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희의 음식이야기] 중상주의 꽃피운 청어

청어로 만든 샌드위치


청어가 경제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발트해에서 잡히던 청어가 15세기 초 해류가 변하면서 네덜란드 앞 북해로 몰려들었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너도 나도 청어 잡이에 나서 인구 3분의 1이 청어 잡이에 종사해 전 국민의 밥줄이나 다름없었다. 한 어부가 작은 칼을 개발해 생선을 배에서 손질을 끝내 소금통에 보관하는 선상염장법을 개발한 덕분에 보관기간도 1년 이상으로 늘어났다. 당시 냉장고가 없던 시절이라 절임청어는 인기가 높았다. 1년에 140일이 넘는 기독교 육류 금식기간에도 생선은 먹을 수 있어 유럽 전역에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15세기 말 스페인에서 추방당해 네덜란드로 건너온 유대인들이 기존의 암염 대신 값싸고 질 좋은 천일염을 스페인으로부터 수입해 절임청어산업을 장악했다. 청어 잡이가 호황이다 보니 고기잡이배들이 많이 필요했다. 이는 자연스레 조선업 발전으로 이어졌고 대형 상선도 만들게 됐다. 특히 경량화에 성공한 플류트 상선은 화물 운임이 다른 나라의 3분의 1에 불과했다.

그 후 해운업의 비약적 발전은 네덜란드를 물류산업과 중계무역 중심지로 만들었다. 네덜란드 무역선은 16세기 말 120척에 지나지 않았으나 불과 37년 후에 2만4000여척이나 되어 세계 해운업계를 평정했다. 무역업 발전은 금융업과 보험업을 발달시켰다. 이 과정에서 자본주의의 싹들이 피어났다. 근대 최초의 주식회사인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설립되었고, 그 주식을 사고 팔 수 있는 증권거래소가 세워졌다. 그 무렵 네덜란드가 세계 물류와 무역의 중심이다 보니 유통되는 각국 화폐의 종류만 무려 수백 가지가 넘어 불편했다. 그래서 태어난 게 화폐 통일을 목적으로 한 근대적 의미의 중앙은행 모태격인 암스테르담 은행이었다.

이렇게 자본주의 싹들이 차례로 네덜란드에서 탄생했다. 결과적으로 청어가 조선업과 해운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면서 중상주의를 활짝 꽃피운 것이다.

홍익희 세종대 대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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