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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합동연주’ 지휘 박은성 “음악은 이념 초월… 남과 북 하나로 묶는 힘이 있어요”

지휘자 박은성 선생이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2002년 9월 남북 합동 공연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최종학 선임기자
 
박 선생 등 관계자들이 당시 북한 평양 봉화예술극장에서 공연을 마친 뒤 인사하는 모습. KBS교향악단 제공


북한 삼지연관현악단 방남을 앞두고 한국 지휘자로는 사상 처음 북한에서 남북 합동 오케스트라 연주회를 가졌던 박은성(73) 선생을 만났다. 정정해보였다. 박 선생은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약 15년 전 조선국립교향악단과 합동 연주가 어땠냐는 질문에 “그게 벌써 그렇게 됐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2002년 9월 북한 평양에서 조선국립교향악단과 합동공연을 했다.

당시 공연은 2000년 8월 조선국립교향악단의 서울 연주에 대한 답방 형식으로 이뤄진 것이었다. 박 선생은 “(한국) 지휘자 누구도 가보지 못한 평양에서 연주한다는 생각에 갈 땐 굉장히 긴장됐지만 가보니 다들 협조도 잘 해주고 북한 교향악단의 연주도 훌륭했다”고 회고했다. 이어 “관현악 연주에서 활 쓰는 걸 보잉이라고 하는데 그때 조선국립교향악단 앞줄부터 뒷줄까지 그 보잉이 완전히 똑같아 소름 끼칠 정도였다. 혹독한 연습의 결과로 보였다”며 “삼지연관현악단이 어떤 형태의 악단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경험에 비춰보면 아마 털끝 하나 틀리지 않도록 완벽하게 연주 준비를 해올 것”이라고 단언했다.

방북 당시 수석객원지휘자로 KBS교향악단을 지휘했던 그는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을 직접 선곡해 연주했다. 박 선생은 “당시 그 공연이 남북 화해와 협력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되는 바람을 담아 작은 두 물줄기가 큰 강을 이루는 광경을 묘사한 ‘나의 조국’ 중 ‘몰다우 강’을 연주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번 공연이 2000∼2002년 남북한 음악 교류처럼 민족 화해의 청신호가 되길 기대했다. 박 선생은 “음악 안에는 이미 이념을 초월하는 음악만의 힘이 있다”며 “북측이 순수한 음악 공연을 준비해서 정치적 논란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2002년 남북 합동 공연은 추석 명절을 앞두고 한반도 전역에 생중계돼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했다.

그는 당시 조선국립교향악단을 지휘했던 김병화(83)에 대한 기억을 한 토막 소개했다. 박 선생은 “김병화씨가 이런 얘길 하더라. ‘우리 장군님이 어느 날 어떤 곡을 이렇게 연주해보라고 해서 실제로 그렇게 했더니 연주가 아주 잘 되더라. 언제 그렇게 (클래식) 음악 공부를 하셨는지 모르겠다’고. …그분(김병화)은 나이 드셔서 이번엔 못 오겠지”라고 했다.

삼지현관현악단 지휘를 누가 하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를 졸업한 그는 이 연주 후 수원시립교향악단을 거쳐 2010년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로 은퇴했다. 박 선생은 해방되던 1945년 함경도 회령에서 태어나 같은 해 부모를 따라 남한에 왔다.

북한이 고향인 그에게 평양에서 연주는 특별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그때 그는 연주회에서 “이 자리를 빌려서 남한 동포들의 따뜻한 사랑을 전합니다. 또 오고 싶습니다”라고 인사해 큰 박수를 받았다고 했다. 헤어질 무렵 박 선생은 “북한에 갔을 땐 연주 준비에 바빠서 고향에 가지 못했다. 죽기 전에 내가 태어났다는 회령에 한번 가보고 싶다”고 했다.

글=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사진=최종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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