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와 자취] 국악 세계화의 거장… 영혼의 금선을 울리고 떠나다

‘가야금 명인’ 황병기 선생이 생전에 가야금을 연주하고 있다. 그는 ‘숲’ ‘침향무’ ‘미궁’ 등의 창작곡으로 국악 현대화와 세계화에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 국민일보DB




‘가야금 명인’ 황병기

고시 공부 하지 않고 고무신·두루마기…
다양한 장르와 접목 국악의 대중화 앞장
전통의 속살 간직… 지난해 9월까지 연주


‘가야금 명인’ 황병기 선생이 31일 새벽 별세했다. 향년 82세. 황 선생은 지난해 말부터 뇌졸중 치료를 받아왔는데 폐렴까지 겹치면서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은 국악과 다양한 장르 음악의 만남을 시도하면서 국악을 세계화시킨 거장으로 평가받는다.

유교적 가풍을 지닌 집안의 3대 독자로 태어난 그는 엄격한 교육을 받았다. 서울 경기중 재학 시절 가야금을 배우겠다고 했을 때 집안 어른들은 “가야금을 배워 신세를 망치고 싶으냐”며 반대했다. 하지만 “무엇을 전공하든 예술은 알아야 하고 공부에 지장 없도록 하겠다”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결국 그는 국립국악원에서 가야금 연주와 작곡을 공부했다.

고인은 가야금을 배우면서도 착실히 공부해 경기고를 거쳐 서울대 법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때는 고등학교 교복에 검정고무신을 신고 다녀 친구들 사이에 ‘괴짜’ ‘기인’으로 통했다고 한다. 대학 2학년 때 KBS 주최 전국국악경연대회에 나가 1등을 하면서 국악계에 이름을 알렸다. 졸업 후에는 서울대 국악과 강사 제안을 받아 강단에도 서게 됐다.

1962년 쓴 곡 ‘숲’은 첫 현대 가야금 창작곡이다. 전위적 작업에도 많이 참여했는데 60년대 중반 미국 뉴욕에서 미 현대음악의 대표 주자 존 케이지, 미디어 아티스트 백남준과 함께 비디오와 음악을 혼합한 퍼포먼스 공연을 했다. 서울 명동국립극장에서 초연했던 ‘미궁(迷宮)’은 뉴욕에서 활동하던 현대무용가 홍신자와 함께했다. 이들뿐만 아니라 첼리스트 장한나, 작곡가 윤이상 등과도 폭넓게 교류한 것으로 유명하다.

74년 신설된 이화여대 국악과 학과장을 맡아 본격적인 음악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창작곡 ‘침향무’는 가야금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린 대표작이다. 이후 국내외적으로 수많은 연주회를 가지며 호평을 받았다. 지난해 9월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국립국악관현악단과 연주하는 등 마지막까지 활발한 연주활동을 보였다.

김희선 국립국악원 국악연구실장은 “고인은 정악 민요 등을 두루 공부한 뒤 국악에 현대의 다양한 예술과 접목시킴으로써 국악을 대중화하고 세계에 알렸다”고 말했다.

윤중강 음악평론가는 “황병기 음악은 중심으로 향하는 힘(전통)과 중심에서 벗어나려는 힘(미래)이 팽팽하게 맞선다. 그의 음악은 전통의 속살을 간직한 현대음악”이라고 평가했다.

“사라져 없어져 버리는 것들이야말로 우리 영혼의 금선(琴線)을 울릴 때가 많다. …피었다가 지는 꽃, 그 꽃잎에 맺힌 이슬, 심지어 그 이슬의 그림자조차도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가치가 있다. 음악은 사라지는 것 중에서도 가장 순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고인이 생전에 썼던 글이다. 그도 결국 이 세상에서 사라졌지만 순수한 가야금 소리를 남기고 갔다.

유족으로 소설가인 부인 한말숙씨와 아들 준묵 원묵씨, 딸 혜경 수경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아산병원(02-3010-2000).

글=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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