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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요절한 문학 천재 아닌 효심 깊었던 ‘오빠 이상’



‘이해 없는 세상에서 나만은 언제라도 네 편인 것을 잊지 마라.’ 천재 작가 이상(1910∼1937·본명 김해경)이 애인과 만주로 떠나는 여동생에게 쓴 편지 ‘동생 옥희 보아라’(1936)에 나오는 문장이다. 옥희는 26년 뒤에야 오빠 이상에게 ‘오빠의 그윽한 사랑을 항시 느끼면서도 한 번도 그 오빠를 이해하는 착한 동생이 못 되었다’는 답장을 썼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정철훈(59) 작가가 이 편지를 토대로 이상의 가족사를 3년간 추적했다. 신간 ‘오빠 이상, 누이 옥희’의 부제는 ‘천재 작가 이상 사후의 가족비사’다. 이 책은 인간 이상의 삶을 조카 문유성(75)씨와 그 주변 인물의 육성을 중심으로 복원하고 있다. 저자는 2015년 초 김옥희의 아들인 문씨를 만나면서 이 작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상은 요절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연구는 소설 ‘날개’, 시 ‘오감도’ 등 그가 생전에 발표했던 작품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문씨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한 번도 공개된 적 없는 이상의 애사(哀史)이자 이상이 숨진 뒤 남은 가족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려주는 비사(秘史)라는 의의가 있다.

이상은 김영창의 장남으로 태어났지만 세 살 무렵 자손이 없던 백부 김연필의 양자로 들어가 그 집안에서 자랐다. “이상이 조선총독부에서 일하게 된 게 백부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백부가 이상을 공부시켰으니까 말을 듣긴 해야겠고 총독부에 억지로 근무하면서….” 경성고공(서울대 공대 전신)을 수석으로 졸업한 이상이 총독부에 취직한 경위에 대한 문씨의 증언이다.

“어머니도 큰오빠가 어머니에게 늘 공손했고 뭘 못 해드려서 애태우곤 했었다고 말씀하십니다. …큰오빠는 어머니뿐만 아니라 아버님이나 동생들에게도 퍽 잘했습니다.” 누이 옥희가 남긴 편지의 한 대목이다. 이상의 성격이 필명처럼 이상하거나 괴팍하지 않았고 온화한 데다 부모에게는 효심이 지극했다는 것이다. 책에는 월북한 이상의 가족, 문학적 기질을 물려받은 막내 동생, 가족들이 이상에 대해 언급을 금기시한 배경 등도 소개한다.

일간지 기자 출신인 저자는 오빠 이상과 누이 옥희가 남긴 편지의 문맥 사이사이를 철저한 문헌조사와 집요한 취재로 메워나간다. 저자가 ‘문학 탐정’이라는 인상을 준다. 결국 이 책은 우리 기억 속에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였던 이상을 옥희의 오라버니이자 어머니 박세창의 아들 ‘인간 이상’으로 그려낸다. 이상의 삶과 문학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할 책 목록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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