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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자유의 美와 질서의 中이 마주 달리면?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9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 앞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레이엄 앨리슨은 저서 ‘예정된 전쟁’에서 이들 두 지도자를 거론하며 이렇게 적었다. “만약 할리우드에서 중국이 미국에 맞서다가 마침내 전쟁까지 발발하게 되는 영화를 만든다면 그 중심인물로 시진핑과 트럼프보다 더 적절한 주인공은 찾기 힘들 것이다.” AP뉴시스




책의 띠지나 표지엔 바겐세일을 알리는 백화점 전단지처럼 자극적인 문구가 가득 적혀 있다. “세계대전을 막을 수 있는 책이 있다면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다” “한반도는 제3차 세계대전의 화약고가 될 것인가” “패권국과 신흥 강국이 부딪칠 경우 전쟁 확률은 75%” “미·중 전쟁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 “한반도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독자 중에는 마뜩잖은 감정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듯하다. 세상엔 전쟁 가능성 운운하면서 요란한 호들갑을 떠는 책이 너무 많으니까. 하지만 이 책은 저자의 명성 때문에라도 허투루 여기기 힘든 신간이다. ‘예정된 전쟁’을 펴낸 그레이엄 앨리슨(78)은 미국의 대표적인 국방 전문가다. 1977년부터 12년간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학장을 지냈고, 95년부터 지난해까지는 이 대학 벨퍼국제문제연구소에서 소장을 맡았었다. 그가 71년에 내놓은 ‘결정의 에센스’는 62년 벌어진 쿠바 미사일 위기를 다룬 책들 가운데 정전(正傳)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저자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는 용어를 세상에 퍼뜨린 인물이기도 하다. 이 용어는 고대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가 쓴 ‘펠레폰네소스 전쟁사’에서 가져온 것인데, 투키디데스는 패권국 스파르타와 신흥국 아테네 사이에 전쟁이 발발한 이유를 이렇게 분석했다. “전쟁이 필연적이었던 것은 아테네의 부상과 그에 따라 스파르타에 스며든 두려움 때문이었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고대 그리스의 황금시대를 결딴내버린 스파르타와 아테네가 그랬듯 패권국과 신흥국의 충돌은 얼마간 불가피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실제로 세계사에서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당대의 많은 패권국과 신흥국이 걸려든 덫이었다. 20세기만 하더라도 미국과 일본, 영국과 독일이 각각 이 함정에 빠지면서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벌였다.

책에는 최근 500년간 패권국과 신흥국이 갈등을 빚은 사례 16개를 일별한 내용이 등장한다. 이들 케이스 가운데 전쟁으로 치달은 경우는 12번이나 됐다. 그렇다면 17번째 사례인 지금의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어떻게 될까. 결국엔 두 나라도 전쟁을 벌이게 될 것인가.

‘예정된 전쟁’은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든다. 이야기는 중국의 부상을 전하면서 시작된다. 수많은 데이터를 그러모은 뒤 눈길을 확 잡아끄는 내용만 선별해 소개하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몇몇 문장만으로도 중국이 얼마나 기함할 정도로 성장해 ‘1등 국가’로 발돋움하고 있는지 실감할 수 있다. “2011년에서 2013년 사이에 중국이 만들고 사용한 시멘트의 양은 미국이 20세기 내내 만들고 사용한 시멘트 양보다도 많았다” “소더비와 크리스티의 최고 고가품 경매는 이제 뉴욕이나 런던이 아니라 베이징이나 상하이에서 열린다”….

중국이 이미 1인자의 위치에 올라섰다면, 혹은 그럴 가능성이 명약관화하다면 미국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저자는 중국을 이해하고 싶다면 “중국이 과거의 미국과 똑같다고 생각하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미국이 세계의 조종간을 잡은 건 약 100년 전이었다. 당시 미국의 지휘관은 시어도어 루스벨트였는데,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우리가 이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기만 한다면, 우쭐한 마음에 취해 나태하게 평화나 누리고 앉아 있다면, 결국 우리보다 더 대담하고 더 강한 민족이 우리 앞으로 치고 나가 세계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현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생각은 한 세기 전 루스벨트가 품었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설마 중국이 압도적인 군사력을 지닌 미국에 도전할까 의구심을 품을 수도 있는데, 중국은 힘이 보잘것없던 시기에도 자존심을 지키거나 잇속을 차리기 위해 강대국에 맞선 나라였다. 미국을 상대로 어기찬 싸움에 나섰던 한국전쟁만 떠올려 봐도 알 수 있다.

책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미국과 중국의 갈등을 문화적으로 살핀 대목이다. 책에는 미국은 ‘자유’를, 중국은 ‘질서’를 각각 지고의 가치로 여긴다고 적혀 있다. 즉, 중국은 그 옛날 아시아의 많은 국가들이 그랬듯 지구촌의 나라들이 베이징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미국은 중국의 이런 태도를 인내할 수 있을까.

미·중 전쟁이 벌어질 수 있는 가상 시나리오를 전한 대목도 인상적이다. 구체적이면서 개연성도 충분해 섬뜩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저자가 전하려는 궁극적인 메시지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명언으로 갈음할 수 있을 듯하다. “우리의 운명은 우리의 별자리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있다.” 이 말은 워싱턴과 베이징의 정치인들이 가슴에 새겨야할 충고일 것이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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