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묘의 아이돌 열전] ⑨ 보아, ‘아시아의 별’에서 ‘보아라는 별’로

오는 31일 싱글앨범 ‘내가 돌아’를 내놓는 가수 보아. 그는 싱글앨범에 이어 2월 말 첫 미니앨범을 발표하고 활발한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SM엔터테인먼트 제공
 
사진=SM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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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SM엔터테인먼트 제공


열세살 때 혈혈단신 일본행
극한의 시험대서 성공 일궈
K팝 산업 해외 진출 물꼬 터

2012년 자작곡 발표 기점으로
‘자연인 보아’ 음악 세계 넓혀
31일 신곡 ‘내가 돌아’ 발표
아티스트로서 활동 본격화


일본 도쿄타워를 배경으로 하늘을 향해 손을 뻗어 올리는 작은 체구의 소녀. 2002년 보아의 ‘넘버원(No.1)’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장면이다. 일본 음악시장 정상에 올랐다는 자부심의 선언이었다. 만 13세로 데뷔해 젖살 오른 얼굴로 뛰어다니던 보아가 2년 만에 대중에게 ‘아시아의 별’로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데뷔 초 보아는 어린 나이와 전방위적 트레이닝이 화제가 됐지만 성공신화에 가려질 뿐이었다. 보아 자신도 후일 종종 언급하듯 그의 삶은 가혹했다. 어린 나이에일본에서 홀로 일본어를 배우며 또래를 만나지 못하는 나날은 누구나 버텨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심각한 부상에도 예정된 무대에 올라 격렬한 춤을 췄다는 일화가 그에게는 많다. 그것은 보아만이 보아일 수 있는 이유인 동시에 보아가 아닌 사람은 보아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듯하던 그는 동시에 한국 대중음악 산업의 극단을 달리기도 했다. 촘촘하고 세련된 사운드로 분절적인 곡 구조의 역동성을 입증한 ‘마이 네임(My Name)’(2004), 성 평등의 메시지를 강렬하게 담은 ‘걸스 온 탑(Girls On Top)’(2005) 은 지금도 유효하다. ‘허리케인 비너스(Hurricane Venus)’(2010)에서는 위압적인 음악과 함께 성별과 인체를 인위적으로 극복한 ‘포스트휴먼(posthuman)’ 같은 시각 요소를 선보이기도 했다. 커리어나 성장 배경만큼이나 그의 작품들 역시 오로지 K팝과 보아만이 해낼 수 있는 것을 치열하게 경주하고 있었다.

변화가 생긴 건 2012년 보아의 자작곡 ‘온리 원(Only One)’부터다. 그리고 2015년 ‘키스 마이 립스(Kiss My Lips)’ 앨범에서 보아는 다양한 프로듀서들과 전곡에 작곡자 이름을 올리며 싱어송라이터로서의 노선 변경을 본격화했다. 음악은 쿨하고 스타일리시하면서 조금은 느긋해졌다. 온화한 서정도 엿보인다. 아이돌로서는 철두철미한 퍼포머이지만, 무대 뒤에서는 때로 싱겁기까지 하다는 자연인 보아의 자기표현일까. 그가 열고 있는 제2의 커리어는 XtvN 리얼리티 프로그램 ‘키워드 #보아’로 준비 과정을 중계하며 오는 31일 발표하는 신곡 ‘내가 돌아’로 이어진다.

최근 작품에서 아이러니한 것은 수록곡 속에 달콤하고 발랄한 정서가 조금씩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 한동안 ‘걸스 온 탑’처럼 강렬한 음악에 균형을 맞추느라 만나보기 어려웠던, 초기 음반에 들어 있던 유형의 곡들이다. 대중이 10대 보아에게서 보고 싶어 했기에 기획되었던, 그러나 필요에 의해 제거되기도 했던 모습이 어쩌면 자연인 보아의 안에는 남아있었던 것일까.

어린 나이에 생을 바쳐 완벽한 아티스트로 만들어진 보아는 K팝 산업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또한 K팝이 세계로 뻗어가는 기점이 된 일본 진출을 몸소 뚫어낸 그는 K팝이 육체화한 존재라고도 할 만하다. 그런 보아가 자신의 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실력파’와 ‘자작곡’ 같은 단순한 키워드로 정리되지 않는다. K팝과 보아라는 매우 특이한 존재가 만난 성공신화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지 않는다는 신호에 가깝다. 이제는 자연인 보아가 K팝을 지휘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아시아의 별’에서 ‘보아라는 별’이 되어가는 일이라고 할까.

미묘<대중음악평론가·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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