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는 시대다] 신세기 소시민의 반칙

회사 내 화장실에서 상사(송영창)에게 헤드록 걸린 대호. ‘반칙왕’의 대호는 이후 배우 송강호가 지속적으로 연기하게 될 ‘소시민 캐릭터’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사 제공
 
1960년대 한국 프로레슬러계를 대표한 ‘박치기왕’ 김일(왼쪽). 영화사 제공
 
가면을 쓰고 사랑을 고백하는 대호. 영화사 제공
 
김지운 감독


국내에서 오락으로서의 프로레슬링 전성기는 1960년대, 아무리 가까이 잡아도 70년대다. 이후 프로레슬링에 관심을 갖는다는 건 유아적이거나 퇴보적이거나 특별히 광적인 변두리 취향으로 취급받았다. 하물며 21세기가 시작되는 2000년에는 오죽했을 것인가. 게다가 보는 것도 아닌 하는 것으로서 말이다. 그런데 ‘반칙왕’은 그 지나간 것을 당대 가장 세련되고 인기 있는 문화였던 영화 안으로 불러들인다. 왜 그랬을까.

‘반칙왕’의 대호(송강호)는 은행원이다. 소심한데다 무능한 그는 상사에게 호통을 듣기 일쑤이거니와 틈만 나면 헤드록을 당한다. 상사는 화장실에서도 복도에서도 대호의 목을 조이고는 빠져 나가보라며 윽박지른다. 그것이 상사가 대호에게 내리는 체벌이자 교육이다. “세상은 정글”이라고 상사는 말한다. 대호는 그 정글을 용맹하게 헤치고 나갈 의사도 용기도 별로 없는 것 같다. 좋아하는 여직원이 있지만 고백도 못하고 전전긍긍한다. 그러다 어느 날 허름한 프로레슬링 도장을 발견한 대호는 관장을 붙들고 간청한 끝에 선수로 입문하게 되고 타이거 마스크를 쓰고 마침내 경기에까지 나서게 된다. 삶의 기력을 잃고 살았던 대호도 이제 뭔가 열심히 할 일을 찾은 것이다.

대호 캐릭터는 무기력한 월급쟁이 소시민이라는 용어로 일단락 정리된다. 무기력한 소시민과 지나간 것으로서의 프로레슬링의 만남. 영화 속 소시민들은 때로 일탈을 감행하고 해방을 찾아 나선다. 누군가는 여행을 떠나고 누군가는 특별한 취향을 갖고 누군가는 환상의 세계로 빠져든다. 대호도 그 중 하나다. 중심에서 밀려난 자와 현재로부터 밀려난 것이 조우하자 향수가 피어나고 안식처가 마련되며 환상이 꿈틀거린다.

실제적인 이유도 없진 않다. 체육관을 찾았을 때 대호가 관장에게 부탁하는 것은 한 가지다. 헤드록에서 벗어나는 기술을 가르쳐 달라는 것이다. 상사의 헤드록이라는, 일반적인 직장에서라면 생각지도 못할 그것을 영화는 초반부에 꽤 진지하고 거친 격투 장면처럼 묘사한다. 잠시 견디고 지나가면 될 만한 우스꽝스러운 모욕이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는 것이, 대호에게는 그 순간이 매번 자기의 사회적 무능이라는 자리를 절감하게 되는 절체절명의 위태롭고 치욕적인 순간이기 때문이다.

이때 관장이 대호에게 알려주는 비법이란 것이 흥미롭다. 상황을 재연하기 위해 대호가 헤드록을 걸자 관장은 대호의 옆구리에 간지럼을 태워 가볍게 벗어난다. 목을 조여 오는 무서운 기술을 간지럼으로 해체하는 건 무서운 표정의 현실을 가벼운 익살로 극복해보려는 이 영화의 자세와도 연관된다.

그 간지럼도 반칙이라면 반칙이다. 그리고 어쩌면 반칙이야말로 프로레슬링의 꽃이다. 한국의 가장 유명한 프로레슬러 선수(고 김일)의 가장 유명한 기술이 상대를 이마로 받는 박치기였다니. 흔히 궁지에 몰린 약자 혹은 패배자가 취할 법한 어떤 발악의 일격 혹은 자기 신체의 최후 무기화 중 하나가 박치기다. 그러니 생각해보면 그때 관객들이 박치기에 열광한 건 그것이 마침내 하나의 정식 기술로 승화되었다고는 해도 결국 그 괴상하고도 본능적인 일격이 주는 반칙성 쾌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밀가루 뿌리기, 눈 찌르기, 포크로 이마 찍기 등 상대를 제압할 힘과 기술이 부족한 대호도 많은 반칙 기술을 보유한다. 그리고 그 반칙들을 더 유려하게 수행하기 위하여 그가 더하는 것이 타이거 마스크라는 가면을 쓰는 것이다. 말하자면 ‘반칙왕’에서 대호는 반칙하는 것이 부끄러워 가면을 쓰는 것이 아니라 그 반칙의 양식적 완성을 위해 가면을 쓴다. 여기서 가면은 도덕의 위장막이 아니라 양식의 활력소다.

물론 일반적으로 가면이란, 알려진 나를 위장하기 위해 쓰는 것이다. 하지만 나의 이면의 출현을 위해서도 쓴다. 나의 알려지지 않은 면모가 마음껏 노출될 수 있도록 힘을 부여하는 장치가 가면이기도 하다. 이 점이 ‘반칙왕’의 대호가 쓰는 가면의 특징이다.

예컨대 ‘반칙왕’의 대호의 가면과 ‘복면달호’의 봉필이의 가면은 다른 것이다. ‘복면달호’에서 원래는 록 음악을 하고 싶었던 주인공 달호(차태현)는 우연히 트로트 매니저를 만나고 우여곡절 끝에 트로트 가수가 되어 공중파 데뷔의 순간까지 맞는다. 하지만 그때 달호는 자신의 신분을 숨기는 데 급급하다. 달호는 방송국의 분장사에게 “내가 아닌 것처럼” 해달라고 부탁하지만 분장으로도 자신을 숨기는 것이 어렵게 되자 그는 마침내 가면을 쓴다. 달호는 가면 뒤에 숨기 위해 가면을 쓰지만 후반부에 이르면 자신의 의지로 얼굴을 드러낸다. 달호가 가면을 벗을 때 위장도 제거되고 달호 자신은 자신이 된다.

‘반칙왕’의 대호의 가면은 다르다. ‘복면달호’의 가면이 나의 익명을 위한 것이라면 ‘반칙왕’의 가면은 나의 이면을 위한 것이다. ‘복면달호’의 가면은 나를 타자로 만들지만 ‘반칙왕’의 가면은 나를 또 다른 나로 만든다. 때문에 영화의 정점에서 상대 선수조차 대호의 가면을 뜯어 이면 출현의 효과를 부수는 것이 승리의 확증이라는 걸 잘 알고 있을 때, 그렇게 하여 대호의 가면이 무참하게 뜯겨져 나갈 때, 적어도 대호 혹은 타이거마스크를 응원하는 관객이라면 대호와 마찬가지로 쓰디쓴 모욕감을 맛보게 된다. 이내 영화는 대호의 멋진 공중 발차기로 분위기 전환을 시도하지만 사실 그건 이미 뜯겨진 가면, 구겨진 나의 이면에 대한 상투적 위로에 불과할 것이다.

이 가면의 문제는 결정적으로 대호의 고백이라는 문제와 심대한 연관을 맺고 있다. 가령 대호의 고백은 언제 시작되는가. 그는 회식자리에서 심기가 불편한 나머지 난동을 부리다 상사에게 또 헤드록을 당한다. 앞서 통했던 간지럼은 쓸 겨를도 없고 이번에는 전에 없이 치욕적인 상황을 맞는다. 이 장면 이후부터 대호의 고백 릴레이가 시작된다. 한 번은 가면을 벗고 나머지 두 번은 가면을 쓰고 대호는 고백한다.

관장의 딸이 “대호씨, 레슬링 왜 하세요”라고 버스 정류장에서 묻는 그때에 바람이 불어 관장의 딸의 무릎에 있던 꽃이 날아가고 그녀가 그걸 줍기 위해 화면을 빠져 나가고 그걸 모른 채 홀로 대호의 고백이 시작된다. “내가 뭘 이렇게 열심히 신나고 즐겁게 해본 적이 없었어요. 링 위에 딱 서있는데 떨리기는커녕 왜 그렇게 힘이 나고 신이 나는지. 그래 여기서 만큼은 내가 최고다, 누가 뭐래도 내가 최고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대호의 고백이 끝나서야 관장의 딸은 자리로 돌아온다. 이 고백의 청자는 그녀가 아니라 관객뿐이어서 이것은 방백에 더 가깝다. 이때 그는 우리에게 말하기 위해, 가면이라는, 이면을 위한 과장된 장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우린 그가 가면을 쓰게 된 사연 자체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두 번의 고백에서는 다르다. 이때 대호는 가면을 쓴다. 그러니까 가면은 대호에게 고백이라는 양식의 추임새이기도 하다. 대호가 무릎을 꿇고 앉아 “아버지 그동안 제가 철없이 굴어서 많이 속상하셨지요”하고 자신의 이면을 말로써도 형상으로써도 드러내려 하자 뒤늦게 가면 쓴 아들 모습을 발견한 아버지는 깜짝 놀라 파리채로 두들겨 팬다. 대호가 “가면을 쓰지 않고는 도저히 말씀드릴 수 없기에 부득불 이런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하면서 좋아하는 여인 앞에서 사랑을 고백할 때에도 돌아오는 반응은 “대호씨, 술 드셨어요” 하는 면박뿐이다.

이 고백 장면들의 공통점은 두 가지다. 첫째, 진심을 드러내는 것이 두려워 가면을 덧쓴 것처럼 말해지고 추정되지만, 실은 자신의 가장 자긍심 넘치는 순간이 가면을 쓴 순간이라고 주인공이 인식한다는 점에서 이 두 장면은 대호가 또 다른 나를 드러내고 주장하는 강고한 주체성의 고백 장면이다. 그런데 두 번째 공통점은 그 고백의 양식화로써 이루려던 교감에서 둘 다 실패한다는 것이다. 대호는 가면을 쓴 고백을 통해 나를 또 다른 나로서 드러내며 강력한 주체화를 시도하지만 그 주체화는 수긍되지 않고 실패한다.

‘반칙왕’은 대호라는 이 소시민의 주체화 호소 과정의 실패에 대한 쓴 맛을 이완시키기 위해 에필로그에서 익살을 부린다. 경기가 끝나고 엉망진창의 몸으로 병실에 누워 있던 대호는 박차고 일어나 직장 상사를 찾아가 있다. 길거리에는 눈이 내리기 시작하고 상사와 대호가 맞서고 있다. 대호가 상사를 향해 달려 들 때 ‘이제 대호는 옛날 대호가 아닐 것이다’라는 생각이 얼핏 들기도 하지만, 바로 그 때 대호는 상사의 코앞에서 “아이구 머니나” 하면서 제 스스로 걸려 엎어져 쓰러진다. 자기 주체성 확립을 시도했던 어느 신세기 대한민국 소시민은 이렇게 다시 익살의 제스처를 통해 엄혹한 현실의 위계와 위트 있는 상상의 저편 그 사이 어딘가에서 타협적으로 멈추게 되는 것이다.

▒ 김지운 감독은
‘조용한 가족’으로 이름 알려


김지운(54·사진) 감독은 자칭 '백수' 시절을 오래 지냈다. 20대에는 특별한 고정 직업 없이 이것저것 하며 보냈다고 한다. 30대에 접어들었을 무렵 한 영화지의 시나리오 공모전에 당선돼 마침내 영화감독의 길을 걷게 됐다. '조용한 가족'(1998)이다. 한 가족이 운영하는 산장에 다양한 투숙객들이 찾아오고 사건이 눈덩이처럼 커지면서 코미디와 공포가 뒤섞이는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블랙 코미디 영화였다. '조용한 가족'으로 김 감독은 일약 한국대중영화의 기대주로 떠오르게 된다. '반칙왕'(2000)은 그의 두 번째 장편영화이고 이 영화로 유연한 시각과 기술을 장기적으로 선보일 수 있는 능력을 지녔음을 입증한다.

세 번째 작품으로 구전설화 장화홍련전을 개작하여 '장화, 홍련'(2003)을 만들었고 이 영화로 흥행사의 기질도 발휘한다. 김 감독은 다양한 장르를 섭렵해 온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코미디 스릴러 공포 등이 그간 그의 영화의 중심 장르였다면 '달콤한 인생'(2005)에서는 누아르라는 다소 생소한 장르에 도전하게 된다. 이후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으로는 한국영화사의 고전기에 존재했으나 그동안 명맥이 끊겨 있었던 이른바 '만주 웨스턴'을 부활시키기도 한다. 연쇄 살인범을 소재로 한 '악마를 보았다'(2010) 이후 할리우드로 건너가 '라스트 스탠드'(2013)를 연출했지만 비평적으로도 흥행적으로도 큰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작 '밀정'(2016)으로는 흥행에서 큰 성과를 올렸다.

<정한석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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