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시사  >  2018 평창

[맞수 열전] 독재자 몰아내고 윤성빈 황제 굳힌다

명실상부 스켈레톤의 1인자로 부상한 윤성빈(왼쪽 사진), 전 스켈레톤 챔피언 라트비아의 두쿠르스(오른쪽 사진). AP뉴시스, 신화뉴시스




<7> 윤성빈 vs 두쿠르스

‘넘사벽’ 넘은 윤성빈, 명실상부 썰매 1인자
스타트·조종술 모두 앞서 이변 없는 한 골드
속도 줄이는 회전각 마의 9번 커브가 관건


“지난 시즌까지는 ‘넘사벽(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이라고 생각했다. 올 시즌에는 그 정도는 아니다.”

윤성빈(24)은 2015년 3월 마르틴 두쿠르스(34·라트비아)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었다. 2014-15시즌 스켈레톤 월드컵을 마치고 인천공항에 귀국한 당시 윤성빈은 세계랭킹 5위, 두쿠르스는 1위였다. 아시아 스켈레톤의 신성으로 떠오른 그에게도 두쿠르스는 ‘4차원’의 벽이었다. 두쿠르스에 패배하고서도 “월드컵 영상을 보며 배웠던 선수다. 그와 함께 시상대에 올라간 게 큰 의미로 다가왔다”던 윤성빈이었다.

2년여가 흐른 지금 윤성빈은 4차원의 벽을 명백히 넘어섰다. 윤성빈은 2017-18시즌 7차례의 월드컵에서 5차례 1위, 2차례 2위를 기록했다. 컨디션 조절 차원에서 8차 월드컵을 불참했는데도 세계랭킹 1위는 여전히 윤성빈이다. 지난 14일 인천공항으로 귀국한 그는 그래도 여전히 겸손했다. 두쿠르스를 넘어섰다는 취재진의 평가에 오히려 “그렇게 판단하기는 이른 것 같다. 올림픽 결과를 봐야 한다”고 말했다.

‘넘사벽’을 뛰어넘은 동력은 무엇일까. 윤성빈은 “난 매년 똑같이 최선을 다하는데, 경쟁 선수들이 경기 내용에서 흐트러진 면이 있는 것 같다”며 말을 아낀다. 윤성빈이 시상대에 같이 서기만 해도 영광이었다며 치켜세우던 두쿠르스가 이젠 윤성빈의 장점을 줄줄 늘어놓는다. “윤성빈은 모든 기술을 갖췄다. 스타트할 때 빠르고, 드라이빙 능력도 좋다. 게다가 장비도 훌륭하다.” 두쿠르스는 2016년부터 윤성빈이 자신의 올림픽 라이벌이 될 줄 알았다고 한다.

스타트와 주행, 장비를 모두 칭찬한 두쿠르스의 말이 공치사만은 아니다. 스켈레톤 데뷔 초기 윤성빈의 문제점으로 지적됐던 스타트는 어느덧 윤성빈의 강점이 돼 있다. 평창 슬라이딩센터가 설계된 2013년, 트랙의 초반 코스가 휘어졌던 것은 아시아권 선수들이 유럽에 비해 스타트가 약하다는 진단 때문이었다. 지금 와 생각하면 쓸데없는 일이었다.

조종 기술에서는 두쿠르스가 한 수 위라는 평가도 있었다. 하지만 윤성빈은 이번 시즌 처음 접하는 코스들에서도 ‘도장깨기’를 하듯 신기록을 쏟아내며 조종 기술의 우위도 입증했다. 한국 썰매의 개척자 강광배 한체대 교수는 22일 “스타트도 조종술도 모두 윤성빈이 뛰어나다”고 했다. 윤성빈은 장비를 대하는 시각도 노련해졌다. 최근에는 다양한 상황에서 속도를 극대화하도록 썰매 날을 5개에서 10개로 늘려 활용하고 있다.

두쿠르스와 윤성빈의 대결은 영화 속에서 엄청난 스피드를 자랑하던 영웅들의 대결로도 그려진다. 윤성빈은 그의 복장과 헬멧에서 볼 수 있듯 자타공인 아이언 맨(iron man)이다. 한편 라트비아 언론은 두쿠르스를 수퍼맨(superman)이라 부른다. 외신들은 둘 가운데 누가 금메달을 따내 골드 맨(gold man)이 될 것인지 주목하고 있다.

진정한 영웅을 가릴 스켈레톤 결승은 다음 달 16일 오전 슬라이딩센터에서 열린다. 아이언맨과 슈퍼맨의 희비는 9번 커브에서 엇갈릴 전망이다. 스켈레톤 선수들 앞에 갑자기 나타난다는 평창 트랙의 9번 커브는 ‘악마의 커브’로 불린다. 속도가 시속 120㎞에서 100㎞ 정도로 떨어지는 회전각 10도 안팎의 커브인데, 균형을 중시하다간 기록이 나빠진다. 그렇다고 속도를 유지하려고 무리하면 균형을 잃고 벽에 부딪히게 된다. 두쿠르스는 “모든 건 9번 커브에 달려 있다”고 언급했다.

두쿠르스는 평창이 은퇴 무대다. 두쿠르스는 지난해 12월 오랜만에 월드컵 우승을 따낸 뒤 “내가 월드컵 우승을 50차례 할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언제나 한 걸음 한 걸음이었다”고 각오를 새롭게 했다. 윤성빈은 봐줄 생각이 없다. “다른 사람이 따라는 메달이 아니라, 나의 꿈이다.” 모두가 말하는 금메달의 기대감이 그에게는 부담이 아닌 응원이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