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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반도기에 독도 표시, 2000년 국정원 등 일부 부처 반대로 무산됐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개막식에서 정은순 당시 여자농구대표팀 선수(앞줄 오른쪽)가 북한 박정철 남자유도대표팀 감독과 한반도기를 들고 입장하고 있다. 국민일보 DB




2000년 시드니올림픽 직후 한반도기에 독도를 표시하는 방안이 검토됐지만 국가정보원이 “일본을 자극한다”며 반대해 무산된 것으로 확인됐다. 국정원은 “공론화를 자제해야 한다”는 의견도 폈다. 정부는 “향후 남북 체육교류 시 북한과 협의한다”는 방침이었지만 이번 평창올림픽에 쓰일 한반도기는 독도가 빠진 그대로다.

이러한 내용은 국민일보가 30일 입수한 문화관광부(현 문화체육관광부) 체육국의 ‘한반도기에 독도 표시 관련 사항 검토 보고’ 문건에서 드러난다. 2000년 9월 15일 시드니올림픽 개회식에서 남북 선수단이 쓴 한반도기는 91년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때처럼 여전히 독도가 그려지지 않은 형태였다. 이에 시민사회에서는 “한반도기에 독도를 표시하라”는 민원을 다수 제기했다. 전 세계에 독도가 우리 땅임을 자연스레 홍보해 일본과의 영유권 분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자는 취지였다.

문광부도 독도 표시가 바람직하다고 결론짓고 2000년 10월 30일 3가지의 한반도기 수정안을 마련했다. 독도만을 추가 표시하는 방안, 독도와 울릉도를 추가 표시하는 방안, 독도뿐 아니라 서해안 소흑산도와 남해안 마라도까지 그려 넣어 한반도의 경계섬 모두를 추가 표시하는 방안이었다. 문광부는 “한반도기를 그대로 유지하면 독도 정책 부재로 부각돼 비난을 모면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관련 부처·단체의 생각은 정반대였다. 국정원은 “독도 영유권 문제와 관련, 일본을 불필요하게 자극할 우려가 있으므로 공론화를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문광부에 회신했다. 국정원은 “남북한의 합의 내용을 수정해야 하는 만큼 북측과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나, 남북한 간 현안이 산적돼 있는 현 상황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시기적으로 부적절하다”고도 밝혔다. 국정원은 “이 문제는 향후 남북한간 체육교류가 활성화될 경우 북측과 협의 추진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끝을 맺었다.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는 한반도기를 둘러싼 논의 자체를 불필요하게 여겼다. 행자부는 “한반도기의 무분별한 사용 확대로 한반도기가 남북 통합 국기로 인식되고, 국민들이 태극기보다 상위 개념의 국기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고 전제했다. 이어 “(독도 표시)문제를 공론화할 경우 한반도기의 상징성을 지나치게 부각시킬 우려가 있다”고 했다. 행자부는 “향후 한반도기를 ‘남북 선수단기’ 등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항구적인 선수단기 제정을 검토해 한반도기의 의미를 축소하고 사용을 최소화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통일부와 대한체육회도 현행 형태를 유지하자는 의견이었다. 통일부는 “울릉도, 마안도, 마라도 등 독도 이외의 다른 도서의 표시 여부와 병행 검토돼야 하며 남북한 간 합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또 “한반도기의 성격이 영토의 경계 표시보다는 남북 화합과 동질성을 상징하는 의미가 크므로 현행대로 사용하는 것도 무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한체육회는 “한반도기에 독도를 표시할 경우 기(旗)의 크기에 따라 표시가 어려워질 수 있다”며 “여타 도서들의 민원 제기 우려가 있어 현행대로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결국 주무부처인 문광부는 한반도기 독도 표시 검토를 백지화했다. 문광부는 2000년 12월 29일 “한반도기 도안변경을 협의하기에는 시기적으로 부적절하며 국정원 등 관련 기관에서도 독도 표시 문제 거론에 대해 부정적”이라며 “당분간 현행 한반도기를 사용한다”고 결정했다.

한반도기 독도 표시 청원은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계속됐다. 2002년 8월에는 일본 자민당이 한국의 독도 국립공원화에 항의했다는 일본 언론의 기사가 청원서에 첨부돼 부산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로 접수됐다. “일본의 눈치를 보느냐”는 지적이었다. 당시 조직위는 “여건이 허락되면 건의가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회신하며 해당 청원을 문광부·통일부에 전달했다.

국민의정부의 최종 조치는 “남북장관급회담이나 단일팀 협의 시 북한 측과 재협의를 추진한다”는 것이었다. 이후 2006년 토리노올림픽과 2007년 창춘아시안게임의 한반도기에는 독도가 표시됐지만, 이번엔 다시 빠진다. 평창올림픽 조직위는 최근 “한반도기에 제주도를 제외한 서해의 섬 등은 축척에 따른 표시가 돼 있지 않다”며 “일본과의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없다”고 밝혔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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