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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김명호] 방 안의 코끼리



평범한 방이 있다. 그 방에 코끼리가 들어왔다고 치자. 황당함을 넘어서 현실적으로 얼마나 심각한 문제이겠는가. ‘방 안의 코끼리(elephant in the room)’라는 말이 있다. 명확하게 문제라고 모두가 알고 있지만 그 누구도 얘기하지 않는 현상을 비유한 표현이다. 보스가 문제 제기를 싫어하거나, 정치적 위험을 초래할까 봐, 힘을 가진 이들이 손해를 볼까 봐, 반대하지만 그냥 대세라서…. 이유야 어찌 됐든 코끼리가 떡하니 방 안에 버티고 있는데도 오랫동안 존재를 무시하거나 애써 외면하다 보면 정말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모난 돌이 정 맞을까 봐’ 입 다물고 있는 거다.

그런데 모두가 문제라고 생각했었으나 문제 제기를 하지 않다가 결국 그 문제가 터지고 말았다. 그때 결정할 위치에 있던 사람들이 한마디씩 한다. “사실 그때 속으론 반대했어.” “당신이 찬성하니 그냥 옳은가 보다 했지.” “나만 빼놓고 모두 동의하는 줄 알았어.” 집단의 구성원이 전체와 자신의 의견이 다르다고 잘못 생각해 감히 집단의 의견에 반대하지 못하고 동의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결국 의사소통이 안 됐다는 얘기다.

영미에서 쓰는 ‘네덜란드 삼촌’이란 아주 오래된 표현도 있단다. 좀 아프지만 도움이 되는 조언, 정직한 의견을 말해주는 사람을 일컫는다. 많은 글로벌 일류기업들은 개선방안을 찾기 위해 비판적 시각에서 공격하는 ‘레드팀(red team)’을 회사 내에 운영한다.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처음으로 50%대로 떨어졌다. 추세로 굳어지는지, 하루 이틀 거리인지는 지나보면 알 수 있겠다. 최근 정책 발표나 추진 과정 등에서 왜 저렇게 할까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사례가 적지 않다. 열혈 지지층의 댓글활동이 도움되는지도 따져봐야 할 게다. 정권 내부에서 코끼리를 무시하거나 외면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대통령과 힘센 자들 주변에 네덜란드 삼촌들이라도 좀 있으면 좋으련만.

김명호 수석논설위원, 그래픽=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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