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함에 반하다… ‘정현 신드롬’

정현이 24일 호주 멜버른 로드레이버아레나에서 열린 호주오픈 남자 단식 8강전에서 미국의 테니스 샌드그렌을 꺾은 뒤 양팔을 벌려 환호하고 있다. AP뉴시스


한국인 첫 메이저대회 4강

또다른 돌풍 샌드그렌 완파
‘황제’ 페더러와 4강전 격돌

겸손하고 유머감각 갖춰
자신과 외로운 싸움서 승리
좌절 많은 2030의 희망으로


정현 신드롬이 대한민국을 강타하고 있다. 정현이 2018 호주오픈에서 한국 테니스 사상 최초로 메이저대회 4강에 진출하자 세대 불문하고 자기 일처럼 환호하고 있다. 각종 역경을 이겨내고 신기원을 열어가는 정현을 보고 젊은 세대들은 대리만족을, 기성세대는 이 사회에서 사라져가는 투혼을 느끼고 있다는 분석이다.

정현은 24일 호주 멜버른 로드레이버아레나에서 열린 2018 호주오픈 남자 단식 8강전에서 2시간28분 만에 테니스 샌드그렌(미국)을 세트 스코어 3대 0으로 완파하고 준결승에 올랐다. 정현은 26일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와 대망의 4강전을 치른다.

정현은 약시라는 신체적 불리함과 장기간의 슬럼프에 따른 고통을 온전히 자신의 노력으로 슬기롭게 극복했다. 또 자신의 약점을 철저히 분석하며 매 경기 성장을 가져왔다. 여기에 정현은 쇼맨십 등 여유까지 장착하면서 아시아인은 힘들다는 테니스 메이저대회를 조금씩 정복해가고 있는 중이다.

사람들이 이번 대회에서 새삼 정현에게 주목하는 것은 그의 낙천적 성격과 유머스러움이다. 정현은 이날 8강전을 승리한 뒤 코트를 퇴장하면서 현장 카메라 렌즈에 매직펜으로 ‘충온파이어’라는 글을 남겼다. 자신의 성 ‘정’의 영문 표기 ‘Chung’의 한국어식 발음인 ‘충’과 열정을 불태운다는 의미의 ‘on fire’를 남기며 자신의 의지를 익살스럽게 표현했다. 정현은 승리 후 인터뷰 때마다 능숙한 영어로 좌중을 사로잡는 코믹한 멘트를 날리며 눈길을 끌고 있다. 이날 3세트 마지막 게임에서 40-0으로 리드한 뒤 연거푸 점수를 내준 데 대해 정현은 “40-0이 되고나자 이기면 무슨 세리머니를 할까 생각하다보니 점수를 내줬다”고 했다. 16강전 조코비치와의 경기 후에는 “3세트를 내줘도 이길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생각했다. 조코비치보다 젊어서 2시간 더 경기할 수 있었으니까”라고 답했다.

취업난 등으로 팍팍한 삶을 살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좌절보다 여유와 웃음을 간직하면서 정정당당히 실력을 뽐낸 정현은 롤모델로 떠올랐다. 이와 함께 여자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논란으로 상처받은 2030세대가 정현의 당당함에서 위안을 얻는다는 분석도 있다. 직장인 김재진(27)씨는 “정부의 남북 단일팀 졸속 추진에 화가 났는데 예상치 못한 정현의 활약을 보고 마치 활력소를 얻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성균관대 사회학과 구정우 교수는 “젊은이들이 최근 경제난, 단일팀 논란 등으로 희망을 잃어버린 가운데 또래인 정현의 선전에서 일종의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자식뻘인 정현의 활약에 기성세대도 흐뭇하다. 약체라는 전망에도 불구하고 결국 끈질긴 승부로 승리를 따내는 정현에게 젊은 시절 간직했던 투혼과 도전의 정신을 떠올리며 행복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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