제는 ‘30대 이하 여성 25명이 말하는, 내가 페미니스트인 이유’. 배우 정치인 코미디언 변호사 작가 인권운동가 학생 등 여러 상황에 있는 젊은 영국 여성들이 왜 각자 페미니스트로 살기로 결심했는지를 쓴 에세이 모음이다.

이 책은 여성에 대한 성차별과 성폭력이 인종 세대 직업 등과 관계 없이 전 세계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면서 여성들의 연대(漣帶) 즉 ‘미투’ 필요성을 강력하게 일깨워준다.

먼저 16세 소녀 준 에릭어도리 이야기. 엄마는 이 소녀에게 “페미니스트들은 그저 남편을 얻지 못해 화가 난 질투심 많은 여자들”이라고 알려줬다. 에릭어도리는 엄마가 “착한 여자는 눈에 보이되 귀에 들리지 않으니 조용히 하라”고 할 때 비명을 지르고 싶을 정도의 억압감을 느끼며 ‘자유로워질 권리가 있는 걸 기억하는’ 페미니스트가 됐다고 고백한다.

어린 시절만이 아니다. 직장에서도 성차별은 일상적이다. 카피라이터 하자르 J 우들랜드는 여성들이 직장에서 자주 듣는 “여자치고 잘했다”에 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여자치고’ 잘한다는 말에 안주하게 되면 여성들은 결국 높은 목표 자체를 설정하지 않게 되고 남성들에게 승진과 성과급의 기회를 넘기게 된다는 것이다.

성차별과 성추행을 막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일상 속의 성차별 프로젝트’ 창시자인 로라 베이츠는 “연결이 전부”라고 한다. 2012년 베이츠가 영국에서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여성들이 일상에서 겪는 다양한 성차별을 증언하는 것으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베이츠는 “프로젝트가 성공할 수 있었던 건 개인과 개인을 이어 줬기 때문”이라며 “아무에게도 말 못할 고통을 겪던 여성들이 다른 여성의 목소리에서 유대감을 느꼈고 직장에서 차별이나 성폭력을 신고할 용기를 얻었다”고 소개했다.

현재 미국에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미투 운동’은 어떻게 보면 2012년 영국에서 시작된 ‘일상 속의 성차별 프로젝트’의 미국 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여성들이 여전히 성차별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때문에 어떤 면에선 서글프다. 하지만 씩씩하고 당찬 목소리들은 연대하고 행동할 수 있는 용기를 주기 때문에 기쁘기도 하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