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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코너-전석운] 북·미대화 병행돼야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이 보름 앞으로 다가왔다. 평창올림픽의 가장 큰 의미는 뭐니 뭐니 해도 북한의 참가로 조성된 모처럼 만의 남북 대화다. 우리나라에서 개최된 국제대회에서 남북이 나란히 입장하고 단일팀이 출전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북한에서 대규모 예술단과 응원단이 내려와 평창올림픽의 분위기를 띄우면 남북 화해 무드가 고조될 것이다. 일촉즉발의 위기로 치닫던 한반도의 긴장이 진정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질 수 있다.

88 서울올림픽 직전 대한항공기 폭파와 2002 월드컵 때의 서해교전 도발을 떠올리면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는 반전이다. 더구나 미국이 북한을 상대로 폭격을 하면서 전면전으로 비화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팽배한 시기에 성사된 남북 대화는 극적이다. 북한의 대화 제안을 ‘독이 든 만두’로 비유하는 일본인도 있지만 우리로서는 모처럼 찾아온 남북 대화를 어떻게 해서든 잘 살려야 한다. 그러나 평창올림픽이 진정한 평화올림픽이 되려면 남북 대화가 일회성 이벤트로 그쳐서는 안 된다. 비록 이번 남북 대화가 실무적으로는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를 의논하기 위한 것이지만 올림픽 이후에도 남북 대화와 교류는 계속돼야 한다. 고대 그리스에서 유래된 올림픽의 정신이 전쟁을 중단하고 평화를 정착시키자는 것인 만큼 남북이 올림픽에서 단일팀을 이룬 취지와 정신을 올림픽 폐막 이후에도 이어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남북 대화가 북·미 대화로 이어져야 한다. 남북관계만 해도 군사회담과 이산가족 상봉 등 후속 과제가 만만치 않다. 하지만 북·미 대화 없는 남북 대화는 수레의 한쪽 바퀴를 굴리는 것에 불과하다. 북한이 원하는 게 무엇이든 미국과 대화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북한이 제재완화, 경제적 지원, 군사훈련 중단·축소, 체제보장, 평화협정 체결 등 무엇을 요구하더라도 한국 정부가 독자적으로 해줄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남북 대화가 평창올림픽에 머물러서는 안 되는 이유다.

하지만 현실적 전망은 녹록지 않다. 워싱턴의 조야는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를 핵·미사일 개발을 완성하기 위한 시간벌기나 위장된 평화 제스처로 보며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

올 초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남북 대화가 북·미 대화보다 먼저 성사되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혹해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트럼프 대통령과 미 정부는 평창올림픽의 성공과 남북 대화를 지지하는 입장으로 돌아섰지만 초기 반응은 냉소적이었다.

개막식이 다가오면서 자칫 평창올림픽이 북한의 선전장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경계심이 워싱턴에 돌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를 대표해서 개막식에 참가하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부터 이런 시각을 감추지 않고 있다. 백악관 고위관계자는 “펜스 부통령의 방한은 북한의 선전전에 맞불을 놓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이 기본적으로 남북 대화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잘 드러내는 설명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한국산 제품에 대한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발동하면서 연이어 한국을 공격하고 있는 것도 불편한 그의 심기를 드러낸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이와 관련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1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한·미관계를 이간질하려고 남북 대화를 제안한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을 받자 “이간질이라면 나만큼 많이 아는 사람도 드물 것”이라며 “한국에 대한 무역적자가 310억 달러인데 상당한 협상카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이 북한의 이간질에 넘어간다면 무역보복을 할 수도 있다는 걸 시사한 것이다.

평소 안보와 무역 이슈를 연계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상 평창올림픽 직전에 한국에 대한 통상보복을 공언한 것을 한반도 안보 문제와 무관한 것으로 해석하기 어렵다. 정부는 남북 대화와 함께 북·미 대화가 성사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남북 대화와 북·미 대화는 병행돼야 한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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