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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롤러코스터 탄 남북 대화의 막전막후

김대중(오른쪽) 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2000년 6월 13일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해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당시의 회담을 언급하면서 “남북관계의 역사는 정상회담 이전과 이후로 구분할 수 있다. 그 이전에도 남북한의 주요 합의가 적지 않았지만, 정상회담을 계기로 합의의 시대에서 실천의 시대로 전환됐다”고 적었다.국민일보DB




70년의 대화/김연철 지음/창비/352쪽/1만6800원

책을 읽다가 이런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저자는 “남한과 북한이 거울 앞에 서 있다”고 가정한 뒤 이렇게 적었다. “거울 앞에서 내가 웃으면 거울 속의 상대도 웃고, 내가 주먹을 들면 상대도 주먹을 든다. 그러나 주체와 객체는 분명하다. 거울 속 상대가 나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거울 속 상대를 움직인다.”

이 말에 담긴 의미는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이 대북 문제 해결에 능동적으로 나서야한다는, 그래야 북한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다는 주문이다. 그런데 이게 어디 쉬운 일인가. 북한은 몽니를 부리고 어깃장을 놓고 생떼를 써서 한반도 남쪽 사람들을 뜨악하게 만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최근만 하더라도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금강산에서 열릴 예정이던 남북 합동 문화공연을 일방적으로 취소해 남한 사람들을 아연실색케 만들었다.

이쯤 되면 능동적으로 나서봤자 헛물만 켜다가 끝나는 게 대북 문제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책 ‘70년의 대화’를 읽으면 저자의 주장이 진부하다고 허투루 여길 순 없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올림픽을 앞두고 남북 대화가 재개된 상황이니 차제에 한반도의 굴곡진 역사를 공부하고 싶은 독자라면 이 책이 대단히 흥미로울 것이다.

우선 저자가 누구인지 알아보자. 저자는 참여정부 시절 통일부 장관 정책보좌관으로 일했고, 현재는 청와대 국가안보실 자문위원인 김연철(54)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다. 각종 매체의 칼럼이나 기사에 종종 등장하는 이름이니 눈 밝은 독자라면 알고 있을 만한 인물이다.

‘70년의 대화’는 방대한 사료(史料)를 깁고 다듬어 완성한 노작(勞作)이다. 책은 현대사를 7개 단원으로 구분한 뒤, 각 시대의 ‘결정적 장면’을 통해 대북 정책의 성과와 한계를 살피는 구성을 띠고 있다. 7개 단원은 ‘이승만→박정희(1960년대)→박정희(1970년대)→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순이다. 정부의 대북 기조에 따라 요동친 남북 관계의 역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웬만한 독자들에겐 비사(秘史)처럼 여겨질 수 있는 흥미로운 이야기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정상회담이 성사 직전까지 갔다가 좌초된 사례가 얼마나 많았는지, 전쟁 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1994년 6월엔 한국과 미국 사이에 어떤 말들이 오고갔는지 확인할 수 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저자의 논평이다. 가령 그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대북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그가 집권한 시기를 ‘공백의 5년’이라고 명명했다. 그러면서 “(김 전 대통령은) 북한이 도발하면 대북 강경여론에 올라타고, 정부 능력을 문제 삼으면 장관을 교체했다”며 “책임의식이 부족했고, 무능했으며, 과도하게 국내정치만 생각했다”고 적었다.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책이니 남북 대화가 단절됐던 이명박·박근혜정부를 향한 시선도 고울 리 없다. “이명박·박근혜정부는 ‘시간은 북한이 아닌 우리 편’이라고 주장하며 북한에 압박과 제재를 가하면서 기다리자고 했다. 제재와 압박에도 북한의 경제성장률은 높아졌고 핵능력은 고도화되었으며, 북한은 굴복하지도 붕괴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기회를 낭비하고 세월을 허비한 채 우리는 결국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라는 재앙적 현실에 직면했다.”

보수적인 성향의 독자라면 이 책의 논조가 마뜩잖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례가 풍부하고 논리도 탄탄해 책을 읽고 나면 저자가 전하려는 메시지에 얼마간 동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6자회담 재개의 필요성을 역설하거나 종전 선언이 ‘사실상의 평화’를 구축하는데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전하는 대목도 주목할 만하다.

저자는 딱딱한 내용에 가독성을 가미하려면 어떻게 글을 풀어내야하는지 그 방법을 아는 것 같다. 각 챕터의 첫 문장만 읽어도 속절없이 책에 빠져들어 책장을 넘기게 된다.

이 책이 전하려는 메시지는 간명하다. 남과 북을 가로지르는 ‘적대의 바다’에 놓인 대화의 다리를 지켜야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미래학자 엘빈 토플러의 말을 언급하면서 이렇게 적었다. “한반도가 직면한 근본적인 과제는 남과 북의 시간의 충돌이다. 가장 빠른 시간을 살고 있는 남한과 가장 느린 시간을 살고 있는 북한의 시간적 모순은 통일 과정에서 극복해야 할 근본 문제다. 시간의 차이로 생긴 오해와 이질성을 극복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바로 접촉이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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