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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영웅에게 듣는다] ‘썰매 개척자’ 강광배 “네 번 출전, 의무감이 컸다”

강광배 교수가 지난 9일 서울 송파구 한국체대 대학본관에서 진행된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 앞서 봅슬레이 4인승용 썰매를 양 옆에 둔 채 웃고 있다. 최종학 선임기자

<5> ‘한국 썰매 개척자’ 강광배 교수

엘리트 스포츠 접해보지 못해
스키 연습하던 중 십자인대 파열
재활 매진 끝 루지 국가대표로
스켈레톤·봅슬레이로 종목 전환
겨울 체육 저변 확대 책임감 가져
든든한 후배들이 메달 사냥 준비
“썰매, 지속 가능한 종목 됐으면…”


처음부터 썰매 종목 국가대표를 꿈꿨던 것은 아니었다. '한국 썰매의 개척자'로 불리는 강광배(45) 한국체대 교수는 엘리트 스포츠를 전혀 접해보지 않은 평범한 91학번 체대생이었다. 1990년대 초반만 해도 스키를 탄다는 것은 부의 상징과도 같았다. 그는 대학 시절 전북 무주리조트에서 강사 아르바이트를 한 덕분에 원 없이 스키를 탈 수 있었다. 크고 작은 지역 대회에서 상을 휩쓸면서 자연스레 "태극마크를 달고 올림픽에 나가고 싶다"는 꿈을 가졌다.

스키 국가대표를 향해 질주하던 그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94년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을 당한 것이다. 지난 9일 서울 송파구 한국체대 대학본관에서 만난 강 교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큰 포부를 세웠는데 부상으로 꿈을 잃었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고, 정말 방황을 많이 했었다"고 털어놨다.

무릎 부상은 강 교수가 썰매 종목인 루지와 인연을 맺는 계기가 됐다. 95년 그는 우연히 루지 국가대표를 뽑는다는 공고를 봤다. 사실 루지가 뭔지도 몰랐다. 눈에는 ‘국가대표’라는 글자만 들어왔다. 백과사전을 뒤져보고 나서야 루지가 ‘누워서 타는 썰매 종목’이라는 것만 알게 됐다. 강 교수는 무언가에 끌리듯 재활에 매진했다. 그리고 대표 선발전에서 2위에 올라 98 나가노 동계올림픽 루지 국가대표 선수가 됐다.

훈련 환경이 좋을 리 없었다. 강 교수는 “여름 내내 아스팔트 언덕길에 고깔을 지그재그로 세워둔 채 바퀴 달린 연습용 썰매를 타고 내려오는 게 훈련이었다. 유니폼이 없어 트레이닝복을 입었고 훈련은 1년에 2∼3개월이 전부였다”고 회상했다. 강 교수는 이듬해 전지훈련을 가서야 얼음 위에서 썰매를 처음 탔다.

나가노올림픽에는 3명의 한국 루지 선수가 출전했다. 강 교수와 그의 대학 후배 이기로, 레슬링 선수 출신 이용 현 봅슬레이스켈레톤 대표팀 총감독이었다. 세 선수 모두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강 교수는 “썰매를 조종한 게 아니고 썰매가 우리를 데리고 내려왔다. 대회가 끝나니 다른 나라 선수처럼 맘껏 썰매를 타지 못한 게 한으로 남았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나가노올림픽을 마친 뒤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로 유학을 떠났다. 그런데 대한루지연맹은 세대교체를 이유로 국가대표 명단에서 그를 제외했다. 이번에는 강 교수가 루지 선수였다는 것을 알게 된 외국인 친구가 ‘스켈레톤을 배워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때마침 스켈레톤은 54년 만에 2002 솔트레이크올림픽 정식종목으로 부활했다.

강 교수는 “네 번의 올림픽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다. 썰매에 태극마크를 사다 붙이는 것부터 모든 것을 혼자서 준비했다”며 “현지에서 스키 강사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사비를 털어 훈련했다. 올림픽에 나가겠다는 일념으로 스켈레톤 훈련에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한국 스켈레톤은 국제연맹에 가입되지 않아 국가대표로 나설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는 자비를 털어 국제연맹에 연맹 가입 신청서를 낸 끝에 생애 두 번째 올림픽인 솔트레이크 무대를 밟았다.

강 교수는 솔트레이크 대회가 끝나고는 평창올림픽 유치위원회에서 각종 위원으로 활동했다. 썰매 개척자라는 자부심보다는 하루빨리 한국 겨울 스포츠의 저변 확대에 앞장서야겠다는 책임감과 의무감이 생겼다. 그는 “훈련시설도 선수도 없는데 올림픽을 어떻게 개최하느냐”며 썰매 선수들을 위해 실업팀을 만들어 달라고 호소했다. 2003년 10월 강원도청이 실업팀을 창단하면서 아르바이트 걱정 없이 월급 받고 운동할 기회가 생겼다. 2005년에는 이용 총감독도 팀에 선수로 합류했다.

그렇게 스켈레톤 선수로 다시 태극마크를 달았고, 2006 토리노올림픽에 출전했다. 당시 그의 나이 33세였다. 자신의 선수생활보다는 후배 양성에 힘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대회를 마친 강 교수는 스켈레톤을 후배들에게 물려주기로 결심했다. 자신은 봅슬레이로 다시 한 번 종목을 전향키로 했다. 2010 밴쿠버올림픽에는 한국 선수가 썰매 전 종목에 출전했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강 교수는 김정수 이진희 김동현과 함께 밴쿠버올림픽 봅슬레이 4인승에 한국 대표팀 감독 겸 선수로 출전했다. 최종 성적은 19위였다. 불모지로 평가받는 썰매 종목에서 그가 거둔 올림픽 최고 성적이었다. 강 교수는 밴쿠버대회를 끝으로 은퇴했다. 그는 “우리가 세상을 살며 꿈과 희망이 있기에 도전하는 것 같다. 아무 것도 몰랐던 20대의 나를 도전하게 만든 게 썰매와 올림픽이었다”며 “정말 힘들었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서 너무나 행복했다”고 의미를 되새겼다.

이제 강 교수의 뒤에는 2018 평창올림픽에서 썰매 사상 첫 메달을 노리는 든든한 후배들이 있다. 원윤종-서영우 조는 2014 소치올림픽에 이어 대표팀 봅슬레이 간판선수로 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2012년 강 교수가 발굴한 윤성빈은 스켈레톤 현 세계랭킹 1위로 금빛 전망을 밝히고 있다. 강 교수는 “제자들이 저를 대신해 메달의 꿈에 한 발 다가서준 것에 감사하다. 욕심을 내면 몸이 상하고 모든 게 무거워진다”며 “올림픽은 성적만으로 감동을 주는 것이 아니다. 스포츠 정신을 바탕으로 끝까지 최선을 다해줬으면 좋겠다”고 격려했다.

마지막으로 강 교수에게 남은 소원이 무엇인지 물어봤다. 자신이 개척한 썰매 종목이 전 국민적 사랑을 받기를 희망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썰매가 올림픽 때 잠깐 반짝여서는 안 된다. 꾸준히 선수를 발굴해서 썰매가 지속 가능한 스포츠로 성장하길 바란다”고 기대했다.

■강 교수는… 썰매 3종목 모두 출전 전 세계 유일한 선수로

불굴의 도전 정신을 바탕으로 불모지라 불리던 한국 썰매 종목을 개척했다. 1998년부터 2010년까지 4회 연속 동계 올림픽 무대를 밟았다. 역대 올림픽에서 썰매 3종목(루지 스켈레톤 봅슬레이)에 모두 출전한 전 세계 유일의 선수다. 2006 토리노올림픽과 2010 밴쿠버올림픽 개회식에서는 대한민국 선수단을 대표하는 기수로 2회 연속 나서기도 했다. 2002년부터 2010년까지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 기술전문위원과 선수위원회 위원, 2011년 평창올림픽조직위 집행위원 등을 역임하며 올림픽 유치에 힘썼다. 2012년 9월부터는 한국체대 체육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후배 양성에 노력을 쏟고 있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 사진=최종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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