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신창호] 교회가 예배당만이어선 안 돼



미국 도시에 가보면 으레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가 한군데 모여 있는 ‘스쿨 존’이 있다. 동네 아이들이 유치원생에서 10대 청소년이 될 때까지 바로 옆 학교로 옮겨가며 학교를 다니는 셈이다.

그런데 초·중·고 사이에는 반드시 또 하나의 장소가 자리 잡고 있다. 학교보다 더 널찍한 운동장과 수영장, 체육관, 교실 등을 갖춘 ‘방과후학교 센터’다. 기독교청년회(YMCA)와 지역 개신교회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곳이다. 오전 7시가 되기 전 부모의 자동차나 스쿨버스로 등교한 아이들은 오후 2∼3시쯤 정규수업이 다 끝나면, 대부분 이곳으로 향한다. 만 5세 유치원생부터 16세 고등학생까지 모인다. 숙제를 하거나, 책을 빌려 읽거나, 데생 조각 유화 디자인 등 미술을 배우거나, 기타 피아노 드럼 색소폰 트럼펫을 배운다. 야구 수영 미식축구 농구 테니스 아이스하키 등 각종 스포츠와 심지어 카누 타는 법, 야영하는 법, 나무합판으로 가구 만드는 법도 배울 수 있다.

작게는 몇 백 명에서 크게는 몇 천 명이 모이는 이 센터에서 가장 먼저 가르치는 건 ‘문 열어주기’다. 먼저 문으로 들어간 사람이 다른 사람이 올 때까지 문을 열어놓고 기다려주는 것이다. 6세짜리 꼬마가 자기 머리 높이의 손잡이를 끙끙거리며 돌린 뒤 온몸의 체중을 실어 문을 잡고 있으면, 뒤에 온 사람은 어서 달려가 도와주고 싶어진다. 고학년 청소년들이 자원봉사자가 돼 저학년 아이들을 인솔하는 모습도 너무 평범한 풍경이다.

무료는 아니지만, 결코 부모에게 부담이 될 만한 비용은 아니다. 한 학기, 그러니까 방학을 제외하고 4∼5개월 200달러(한화 21만여원)면 족하다. 한 과목 한 달 학원비가 20만원을 훌쩍 넘는 한국 사정에 비하면 저렴할 정도다.

정규교육 과정에 포함되지 않은 3∼4세 유아들을 위한 프리스쿨(Pre-School)의 대다수도 지역교회들이 운영한다. 부모가 교인인지 여부는 전혀 묻지 않는다. 교육 내용도 종교교육은 없다. 또래 아이들과 어울려 뛰어놀고 크레파스로 그림 그리고, 같이 합창하는 게 전부다. 알파벳은 정규 유치원에 들어가기 직전에만 가르친다.

YMCA와 교회들은 도시공동체 청소년교육의 거의 절반 이상을 감당하고 있다. 곳곳마다 각종 스포츠리그들을 운영하고 학생들의 취미활동을 함양한다.

가난한 흑인 농장노동자의 자식 마이클 조던, 이란 이민자의 아들 안드레 아가시, 헝가리 이민자의 장남 폴 뉴먼 같은 이들이 다 이 ‘방과후학교 센터’ 프로그램이 배출한 유명인사들이다.

극성맞은 학부모들이 “제발 애들 공부 좀 시키라”고 안달을 해도, 방과후학교 센터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런 것보다 아이들이 공동체를 이뤄 살아가는 방법, 동생과 형, 누나들을 존중하며 서로 친구가 돼 함께 성장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게 훨씬 더 낫다는 확신 때문이다.

교회는 더 이상 크리스천 정신을 예배당 안에만 가둬두는 곳이 아니다. 무작정 교인들의 헌금을 특정 계층과 특정 수혜대상자에게만 퍼다 주는 자선의 전당도 아니다. 미국인의 일상생활 속에서 자녀교육과 공동육아를 분담하는 중요한 축이 돼 있는 것이다.

요즘 한국교회, 아니 한국사회 전체가 저출산율과 이에 따른 미래세대의 단절을 근심하고 있다. 젊은이들이 결혼하지 않고, 결혼해도 아이를 낳지 않는다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젊은 세대의 결혼·출산 회피는 두 가지를 하기엔 너무 힘든 현실의 벽 때문이다. 맞벌이 부부가 아기를 낳아도 제대로 키우기가 힘들어서다.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데 기댈 곳은 시댁 아니면 외가 밖에 없다. 그 누군가가 우리 사회여야 하지 않을까. 그 누군가가 우리 교회여야 하지 않을까.

모든 사람에게 ‘기쁜 소식(Good News·복음)’을 전할 수단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세요”라고 전도하는 방법만 있는 건 아니다.

신창호 종교기획부장 proco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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